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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작은 세상(2)

땅속에 사는 미생물은 크기가 아주 작고, 아주 게으르다.  가장 활발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한 세기에 한번 분열하거나, 500년에 한번 이상은 분열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장수의 비결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인 모양이다.  사정이 나빠지면 박테리아는 모든 것을 닫아버리고, 좋은 시절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의 생물들도 전통적인 분류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 있다. 버섯, 사상균, 곰팡이, 효모, 말불버섯과 같은 진균류는 거의 언제나 식물로 취급되지만, 번식과 호흡 방법은 물론이고 자손을 만드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도 식물과 일치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보면 진균류는 특유의 질감을 주는 키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동물과 공통된 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식물과는 달리 광합성을 못하는 진균류는 크로로필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녹색이 아니다. 그 대신 진균류는 먹을 것 위에서 직접 성장한다. 진균류는 거의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콘크리트 벽에서 황을 섭취하기도 하고, 발가락 사이를 짓무르게 만들기도 한다. 식물들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유일하게 식물과 닮은 점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 뿐이다. 환경이 좋은 때에는 아메바와 비슷하게 단세포 상태로 지낸다. 그러나 환경이 나빠지면 중앙의 집합장소로 모여들어서 기적처럼 민달팽이가 된다. 민달팽이는 멋지지도 않고 멀리 움직이지도 못한다. 생물의 23가지 분류중에서 식물, 동물, 진균류의 세가지만이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크고, 그 중에도 미시적인 규모의 종이 들어있다. 언젠가는 왜 그런 미생물이 우리를 해치려고 하는가를 알고 싶어질 것이다.  우리를 열에 들뜨게 하거나, 오한에 떨게 하거나, 흉하게 염증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우리를 죽게 만드는 과정에서 미생물은 어떤 만족을 느끼게 될까? 어쨌든 죽은 숙주는 장기적인 은신처가 되기 어렵다.  우선 대부분의 미생물은 인간이 생존에 대해서 중립적이거나 심지어 득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사나운 감염을 일으키는 미생물인 올바키아라는 세균은 실제로 사람은 물론이고, 어떤 척추동물도 해치지 않는다.

 

질병의 증상이 병을 확산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구토, 재채기, 설사 등은 미생물이 숙주에서 벗어나서 다른 숙주로 옮겨가는 어주 좋은 수단이다.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이동성이 있는 제3의 숙주를 활용하는 것이다. 감염성 미생물은 모기를 아주 좋아한다.  희생자의 방어 메커니즘이 자신들의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모기의 바늘을 통해서 직접 혈액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말라리아, 황열, 뎅기열, 뇌염과 같은 A급 질병을 비롯해서 100여 가지의 덜 유명하지만, 역시 치명적인 질병들이 모두 모기에 물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비누로 샤워를 하거나 탈취제로 닦아내는 과정에서 수백만의 세균을 몰살시키면서도 아무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세균들도 사람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가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다.

 

사람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미생물은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몸은 여러 종류의 방어적인 백혈구를 가지고 있다.  특별한 종류의 침입자를 확인해서 파괴하도록 고안된 1000만여 종의 백혈구가 존재한다그러나 100여만 여종의 서로 다른 현역부대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각 종류의 백혈구들은 소수의 보초병만을 세워둔다. 항원이라고 알려진 감염체가 침입하면, 적당한 보충병이 침입자를 확인한 후에 적절한 형태의 후원병을 요청하게 된다. 몸에서 그런 후원병을 생산하는 동안에는 아픈 증상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다. 후원병이 행동에 들어가게 되면 회복이 시작된다.  잔인한 백혈구는 발견할 수 있는 마지막 병원균까지 찾아내서 죽여버린다.  침입자들은 멸종을 피하기 위해서 두 가지 기본적인 전략을 갖추도록 진화했다.  독감 같은 일반적인 감염성 질병처럼 아주 신속하게 공격을 한 후에 새로운 숙주로 옮겨가거나, 아니면 AIDS를 일으키는 HIV처럼 백혈구가 자신들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위장을 하고,  아무 피해도 주지 않은 채로 세포의 핵 속에 숨어있다가 한꺼번에 튀어나와서 활동을 시작한다.

 

선진국에서 사용되는 항생제 약 70% 정도는 가축에게 쓰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장을 촉진시키거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 사료에 섞어서 먹이는 경우도 많다. 그런 남용 때문에 세균들이 항생제에 대해서 내성을 가지도록 진화하게 되었다. 이제는 세균들이 마음놓고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바이러스는 또한 전혀 새롭고 놀라운 형태로 느닷없이 세상에 출현했다가 나타날 때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기막힌 능력도 가지고 있다.  4년 동안의 제1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사람의 수는 2,100만 명이었다.  돼지 독감은 처음 넉달 동안에 같은 수의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미국인의 80%는 적군의 총이 아니라 독감 때문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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