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을 하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로 서 있다. 어쩌면 우리가 어떤 존재의 생각 속에서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한갓 관념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 한갓 관념물에 지나지 않는다' 는 사실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존재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며 누구냐'는 거다.
계몽주의 이념에 관해 다음 관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 권위에 대한 반발
* 합리주의
* 계몽주의
* 문화낙관주의
* 자연으로 돌아가라.
* 인본주의적 기독교 사상
* 인간의 권리
흄 다음으로 독일의 칸트가 위대한 철학체계를 구축했다. 18세기 초반에는 유럽 철학의 중심지가 영국이었고, 중반에는 프랑스, 그리고 후반에는 독일이었다. 프랑스 계몽철학자들은 자유사상이 발전한 영국을 찾아갔다. 영국의 자연과학자, 특히 뉴턴의 일반 물리학이 그들을 매혹시켰다. 특히 영국의 철학, 그중에서도 로크 정치철학이 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 후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모든 권위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진리들을 의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권위에 대한 반발은 주로 교회, 왕, 귀족에 대한 것이었다. 1789년 새로운 사상들은 그보다 먼저 나타났다. 합리주의다.
로크는 신과 어떤 도덕적 규범에 대한 믿음을 인간 이성의 본질적 구성 요소라고 보았다. 그것은 또 프랑스 계몽철학 핵심이다. 영국 사람이 상식에 관해 이야기 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명증성에 관해 이야기 한다, 영국사람의 상식은 건전한 이성이라고 풀이 할 수 있다. 그리스 소크라테스와 스토아 철학자 같은 인본주의자들 처럼 대부분의 계몽철학자는 인간의 이성에 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를 단순히 합리주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연과학이 자연이 합리적으로 조직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계몽철학자에게는 인간의 변치 않는 이성과 일치하는 도덕과 윤리, 그리고 종교의 기초를 세우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본래적 의미의 계몽사상을 이끌어내었다. 계몽주의자들은 민중이 계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중사이에서 무지와 미신이 횡행했다. 따라서 교육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계몽주의자들은 이성과 지식이 널리 보급되고 나면 인류가 커다른 진보를 이룰 수있으리라 믿었다. 비합리성과 무지가 사라지고 계몽된 인간이 츨현하리라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는 지식이 많을수록 세상이 더 좋아지리라는 말을 무턱대고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가 문명 비판의 구호였다. 하지만 계몽철학자들은 자연을 거의 이성과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이성은 교회나 문명과는 반대로 자연이 인간에게 준 것이니까. 원시종족들은 문명이 없기 때문에 종종 유럽인들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장자크 루소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나쁜 요소는 인간과 자연을 멀어지게 만드는 문명에 있다고 했다. 유년기의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한 것은 계몽주의 시대라고 말 할 수 있다. 그 전에는 유년기를 단지 어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로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역시 인간의 자연적 이성과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본주의적 가독교와 싸웠다. 그러나 대부분 계몽사상가들은 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계몽사상가 들은 많은 비합리적인 교의와 신조에서 기독교를 해방시키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신론理神論에 빠지기도 했다. 이신론이란 신이 오래전에 세계를 창조했지만, 창조한 후에는 이 세계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견해다. 신은 인간에게 오로지 자연법칙으로만 인식할 수 있는 지고의 존제가 되었다. 프랑스 계몽철학은 인간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이론으로 만족하지 않고, 시민의 자연권을 위해 싸웠다. 무엇보다 그들은 언론의 자유를 위해 사전검열에 반대하며 투쟁했다. 종교와 도덕, 정치 영역에서는 개인에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견해를 표현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89년 마침내 프랑스 입법의회는 개인권 신성불가침의 원칙을 선포했다. 계몽주의자들은 천부적 권리를 자연권으로 이해했다. 한 나라의 법률은 자연법과 완벽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어떤 개인이나 소수민족이 무법적인 부자유와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연법에 호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789년의 혁명은 모든 시민에게 해당되는 일련의 권리들을 천명했으나, 정작 시민으로서 간주되는 사람은 남자뿐이었다. 계몽철학자 콩도르세는 여성 권리에 대한 글을 발표해 여자에게도 남자에게 마찬가지로 자연권이 있음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