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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모두에게 작별을 (1)

지의류는 사실 진균과 조류의 연합체이다진균류는 산을 분비해 암석을 녹이고, 조류는 그때 녹아나온 미네랄을 먹이로 변환시켜서 함께 살아간다.  거친 환경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이 그렇듯이 지의류도 느리게 성장한다. 지의류가 셔츠 단추 크기만 하게 자라려면, 반세기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생명이라는 것이 그저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생명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계획과 희망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존재라는 스스로의 믿음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지의류에게 생명이란 무엇일까? 지의류가 존재하고 싶은 충동은 우리만큼 강하거나 어쩌면 더 강할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숲속의 바위에 붙어서 수십년을 지내야 한다면 절망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의류는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끼류는 자신의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어떠한 모욕도 참아낸다. 간단히 말해서 생명은 그저 존재하고 싶을 뿐이다.

 

만약 45억년에 이르는 지구이 역사를 하루라고 친다면,  최초의 단순한 단세포 생물이 처음으로 출현한 것은 아주 이른 새벽인 4시경이었지만, 그로부터 열여섯시간 동안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 하루의 6분의 5가 지나버린 저녁 8시30분이 될 때까지도 지구는 불안정한 미생물을 제외하면, 우주에 자랑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런후 마침내 해양식물이 처음 등장했고 20분 후에는 최초의 해파리와 함께 레지널드 스프리그가 호주에서 처음 발견했던 수수께끼 같은 에디아카라 동물상(선캄브리아기 다세포 동물)이 등장했다. 밤 9시 4분에 삼엽충이 헤엄치며 등장했고, 곧 이어 버제스 이판암의 멋진 생물들이 나타났다. (고등생물이 놀라울 정도로 번성하기 시작한 캄브리아기 번성기 직전의 화석들이 가득한 이판암) 밤 10시 직전에 땅위에서 사는 식물느닷없이 출현했다. 그리고 하루가 두시간도 남지 않았던 그 직후 최초의 육상동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구는 10분 정도의 온화한 기후 덕분에 밤 10시 24분이 되어가면서 거대한 석탄기의 숲으로 덮혔고, 처음으로 날개가 달린 곤충이 등장했다. 그 숲의 잔재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석탄을 제공해 준다.

 

공룡은 밤 11 직전에 무대에 등장해서 약 45분간 무대를 휩쓸었다. 그들은 자정을 21분 남겨둔 시각에 갑자기 사라지면서 포유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인간은 자정을 1분 17초 남겨둔 시각에 나타났다. 그런 시간 척도에서 기록으로 남아있는 우리의 역사는 겨우 몇 초에 해당하는 기간이고, 사람의 일생은 한 순간에 불과하다. 이렇게 가속화 된 하루를 보면, 대륙은 잇달아 미끌어지면서 서로 충돌한다.  산들이 솟았다가 사라지고, 바다가 등장했다가 말라버리고, 빙하가 크졌다가 줄어들기도 한다. 그리고 1분에 세차례 정도씩 맨손 크기나 그보다 큰 운석이나 혜성이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불꽃이 번쩍인다.  그렇게 찧어 대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도대체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사실 오랫동안 견뎌낸 생명은 많지 않다.

 

지구의 45억년 역사에서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최근에 등장한 것인가를 잘 이해하려면, 두팔을 완전히 펴고 왼쪽 손끝에서 오른쪽 손끝까지를 지구의 역사 전체를 나타낸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잣대에서 왼손의 손톱끝에서 오른손 손목까지가 선캄브리아기에 해당한다. (약 46억년 전 지각이 형성된 때 시작되어 약 5억 7,000만년 전 캄브리아기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된 지구 역사상 가장 장구한 지질시대.)  고등동물은 모두 손바닥 안에서 생겨났고,  인간의 모든 역사는 손톱 줄로 손톱을 다듬을 때 떨어져 나오는 손톱 부스러기에 불과하다. 다행이 아직 재앙의 순간은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그런 순간이 다가올 가능성이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은 멸종한다. 그런 멸종은 정기적으로 찾아 온다생물종들은 지구상에 출현해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지만, 쓰러져서 죽어가는 일도 역시 일상적인 것이다.

 

육지의 환경은 끔찍하다. 덥고 건조하고 강한 자외선이 내리쪼이고, 몸을 쉽게 움직이도록 해주는 부력이 존재 하지도 않는다. 생물은 육상에 살기 위해서 해부학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육상생물은 무엇 보다 산소를 물에서 걸러내지않고, 직접 공기중에서 흡입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것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물에서 확실히 벗어나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바다속에서의 삶이 점점 위험 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륙이 서서히 판게아라는 거대한 대륙으로 합쳐짐에 따라 해안선이 엄청나게 줄어들었고, 따라서 해안의 서식지도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리고 무엇이나 먹어치우는 난폭한 포식동물이 출현했다. 그 포식자는 처음부터 다른 생물들을 너무 잘 공격했기 때문에 영겁이 지나는 동안에도 거의 변화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바로 상어였다. 그때보다 물 바깥에서 살 곳을 찾아야 할 필요가 더 절실했던 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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