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사 인문학 (전국국어교사모임, 황

문학은 어떻게 아이들의 공감능력을 키우는가? (1)

지금부터 저는 타자와의 만남으로서의 문학행위 그리고 문학교육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문학행위'란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만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읽는다는 것은 텍스트를 통해 누군가를 상상 속에 떠올리고, 그의 삶과 그가 처한 상황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인지하고, 우리 나름대로 맥락을 파악하여 이해하는 일입니다.  이때 문학작품은 소설, 시詩, 수필일 수도 있고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수도 있습니다.  고전문학의 경우 등장인물이나 그 뒤에 있다고 생각되는 작자는,  독자와 시간적으로 격리된 타자입니다. 문학행위는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한국문학과 외국문학을 나눌 것 없이 자신의 삶과는 뭐가 달라도 다른 타자를 만나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개연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비평사의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 했고,  오늘날 문학예술론 에서도 중요한 용어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희랍어로 철학적이라는 말의 어원은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의 애지愛智입니다.  애지는 객관적 지식을 아는 것을 넘어서는 것으로 삶에 대한 타당성 있는 통찰을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플롯을 강조합니다. 긴밀한 구성에 의해 독자가 충분히 있을 법한 일, 즉 개연성이 있는 일로 받아들이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형식주의적 비평에서는 긴밀한 구성을 통해 '그 일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라고 독자에게 수긍과 확신을 불러일으킬 때 개연성이 확보 된다고 봅니다. 구성의 효과로 개연성이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개연성은 작품 내적으로 구성 되지만, 그 개연성을 성립시키는 근거는 작품 외부의 현실 경험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하우스는 ‘시학’의 개연성론이 지닌 철학적 전제를 다음과 같이 집약했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에 의하면, 우리는 경험논리에 입각해서 작품 내적사건의 발전 논리를 판단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이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있을 만큼 작중 인물이 우리와 비슷하다고 가정한다. 우리는 공통된 인간 경험에 근거한 인간적 척도로써 작중인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런 이해와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배경이 필요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쓰면서 그리스 바깥세계의 사람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득하게 먼 과거나 앞으로 다가올 먼 미래의 사람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시대의 지적 문화적 토양을 같이 하는 그리스 사람들만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독자들이 오늘날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공통의 이해와 감상이 나올까요? 문학작품을 읽는 능력이 뛰어난 독자들이나, 꽤 높은 수준의 훈련을 한 바평가들 사이에서도 문학작품의 이해와 감상에는 큰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경험기반과 사고방식, 인간 이해의 차이에서 생겨납니다. 문학 효용중 하나는 이렇게 서로 경쟁하는 해석과 평가의 공존을 세상의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타자의 경험과 기대 지평을 또 다른 자아 모습으로 인정하고, 나와 너의 해석이 관점과 맥락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음을 알면서 대화에 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학의 경우 에는 특정한 답을 정답이라고 말하지만, 문학에서는 각기 다른 답이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문학만 그런게 아니라 인간 세상의 삶이 그렇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과 경험, 가치척도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상대 주장을 검토하여 그 주장에 근거해 있는 논리를 파악합니다. 그러면 각기 다른 주장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됩니다.  이런 훈련을 거치다보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덜 적대적이 됩니다. 이것은 민주시민을 기르는데 필요한 훈련입니다. 어떤 작품들은 당시의 시대 상황이나 사회집단들에게 통하는 어떤 가치나 이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도전합니다또 어떤 문학작품은 개연성의 승인이 불확실한 경계선에서 인간을 관찰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그 시대 사람들이 가진 공통의 경험,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인간적 척도가 개연성의 판단 기반입니다. 그런데 어떤 작가들은 여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도발적인 이야기를 작품으로 씁니다. 어떤 작품들은 당시의 비난과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아 작품이 포착한 욕망의 개연성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래서 동시대 사람들의 사고와 감성을 확장시키고,  인간 존재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뒤흔들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수정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