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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칸트(2)

흄은 우리의 이성이나 경험이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게 아니라, 아주 단순하게 우리 감정이 그것을 결정한다생각했다. 칸트는 이러한 사유는 기초가 너무 빈약하다고 여겼다. 칸트는 처음부터 옳고 그름의 차이는 한갓 감정문제 이상의 것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는 것은 사람의 이성에 달려있다고 설명한 합리주의자들과 같은 견해를 가졌다. 칸트는 모든 사람에게 도덕영역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늘 말해주는 실천이성이 있다고 믿었다. 옳고 그름의 판단하는 능력은 이성의 모든 다른 속성과 마찬가지로 선천적이다.  모든 사람은 동일한 보편적 도덕법칙에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도덕법칙은 물리적인 자연법칙과 마찬가지로 절대적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거나,  7더하기 5는 12라든가 하는 것이 우리의 이성적 삶의 토대인 것처럼 도덕법칙도 우리의 도덕적 삶의 기초가 된다.

 

도덕법칙은 모든 경험에 앞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형식적이다. 즉 그것은 도덕적 선택이 놓여 있는 특수한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사회, 모든 시대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칸트는 자신의 도덕법칙을 정언적 명령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이 모든 상황에서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밖에 그것은 강제적인 동시에 명령이고, 절대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칸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기를 네가 동시에 바랄 수 있는, 그런 준칙만을 따라 행위하라.‘   그러니까 내가 무슨 일을 행할 때 다른 사람도 모두 그와 같은 상황에서 그와 같이 행하기를 내가 바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정언적 명령을 이렇개 표현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언제나 목적 자체로서 대해야지 단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대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당신이 인기를 얻으려고 다른 사람과 관계한다면 넌 도덕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너는 도덕법칙에 대한 내적 존경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겉으로만 도덕법칙과 일치하게 행동할뿐 것이다. 도덕적 행위라고 하는 것은 자기극복의 결과여야 한다. 당신이 도덕법칙을 따르는 것을 의무라고 여기고 무엇을 할 때에만, 당신은 그것을 도덕적 행위라고  얘기할 수 있다.  우리가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 때문에 행동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 때에만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감각할지 결정하지 못한다. 감각은 피할 수 없이 주어지고, 지금 우리가 원하든 그러지 않든 우리를 규정한다. 그러나 사람은 감성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이성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감성적 존재로서 완전히 자연의 질서를 따른다.  그래서 우리는 인과율의 지배도 받는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에겐 자유의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적 존재로서 세계 자체에 즉 우리가 감각하는 것과는 무관한 세게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오로지 자기의 실천이성을 따른다면, 그래서 우리가 도덕적 선택 능력을 갖는다면,  오직 그때 우리는 자유의지를 얻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 도덕법칙에 복종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따를 법칙을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나 사람이 자기의 쾌락만 추구한다면,  특별히 자유롭거나 독립적인 게 아니다. 사람은 가능한 모든 것의 노예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이기주의의 노예가 수도 있다. 스스로 쾌락과 악덕을 극복하는 데도 바로 독립성과 자유가 필요하다. 칸트 무덤에는 잘 알려진 그의 글 한 구절이 있다.  ‘  내가 그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새롭고 더욱 큰 경탄과 외경심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 두가지 있다. 그것은 내 머리위의 별빛, 찬란한 하늘과 내 마음속의 도덕법이다.’

 

낭만주의는 18세기말에 시작되어 19세기중반까지 계속되었다. 낭만주의는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이성만을 편파적으로 찬미하는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그들에게서 이성 대신 새로나온 말들은 감정, 환상, 체험, 동경 등이 있다. 루소가 감정의 중요성을 언급했고, 일방적인 이성 중시를 비판했다. 낭만주의에 이르러 개인이 존재의 개별적인 해석을 위한 소위 자유 통행권을 얻게 되었다.  낭만주의자들은 거리낌 없이 자아를 찬미하였다.  배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우리는 그의 고유감정과 동경을 표현해 낸 베토벤이라는 개인을 만나게 된다.  베토벤은 자유로운 예술가였다. 신의 영광을 위해 엄격한 규칙에 따라 작품들을 작곡한 바하와 헨델 같은 바로크의 거장들과는 아주 달랐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도 개인주의자였다. 르네상스와 낭만주의자는 유사점이 많다. 그 중 하나는 인간의 의식에서 에술이 갖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우리가 사심없이 어떤 예술작품을 가능한 한 집중적으로 체험하려고 예술작품에 다가간다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즉, 우리 이성의 한계를 초월하게 된다.

 

칸트에 따르면, 예술가는 자신의 인식능력을 자유로운 놀이 가운데서 발휘한다.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는 예술가 활동은 하나의 놀이이고, 놀이를 즐기는 사람만이 자유롭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기 스스로 법칙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 낭만주의자들은 오로지 예술만이 우리를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에 더욱 가까이 가게 해준다고 믿었다. 몇몇 낭만주의자들은 예술가를 신과 비교하였다. 예술가는 바로 신이 세계를 창조한 것 처럼 자기자신의 현실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일종의 세계를 창조하는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먼 것과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은 낭만주의자들릐 전형이었다. 중세를 동경하였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암흑시대로 여겨졌던 중세의 가치를 낭만주의들은 활발히 재평가하였다. 그리고 신비한 종교가 있는 동양을 그리워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어두움, 섬뜩함, 신비스러움 처럼 우리가 인생에서 어두운 면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에 몰두하였다. 19세기 전반에 유럽 각 지역에서 특히 독일에서 문화가 전성기를 맞았다.

 

전형적인 낭만주의자는 청년들, 공부에 뜻 없는 대학생들이었다.  낭만주의 운동은 심지어 150년 후의 히피문화와 아주 뚜렷한 유사점도 갖고 있다.  게으름은 천재의 이상이고, 나태함은 낭만주의의 첫째 덕목이라고 했다. 낭만주의자는 마땅히 인생을 직접 체험해 보거나, 아예 꿈이나 공상에 잠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실제로 자연에 대한 동경과 철저한 자연신비주의는 낭만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에 속한다.  낭만주의는 특히 계몽주의 시대의 기계적인 세계상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낭만주의 가리켜 그 옛날

총체적인 사유의 르네상스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데카르트와 흄은 자아와 연장사물을 명확히 구분했다. 칸트 역시 인식하는 자아와 자연자체를 명확히 분리했다. 그런데 낭만주의자들은 이제 자연을 유일한 큰 자아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들은 세계영혼 혹은 세계정신 같은 표현도 썼다.

 

가장 낭만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에 따르면, 자연은 사람의 영혼은 물론 물리적 현실도 유일신이나 세계 정신의 표현이다. 셸링은 자연은 볼 수 있는 정신이고, 정신은 볼 수 없는 자연이라고 말했다. 낭만주의자들에겐 철학과 자연연구 그리고 시, 문학은 보다 고차원적인 통일 지향한다. 이제 자연은 죽은 기계가 아니어도 살아있는 세계정신이므로, 연구실에 앉아 영감을 받아 시를 쓰던 꽃의 생활과 암석의 합성을 연구하든 정신과 물질은 단지 한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낭만주의 자연관의 특징은 대체로 자연을 하나의 유기체로, 즉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안에 있는 가능성을 발전시키는 하나의 통일체로 본 것이다.  자연은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한 송이 꽃과도 같다.  혹은 자기의 시를 써 보이는 시인과도 같다.  낭만주의는 각 민족이 갖고 있는 고유한 동질성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데 기여했다. 창작 음악이란 개인이 예를 들면, 베토벤 같은 사람이 작곡한 음악을 말한다. 민속음악이란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이 공동으로 만든 것이다. 창작동화는 안데르센 같은 한 작가가 상상해서 쓴 글을 말한다. 동화라는 장르는 낭만주의들의 대단한 열정으로 장려되었다. 동화는 낭만주의자들의 문학적 이상이었다. 특히 동화는 작가 자신의 창작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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