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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칸트(1)

칸트는 로크, 버클리, 흄 같은 경험주의자는 물론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같은 합리주의자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었다. 합리주의자가 모든 인식의 기초는 사람의 의식에 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경험주의자는 세계에 관한 모든 지식을 감각과 경험에서 이끌어 내려고 했다.  흄은 그 밖에도 우리 감각 인상의 도움만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는 명확한 한계가 있음을 제시했다. 칸트 이후 모든 철학자들은 세계는 우리가 지각하는 그대로인가, 아니면 우리의 이성이 파악하는 데로 존재하는가? 에 집중했다. 칸트는 우리가 세계를 경험할 때 지각은 물론 이성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칸트는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이 감각경험 덕분이라는 흄과 경험주의자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외부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결정하는 중요한 전제조건들이 우리의 이성에 내재한다고 했다.

 

빨간색 렌즈 안경은 모든 세상이 빨갛게 보인다.  현실을 체험하는 방식을 안경알이 결정하기 때문이다우리가 보는 세계은 우리 외부에 있는 세계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을 보는 방식은 안경알과도 관련이 있다.  이 순간 세계가 빨갛게 보이더라도 세계가 빨갛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안경은 우리가 보는 세계를 보는 방식을 결정하는 전제조건이다.  칸트는 우리의 모든 경험을 특정 짓는 전제도 이성에 있다고 말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특히 시간과 공간속 현상으로 파악할 것이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사람이 지닌 직관의 두 형식이라고 했다.  이러한 두 형식은 모든 경험에 앞서서 우리의 의식 속에 주어져 있다. 우리가 이성의 안경을 벗을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칸트의 말은 사물을 시간과 공간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사람이 가진 타고난 본성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인도에서 자라는지 그린란드에서 자라는지에 따라 우리가 보는 사물은 달라진다. 그러나 어디서든 우리는 세계를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것으로 체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은 무엇보다도 우리 의식의 속성이지 세계의 속성은 아니다. 사람의 의식은 단지 외부에서 받은 감각 인상을 적는 수동적인 철판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적으로 형성하는 기관이다. 의식자체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근본 구조를 결정한다. 우리가 물을 병에 부으면, 물은 병과 똑같은 형상이 된다. 이처럼 감각인상 역시 우리 직관의 형식에 따르게 된다. 칸트는 의식이 사물에 따를 뿐 아니라, 사물 역시 의식에 따른다고 했다. 

 

인과율은 언제나 절대적으로 타당하다. 왜냐하면 사람의 이성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그것을 고찰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인과율이 우리 내면에 있다고 했다.  칸트가 사물 자체와 우리에게 보이는 사물을 구분하는 일은 그가 철학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물자체가 어떤지 우리는 절대로 확실히 경험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사물이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만 알 수 있다.  그 대신 우리는 사물을 사람의 이성이 어떻게 파악하는지는 경험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다. 칸트가 말하는 바로는 아이의 이성은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지각 재료도 다룰 능력이 없다. 우리가 지각해 보지 않고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외적인 관계가 있다.  그것을 인식의 재료라고 부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안에 자리잡은 내적관계들이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시간과 공간 속의 사건으로 관찰하고, 게다가 그것을 변경할 수 없는 인과율에 따른 진행과정으로 간주한다.  그것을 우리는 인식의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불멸하는 영혼을 갖고 있는가? 또 유일한 신이 존재하는가? 자연은 또 쪼갤 수 없이 작은 미립자로 이루어졌는가? 그리고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칸트는 바로 이 중대한 철학문제에 대해 이성이 우리 인식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론 시람의 이성이나 본성에 근본적으로 그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충동이 있다. 우리 자신은 우주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우리가 전체를 모두 인식한다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인식을 위한 재료를 우리의 감각으로 받아들이지만, 이러한 재료를 인식하는 일은 우리 이성의 속성에 따른다. 예를 들면 한 사건의 원인을 묻는 것은 이성의 본성에 따른 것이다. 우리는 바닥을 굴러가는 공의 작은 일부이다. 우리는 공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늘 공이 어디서 왔는지 묻는 것이 인간 이성의 본성이다.그래서 묻고 또 물어 더 이상 물을 수 없을 때까지 그 중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우리가 물고 늘어질만한 확고한 질료는 없다. 우리는 물론 세계가 이미 늘 있어 왔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시작없이 지금까지 늘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번엔 반대되는 입장에 서서 세계가 언젠가 생겨났음이 틀림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세계는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생겨났음이 틀림없다.

 

칸트는 우리의 경험과 이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 실제로 종교를 위한 자리를 남겨놓았다칸트는 개신교도였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특징은 오로지 믿음을 토대로 삼은 것이다.  칸트는 더 나아가서 사람이 불멸의 영혼을 지니며, 신이 존재하고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도덕의 가능성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로 간주하였다. 그는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과 또 사람의 자유의지와 신에 대한 믿음을 실천적 요청이라고 표현했다. 칸트에 의하면 실천적 요청이란 사람의 실천,  즉 사람의 행위와 도덕을 위해 인정 되어야만 하는 어떤 것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의 현존을 인정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필연적인 것이라고 칸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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