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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철학 (지바마사야 지음, 박제

겉도는 이야기에 자유가 깃든다.

우리가 깊게 공부하는 이유는 환경의 동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이다.  근본적으로 깊은 공부,  래디컬 러닝이란 언어편중적 인간이 되는것이다.  언어편중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행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언어를 그 자체로서 조직하려는 의식을 높이는 것이다언어의 도구적 사용에서 완구적 사용으로 향하는 것이다.  환경에 의존하여 코드에 순종하는 생활이 우선 기본 값으로 주어진다. 코드는 순종하는 기본값 상태는 보수적이다. 이와 달리 공부를 통해 체득하기 바라는 것은 비판적 자세다. 자유의 여지는 오히려 동조에 서툴러질 때 깃든다. 그것은 환경에서 겉도는 이야기다.  공부를 통해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재수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언어가 재수 없어져서 환경에 맞지 않는 사람이 된다. 공부의 깊은 주제는 기존 당신에게는 재수없는 일이다. 촌스러운 일이다. 애초에 언어는 타자이므로 자신에게서 겉도는 가상언어 차원에서 지금까지는 진지하게 행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본다.

 

환경에서 겉도는 이야기를 분석하면 공부의 본질을 알게 된다. 겉도는 이야기 본질은 공동성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주변의 동조와 관계를 끊는다는 뜻이다.  목적적, 공동적으로 언어 행위를 하기 무언가를 말한다. 나아가 이것은 완구적 언어사용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자기 목적적, 탈공동적인 이야기와 마주 한다. 언어를 주변의 동조로부터 떼어내어 언어자체로서 완구적으로 사용하여 가능성을 자유롭게 조작하는 기술을 설명하겠다.  아이러니와 유머가 바로 환경에서 자유로워져서 바깥으로 나가기 위한 본질적인 사고기술이다. 우리의 사고는 아이러니형과 유머형으로 나뉜다는 가설을 세울 것이다. 아이러니와 유머라는 두 겉돌기는 그야말로 대화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범하기 쉬운 실수다. 모두 함께 있는 공간에 가면 아이러니로 그들의 결속에 찬물을 끼얹거나 유머로 딴소리를 하고 싶어진다. 운동을 해서 본격적으로 근육을 늘리려면 동시에 지방이 붙는 것을 참아야 한다. 지방을 없애면서 근육량을 줄이는 것은 무리다. 일단 중량기에 들어가 근육과 지방 모두를 함께 늘린후에 훈련을 계속하면서, 식이 제한을 하고 가능한 한 지방만 없애는 감량기로 들어가야 한다.  일단 동조에 서툴러지고 재수 없음을 느끼는 단계를 거친 후 새로운 동조에 이르게 된다.

 

대화의 코드란 어떤 대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대화의 코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우선 화제 하나를 어떤 언어 행위를 위해서 목적적으로 말한다. 이것이 큰 틀이다. 가령 연예인의 불륜 보도에 대해(화제),  그 연예인을 비난하기 위해 대화하고 있다(목적)고 치자.  이 대화는 '불륜은 악이다'라고 서로 인정함으로써(기치관의 전제), 자신들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목적)  이러한 매개변수를 대체로 알아차리면 '분위기 파악을 잘한다'고 말한다.  코드는 대화의 흐름 속에서 불안정한 형태로 상정될 뿐이다.  대화의 코드는 항상 자연스레 형성되며 불확정적이고 흔들린다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를 자연스레 알 수는 있다. 이 코드의 불확정성에 대한 설명은 대화뿐 아니라 행위 전반의 당위 즉 환경의 코드에 대해서 적용할 수 있다.

 

환경의 코드는 항상 불확정적이며 흔들린다. 대화에도 코드를 성정할 수 있으며, 사람을 만날 때와 몸짓, 팀으로 하는 작업, 복장 등 온갖 것에 코드를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코드는 늘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며 불확정한 것일 뿐이다. 춧코미(아이러니)와 보케(유머)는 코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더욱 공격적으로 말하면 코드를 전복해 버리는 기술이다. 춧코미란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주변 이야기를 '그렇지 않아'라고 부정하는 것이다. 심각하게 말하자면 의심하고 비판하는 일이다. 보케란 혼자서 갑자기 엇나간 발언을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환경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순수하지 않은 발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춧코미는 애초에 일부러 하는 것이다.  이때 일부러를 '자각적'이라는 말로 바꿔 부르기로 하자. 츳코미는 기본적으로 일부러=자각적이다. 환경에 대해 자각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면 최소한의 츳코미 의식은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그 의식이란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고의 기술로서 자각적으로 행하는 춧코미나 보케를 설명하려 한다. 환경(=타자관계)은 나 자신을 그 환경의 인간으로 구축한다.  가령 지금껏 결혼하지 않았는데 주위에서 결혼하기 시작하면서  ‘난 괜찬을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치자. 연애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데 잘못된 것일까? 나만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것이 자기 춧코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