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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마음-달라이 라마의 성경 강의

하나님의 나라(3)

'나는 안다' 혹은 '나는 자각한다'고 말할 때 나라는 행위 주체가 있다.  의식은 안다 혹은 과정 그 자체이다. 우리가 말하는 의식은 알고 지각하는 대상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우리의 의식 활동은 일반적으로 바깥에 있는 어떤 대상과 연결시킨다.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감정과 연결시킨다. 우리의 일반적 경험 속에서 의식은 언제나 대상과 주체라는 이원적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거의 언제나 단지 대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의식만 경험한다고 말 할 수 있다. 우리 마음속으로부터 다양한 모습, 개념, 기억,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각적 경험에서 생겨난 선입견을 의식적으로 버리려고 노력함으로써 순수의식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  마음속의 흔들림이란 감각적인 경험에 따라 생각의 과정이나 내용이 걷잡을 수 없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깨어있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차츰 생각의 흔들림을 정지시키고, 마음에 감각적인 경험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의식과 물질의 상호의존관계에 대해 불교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의 행위와 행동을 실제로 결정하는 것은 마음과 그 마음에서 생겨난 동기'라고 말한다. 중요한 행위든 사소한 행위든 모든 행위는 마음 속에 영향을 주고 흔적을 남겨놓는다. 그리고 그 행위는 즉각적으로 경험에 영향을 주며,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 사람의 세계가 달라진다불교에서는 카르마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카르마의 교리는 마음속에 남은 흔적이나 점재성에 대할 때,  그 잠재성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실현되는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카르마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마음상태가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행동이다. 불교에서는 '연기'라고 부르는 상호의존 윈리를 세가지 방법으로 이해한다.  첫 번째는 원인과 결과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원인과 조건이 있으면 그것에 따른 결과가 반드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차원에서는 상호의존을 좀 더 쌍방간의 의존으로 이해합니다. 어떤 현상은 다른 현상에 의존해서 존재한다는 것은 것이다. 다시 말해 현상과 현상 사이에는 깊은 상호연결성이 있다. 이것은 부분과 전체에 대한 생각에서 아주 잘 나타난다.  부분없이 전체가 있을 수 없으며, 전체 없이 부분이 있을 수 없다.  서로 의존하고 있다.

 

상호의존에 대한 세 번째 이해는 존재 가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어떤 사물과 사건의 존재가치는 그것이 놓여 있는 앞뒤 맥락이나 환경에 달려있다.  어느 의미에서 사물의 존재가치는 본래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물, 사건은 다른 사물과 사건에 관련지어서만 그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 스승이고 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성경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불교에서는 '여래장'이라고 부르는 불성 사상이 있다. 불성은 영적완성의 씨앗을 의미한다. 부처의 씨앗은 우리들 모두의 내부에 존재하는 마음의 근본을 가리킨다. 여래장如來藏은 순수한 본성, 마음의 불완전함을 넘어서 우리로 하여금 해탈에 이르게 하는 잠재능력과 관계가 있다.  수행자는 단순히 그런 본성을 지니고 있는 것만이 아닌 실현되어야 한다. 깨달음을 얻은 스승의 도움이 필요하다.  경험이 풍부한 스승과 내부 존재하는 불성이 하나가될 때  그 불성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교 수행자는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님을 통해 자기안에 있는 신성을 깨우고 그것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아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게 함이로라.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 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함이로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 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이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2장 44절 -50절)

 

빛은 모든 종교에서 은유적으로 많이 사용한다.  불교에서 빛은 특히 지혜와 지식을나타내고, 어둠은 무지와 환상을 상징한다. 진리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방법적 측면이고 또 하나는 지혜의 측면이다. 자비심과 너그러운 마음을 키우는 수행이 방법적 측면이고, 사물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갖는 것이 지혜의 측면이다. 무지를 몰아내는 것이 지혜이다. 신앙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 특정 상태에 대해 감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두 번째 열망하는 신앙이다. 스스로 나아지려고 하는 마음으로 그런 존재 상태에 자신도 도달하고자 열망하는 신앙이다세 번째 확신을 가진 신앙이다. 불교를 믿는다면 여러분 자신도 부처가 되기를 염원할 것이며, 그리스도교를 믿는다면 하느님과 하나 되고 싶은 열망에 사로 잡힐 것이다. 열망하는 마음이 커지게 되면 여러분 자신도 그런 존재 상태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신앙이다. 불교에서는 영적수행의 길을 걸을 때 신앙과 이성이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신앙이 여러분 존재를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반면에 이성과 분석은 여러분에게 해방을 가져다준다. 영적 열망을 갖고 처음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이 이성과 이해를 통해 신앙을 키우려면 무엇보다 열린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마음을 열고 있을 때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잇고 이성적 분석을 통해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더 깊이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되면 대상에 대한 확신과 신념과 믿음이 생겨난다. 부처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시험대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르침을 이해하고 납득했을 때만 올바른 가르침으로 받아들인다고 말씀하셨다. 구원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대부분 불교학파에서는 구원을 외적 환경보다는 개인의 영적 상태, 정신적 상태로 이해한다. 마음의 완성상태를 구원으로 본다

 

여러분이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결정을 내려주는 존재가 저기 어디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과법칙에 그 진리가 담겨있다. 율법에 따라 행동한다면 바람직한 결과가 나타나겠지만, 남에게 해를 입히는 활동을 한다면 그런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를 역시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느님이 인간의 죄를 벌하신다는 성경말씀은 시적인 은유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벌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넘어서 무조건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을 그릴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인과법칙보다는 자유, 의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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