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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군디 가슐러, 프랑크

항상 비폭력적이어야 하나요?

항상 비폭력적이어야 하는가?  마음을 열 준비가 되었는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마음이 있는지, 다른 사람과 연결하기를 원하는지 내 자신에게 물어볼 때 목표에 가까워진다.  마셜 로젠버그는' 행위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은 불완전하게 행위할 가치도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비록 불안하지만 몇 발자국이라도 나아가는 것을 방해해 온 완벽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이 제멋대로 노는 시끄럽고 정신없는 상황에서 괴로움을 참고 있는 어른들이 있다. 아이들도 그들이 원하는 만큼 대단히 함께 무엇인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 그렇다고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 질서를 잡으면 몇 사람의 욕구만 충족될 뿐이다.'아이들에게 무한대의 자유를 주는 것이냐, 내 욕구를 충족할거야'  라는 마음으로 상황을 완전히 통제해 버리는 것 모두 비폭력 대화에 속하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최소한 한쪽의 욕구가 완전히 무시되어 버리면 우리의 관계를 깊게 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의 욕구는 이 순간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따라 계속 변한다. 이것은 아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유효한 합의를 맺고 싶어한다. 그 합의가 무효화되면 의지할 수 있는 또 다른 합의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합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합의를 맺은 바탕, 즉 그 사람과 맺고 있는 관계이다. 이는 내가 이웃의 삶에 도움이 될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가하는 문제다. 우리가 사전에 정확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소원도 있다.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면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한다. 비싼 물건을 사고 싶으면 용돈을 절약해야 한다. 여기서 규제는 순종이나 체벌, 부모의 명령이나 지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자기규제, 자기 훈련, 자신과의 연결을 뜻한다‘나는 피아노 연습을 해야 한다와 나는 피아노 연습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 사이의 차이는 아주 미세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이다.  내 개인의 안녕에 도움이 되는 이익을 얻기 위해 나는 의식적이면서도 어쩌면 즐거운 포기를 감행한다.

 

비폭력 대화 지도자 클라우스 카르슈테트는 우리가 스스로를 규제할 수 있음을 다음과 같은 은유를 통해 보여준다.  ‘ 나는 내 자신의 마부다.  즉 내 감정을 지배하는 것이지 감정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규제는 ‘신체- 정신-ㅡ영혼’이라는 단위로 이루어진‘ 자신의 성전을 보호하고, 교육하고, 가꾸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에 우리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신체를 가꾸며, 삶의 문제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성과 정신을 계발하고 인간적으로 공존하는 삶을 살기 위해 마음과 영혼을 교육하는 것이다.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나는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고 또 책임을 지고 싶어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는 내가 직접 경험한 혹은 내가 믿는 사람들이 경험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로 선택한다. 어른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자신과 소통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경험이 적다. 게다가 아이들 대부분은 현재만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내일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경험을 전달해 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이것 또한 이해하기와 이해받기의 방법을 사용하면 가장 성공할 수 있다. ‘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더 잘 알아’가 아니라  ‘ 이것과 관련해 내가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너에게 이러한 선택을 제안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부모의 이러한 말은 아이가 자신의 성전을 짓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잘 지내고 아이들의 욕구가 층족되거나 존중될 경우, 집이나 유치원에서의 삶이 쉬워지기 때문에 어른들의 일부 욕구도 함께 충족된다. 어른들이 자신을 위해 신경을 쓴다면 이것 또한 가족이나 유치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떠한 욕구가 객관적으로 더 중요하고 우선인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욕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당연히 내 욕구가 가장 중요하다. 아이의 생각도 같을 것이다. 나는 나는 욕구를 가끔은 잠시 미루어 놓을 수 있으며, 욕구를 잠재울 수 있는 많은 목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미루어 놓은 욕구를 나중에 충족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경험이 부족해서이다. 또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행동방식을 나보다 훨씬 적게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아이에게 먼저 우선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느낌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느낌을 파악하고 표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기분이 어때'라는 구체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던지는 질문과 '나는 -'라는 솔직한 대답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 관계뿐 아니라 연인관계에서도 그렇다.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아이들의 언어 발달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느낌은 추상적인 개념을 넘어 몸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려움, 기쁨, 거부감 등은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은 선과 악이 대결하는 내용의 동화를 좋아한다.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 착은 사람은 부자가 되는 행복한 결말에 익숙해져 있다. 아이들은 이러한 통화를 통해 가치관과 판단 기준을 세운다. 또한 사회에서 성공한 태도가 어떤 것인지도 배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이야기에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 역시 배운다는 점이다. 나쁜 사람은 처벌하고 짓밟아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나쁜 사람은 변함없이 나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고정관념도 자리잡게 된다. 또한 누가 그리고 무엇이 선하거나 약한자는 이미 정해져 있으며, 우리는 아무런 변함도 없을 뿐 아니라 책임도 없다는 생각도 갖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의도와 행동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은 아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돕는다.  즉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빨리 이해하고, 상대방이 겉으로 무엇을 보여 주던 간에 자신의 직관을 믿을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들은 어떤 사람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어떤 행동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