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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학당 仁棲學堂

내 삶의 마지막 소명*

 

인서야! 앞으로 할아버지의 남은 삶에서 해야 할 소명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과 공부해온 것을 정리해서

우리 인서 삶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란다. 너무 복잡하고,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은 눈앞의 현실을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단다.

 

할아버지는 성공한 기업가도, 사회에 업적을 남기지도, 사회적 지위도, 명성도 얻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성찰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너에게 해주고 싶다. 이러한 기록들은 내가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는 바램이고, 내가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내 삶의 반성이기도 하다.

 

물론 앞으로 네가 살아갈 세상은 할아버지가 살아온 세상과는 과학기술,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너무도

많이 다를 것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확실한 것은, 인간은 항상

 ‘스스로 성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삶의 태도가 습관이 되어야 한다.

 

아침 저녁으로 잠깐만이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를

되돌아 봄으로써,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성찰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한 지식기반이 있어야 하고, 곁에 두고 참고할만한 지침서가 필요하다. 종교인들은 그들의 경전을

지침서로 삼고, 또 어떤 사람은 옛성인들의 고전을 삶의 지침서로 삼아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살아온 것처럼, 그냥 닥치는 대로 막 살아간단다.  나는 할아버지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너에게 도움이 될만한 지침서를 남겨두고 싶다.

 

인간의 생존수단은 지능이다. 이 지능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습득하게 한다.  하지만 개인마다

습득하는 지혜는 모두 다르다. 지혜는 일상의 삶과 경험, 환경에서 습득 되지만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한단다.

그냥 습득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한다. 일상의 삶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배운다는

자율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의 삶과 사회관습, 타성, 눈앞의 물질에 휘둘려 당장의 욕구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지혜를 익히는 주체는 내 몸이다. 이 말은 내가 머리로 안다는 것만으로 몸에 익혀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나'는 내 몸이 지혜를 익히도록 도와야 하고, 그로 인해 내가 잘 살아갈 수 있다. 잘 살기위해서는 내 몸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거지.

 

삶의 지혜는 내가 하는 경험, 환경과 공부에 의해 습득되며, 개인마다 타고난 자질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각 개인마다 겪어야 하는 경험, 주어진

환경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고, 잘 대응하기 위해 지혜가 필요한 것이지. 나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 어떻든 ‘어떻게 살 것인가?’

를 성찰하는, 공부하는 삶의 태도가 습관화 되어야 한다.

 

인간은 '정서적 바탕'위에 자신의 욕구를 만들고,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 올바른 정서적

바탕이 내 삶을 성숙하게 성장시키는 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하나이므로, 인간이

성장하는 원리나 식물이 성장하는 원리는 비슷하단다. 식물을 잘 키우려면, 먼저 땅을 잘 만들어야 한다.

식물이 ‘나’라면, 땅은 '육체와 정신 혹은 영혼'이라 할 수 있다.

 

육체는 대부분의 경우 사고, 질병,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정신이 건강하다면

육체는 자연적으로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정신, 영혼의 땅을 잘 일구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요소가 ‘세상에 대한 경이감’이다.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이다. 경이감이 비옥한 흙을 만든다. 인간의 삶의 모든 것은 경이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 할 수

있지. 경이감이 욕구를 만들고, 행동하게 하고, 삶을 즐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이감이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그래서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교감하게 한다. 원래

인간의 본성이 그러한데,  외부적 상황, 현실이 그 본성을 오염시킨단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오직 외부자극에 의해 행동하도록 강요하고 훈련시킨다. 인간을 기계적 메커니즘으로 그 무엇을 만들려고

한단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은 대부분은 자기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경이감의 바탕위에,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우주, 자연, 사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쌓아야 한다.

이러한 지식은 경험과 책을 통해 탐구되고 인식된다. 식물이 잘 성장하기 위해 좋은 땅과 공기와 물, 햇빛이

필요하다.  좋은 땅은 흙도 좋아야 하고, 질소, 탄소, 인산, 칼리 등의 영양분이 필요하다.  좋은 흙은 유전적,

환경적 영향도 있지만, 어릴 때 잘 일구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흙은 삶의 환경, 부모, 교육을 통해 세상을 열린마음으로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경이감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외부적 강제가 아닌 내부적 메커니즘에 의해 내 몸이 잘 작동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진정한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그리고 식물이 잘 자라는데 필요한 질소 등의 영양소는  인간에게는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이해력이 있어야 하고, 우주, 자연, 사회,

인간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경이감으로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표현하는 수단이 말이고

문자다. 그래서 대상에 대해 그것이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관념이든 그러한 것들에 대한 용어, 개념에

익숙해져야 거부감 없이 관심을 갖고,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이 열린다. 이러한 기반위에 자신만의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

 

이 세상의 어떤 학문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어떤 상황을 올바르게, 그 실체를 볼 수 있다. 식물의 상장에 필요한 햇빛, 물, 공기가 인문학이다. 

세상을 탐구하고, 이해하여 인간의 인성을 수양修養하는 것을 돕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인성은 일상의

경험과 종교와 성인들의 고전에서, 이 분야의 수많은 사상가와 현인들, 천재들이 남겨놓은 성과물의

도움으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은 없다. 그 물음은 결코 도덕적인, 윤리적인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물음은 잘 살기 위한 물음이고, 공부를 하기 위한 중요한 질문이다. 이 물음에 대한 탐구는,

'나'와 내 몸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 몸과 함께 살아가고, 가장 중요한 내 삶의 동반자란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내 몸을 잘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공부하는 목적이다. 그리고 그 몸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평생동안 만들어가야

하는 미완성이란다. 그래서 '평생동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숙명宿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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