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이 당선되자 전인교육, 평등교육, 계급간 학력격차 해소 등이 주요 교육정책이 되었습니다. 3년뒤 공화당이 집권하면서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기초학력 강화, 시험강화, 선발제도 강화 그리고 공민교육으로서 정치 이데올로기 강화 등 교육 흐름이 보수화 되었습니다. 이때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이라는 책을 내면서 논쟁에 개입했습니다. 두 당은 모두 현실적인 불평등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평등으로 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뿐이고, 교육에 내재된 근본적인 불평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무지한 스승' 중심인물은 자코토라는 사람입니다. 1818년 루벵 대학 불문학 담당 외국인 강사가 된 조제프 자코토는 어떤 지적 모험을 했다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자토토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이미 14살 때 수사학 대리 강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국회의원이었던 자코토는 부르봉 왕가가 복귀되면서 네덜란드로 망명합니다. 네덜란드 왕으로부터 프랑스어 강사 자리를 얻게 됩니다.
갑자기 망명했기에 네덜란드어를 몰랐습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을 구입해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아무 설명도 없이 무조건 읽고, 쓰고, 외우게 햇습니다. 학생들은 양쪽 언어의 공통점을 발견해 나갔고, 단어와 문법도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자코토의 이런 교육방법은 상당한 관심을 끌었지만, 당시 주도권을 지배하고 있었던 지배층은 자코토가 기존의 제도교육을 무너뜨린다고 비난했습니다. 자코토는 학생이 교사의 설명을 듣지 않고도 스스로 탐구함으로써 새로운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습니다. 유능한 학생과 무능한 학생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교육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인지를 역설합니다. 무지보다 더 나쁜 것은 무시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무지한 스승은 학생의 잠재력을 무한히 신뢰하고, 그 잠재력이 특정 시기와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발현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배우려고 하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를 깊이 탐구하고 거기서 하나의 원리를 끌어내면 나머지는 추론할 수 있습니다. 하나라도 잘 연결하면 그 다음부터는 낯선 것들을 연결시켜 전체적인 원리를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도의 물리학자이자 컴퓨터 공학자 수가타 미트라는 벽에 난 구멍이라는 실험을 했습니다. 뉴델리 어느 빈민가에서 자신의 사무실 한쪽 벽면에 구멍을 내고 거기에 컴퓨터를 설치햇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영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누구나 건물 밖에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도록 키보드와 모니터를 설치하고 인터넷도 연결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영어를 모르는 아이들이 모여들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원리를 체득한 것입니다.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먼저 온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하고 나서 다음에 온 아이들에게 원리를 설명해줍니다. 그렇게 협동학습으로 컴퓨터 원리를 깨우치고 게임까지 할 수 있게 발전한 것입니다.
미트라는 두번째 실험을 했습니다. 분자생물학에 관한 영어 자료를 컴퓨터에 깔아놓았습니다. 동네아이 들은 NGO 출신 젊은 여성에게 조력자 역할을 부탁했고, 그녀의 역할은 아이들이 계속 잘 할 수 있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조력자 역시 분자생물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조력자가 내용을 몰라도 학습에 충분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가타 미트라는 이 실험을 통해 최소 개입 학습이나 자기조직 학습체계를 끌어냈습니다. 오늘날 교수법에서 강조되는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든가 문제해결식 수업 등도 비슷한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 북부의 탄광촌 렉싱턴에 있는 노동자 교육협회에 라이언이라는 미술강사가 태어나서 한 번도 미술작품을 감상해 보지 못한 광부들에게 당신들이 그리고 싶은 것을 무작정 그려보라며, 물감과 팔레트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붓을 잡아본 광부들이 예상밖으로 표현이 풍부하고 개성적인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컴컴한 갱도에서 느꼈던 공포, 노동의 고단함, 가족과 나누는 소소한 기쁨 등 광부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삶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진솔함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그림은 감동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창작의 경험을 한 이후로는 자신들이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고,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예술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할 수도 잇습니다. 모든 사람의 예술적 잠재력이나 창조력에 있어서도 평등한 존재입니다. 예술교육에서는 주입식교육이나 기계적훈련보다는 스스로 체험하게 함으로써 자기표현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만든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삶의 변화를 꿈꾸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예술을 배우고 공유하는이유입니다. 얘술 과목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분과적인 지식교육의 한계를 넘어서 학생들이 몸과 마음이 통합된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적 체험이 필수적입니다. 제대로된 예술교육은 예체능계 과목을 정상화 하거나 몇 시간 늘리는데 그치지 않고, 예술을 교육의 중심으로 삼고 교육전체를 감싸는 일종의 베이스로 전면에 내세워야 가능합니다. 예체능과목이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뿐만 아니라 인성과 창의성 발달에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지요.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제시카 호프만 데이비스는 ‘ 예술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에서 예술 교육의 효과를 다음의 다섯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 예술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유형의 결과물로 만들어 놓는 것이기에 제 손으로 무언가를 창조했다는 기쁨을 준다는 것,
둘째 예술은 지식 위주의 교육으로 감정을 억압하기 쉬운 학생들에게 자기감정에 집중하고 마음껏 표현하게 한다는 것,
셋째 예술은 정답이 없기에 누구나 의미를 획득할 수 있고 다양한 해석이 공존하는 영역이라는 것,
넷째 예술은 탐구와 성찰의 과정으로서 결과보다 그 과정 자체가 소중하며, 결과물의 우열보다는 과정의 충실도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
다섯째 예술은 일종의 관계 맺기로써 다른 친구들 다른 분야 다른 예술장르들을 넘나들며, 결합해 보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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