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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키에르케고르

동화 작가 안데르센이 키에르케고르와 동시대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자연의 무궁무진함에 대해 마찬가지로 예리한 시각을 지녔다.  라이프니츠는 이미 백년전에 그러한 시각을 가졌고,  스피노자의 합일 철학에 대해서 그가 보인 반응은 헤겔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반응과 똑 같다. 키에르케고르는 낭만주의자들의 합일철학과 헤겔의 역사주의가 개인으로부터의 삶에 대한 책임을 박탈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1813년 코펜하겐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종교적 우울증도 있었다. 그의 생애 말년에는 전 유럽 문화에 대해 점점 더 실랄한 비판자가 되어서,  전 유럽이 파산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교회의 미온적이고 해이한 태도를 꾸짖었다. 키에르케고르에겐 기독교가 양자택일만을 강요할 정도로 억압적이고, 이성에 반하는 것이었다. 종교와 이성이 그에게는 불과 물같은 것이었다.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를 진리로 간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의 발자국을 밟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도 반어라는 문체수단을 사용하였지만 단지 그의 청중이 좀 더 진지한 삶을 추구하도록 교육하기 위해서였다. 소크라테스는 키에르케고르에게 낭만주의자들과는 반대로 실존적인 사상가였다.  즉 자기의 실존 전체를 철학적 성찰을 향해 던지는 사람을 뜻한다. 케에르케고르는 유희에 열중하는 낭만주의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였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의 삶에 중요한 진리들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공상의 나라에서 사는 헤겔과 같은 대학교수 타입의 인간을 비꼬아서, 이 사람은 존재 전체를 설명하다가 경향이 없는 가운데 자기 이름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또 자기가 사람이라는 것조차 잊어버렸노라고 야유하였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나 인간의 본질을 보편타당하게 서술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실존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자신의 실존을 책상 앞에 앉아서는 체험하지 못한다. 우리가 행동할 때 그리고 특히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우리가 자신의 실존과 관계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진리인가?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이것은 이론적이거나 학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자기 실존을 자각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다.

 

4더하기 8은 12다 라는 것은 이성적 진리다. 그것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다. 바로 그 때문에 그런 진리들은 개인의 실존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하거나 혹은 그것을 이성으로 파악하려고 시도했다.  기독교가 진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이 나에게 진리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기독교가 우리 내면의 다른 면이 아니라 이성에 호소했더라면,  그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현대 도시사회에서 인간은 대중이나 공중이 된다고 생각하였고, 군중의 첫번째 특징은 책임감 없이 말하는 수많은 무의미한 ‘수다’라고 하였다. 키에르케고르는 상이한 실존 가능성이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자신이 단계라는 말을 사용하여 가능성들을 미적단계, 윤리적 단계, 종교적 단계로 부르고 있다. 그가 단계라는 말을 선택한 것엔 사람들이 두가지 하위단계중 한 단계에서 살다가 갑자기 더 높은 단계로 비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뜻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 단계에서 전 생애를 보낸단다.  미적단계에 살고 있는 사람은 그 순간을 살며 늘 향락을 추구한다. 좋은 것은 아름답고 멋지고 편하다. 그렇게 볼 때 그와 같은 사람은 완전히 감각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혹은 자기가 종사하는 예술이나 철학에 대해 놀이하는 듯한 태도를 지닌 사람도 미적단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근심과 괴로움에 대해서 조차 미적으로 관찰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공허함이다. 한 인간이 미적 인생관에서 윤리적이거나 종교적 인생관으로 비약하는 선택역시 내면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윤리적 단계는 진지성과 시종일관 도덕적 척도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람들이 무엇이 옳거나 그르다고 여기는지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옳거나 그른 것에 대한 스스로의 태도를 결정하는 일이다.  탐미주의자들은 무엇이 재미있고, 무엇이 지루한지에만 관심이 있다. 그는 의무를 이행하는 인간도 언젠가 한 번은 늘 의무를 의식하고, 질서를 지키는 것에 싫증을 낼 것이라고 보았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미적단계 놀이에 열중하는 삶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바로 다음 단계인 종교적 단계로 새로운 비약을 감행한다.  그들은 미적 향락과 이성의 명령보다 신앙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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