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가 태어난지 6개월이 되었네. 요즘은 너는 배고프면 울고, 먹고 자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조금씩 세상에 관심을 갖고, 소리를 듣고, 보고, 맛보고, 느끼고 있는 것 같구나. 무엇을 뚫어지게 바라볼 때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고, 신기하고 예쁘구나! 이러한 너의 행동은 모든 생명들이 그러하듯이 생물학적 본능이겠지. 그렇지만 너는 아직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3-4개월 후면 아마 너는 ‘나’란 존재를 세상과 구분할 줄 알게 되겠지.
모든 생명들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기 위해 자연이 주는 생존도구를 가지고 태어난다. 새들은 하늘을 나는 날개를 , 호랑이는 날카로운 이빨과 힘을, 치타는 빠른 다리를....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갖고 태어나는 생존수단은 지능이다. 지능은 삶에 필요한 것들을 학습하게 하는 도구라 볼수 있단다. 지능은 네가 감각기관을 통해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느끼면서 경험한 것들에서 직접 배우는 지식들,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는 지식들을 습득하게 만든다. 또 네가 다른 사람과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네가 말과 글로 표현하게 하고, 세상과 다른 사람과 상대하면서 올바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대응하게 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 지능이다.
그래서 지능을 잘 활용하여 네가 올바른 지식을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 몸 이란다. 네가 ‘나’ 라고 인식하는 것과 내 몸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하나이지만, 때로는 분리해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네 스스로 자신을 관조觀照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네가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올바르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성찰省察 이라고 하지. 내가 한 세상을 잘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네 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네 몸을 잘 만들어야 네가 잘 살아갈 수 있다. 네 몸을 잘 만드는 과정이 공부다. 공부란 인간이 지능을 활용하여, 네 몸을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잘 학습하여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도록 그래서 좋은 생존의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수신修身이라고 한다.
인간은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성장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디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각 개인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지는 도구가 다르단다. 어떤 사람은 좋은 도구를 갖고 살아가게 되고, 어떤 사람은 생존도구가 빈약해서 힘들게 살아가기도 하지. 그 도구를 바탕으로 어떤 사람은 정치인이 되고, 의사가 되고, 과학자가 되고, 기업인이 되고, 기술자가 되고, 교사가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범죄자가 되기도 하지. 그래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사회에서, 어떤 직장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공부다.
공부는 학교에 가서 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일상의 경험이 몸이 만들어지는 데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또 어떤 환경에서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그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네 몸은 학습하여, 네가 세상 무엇에 관심을 갖게 하고, 호기심을 갖게 하고, 생각을 하게하고, 행동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무엇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은 그 무엇에 관심을 갖는 것이고, 관심을 갖게 위해서는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호기심이 공부의 시작이란다.
일상의 경험은 또 책을 얻은 지식으로 인해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오기도 하지. 네가 책으로 얻은 지식이 네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관심을 갖게 하기도 한단다. 일상의 경험, 책, 교육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네 몸을 만들어 간다. 그러한 과정은 평생동안 계속된다. 그래서 인간은 평생을 공부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단다. 평생동안 네 몸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유지하기 위해, 네가 잘 관리해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세상의 잘못된 유혹에 빠져 네 삶을 망치게 할 것이다.
나는 인간이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삶이 항상 새롭고, 감동받을 것이 많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볼 줄 알고, 느낄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네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진단하는 방법이 ‘네가 지금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이다. 세상은 어느 누구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단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단다. 그래서 불평과 불만이 많고, 삶이 힘든 것이다. 또 세상에 어느 것도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없단다. 그냥 자연의 이치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네가 잘 이용하면 세상은 너를 위해 존재하게 된다. 너가 이용할줄 알면, 그 순간은 네 것이 되지만 영원한 네 것은 없다.
세상을 매일 새롭게 느끼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이 새롭게 변하거나. 내가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와 똑같은 것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으면 내가 변하지 않는 것이고, 내가 오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닌 것이지. 어제와 다른 나는 어제와 같은 것을 보고 들어도 세상이 새롭게 보이지. 새로운 경험이란 여행처럼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일상에서 내가 느끼지 못한 새로운 경험일 수도 있지만, 내가 열린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단다. 같은 책을 읽어도 학창시절 읽는 것과 노년에 읽는 것과는 많이 다르지. 같은 책을 읽어도 새롭게 느껴지면, 새로운 경험이 되지. 새로운 경험들은 세상을 또다른 시각으로 보게 하고, 감동과 즐거움을 준다. 그것이 진정한 삶의 즐거움이란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물질을 소유함으로써 그러한 기분을 느끼지만, 그것은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며,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세상은 넓고 다양하고 신비스러운 곳이란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세상을 잘 보지 못하고, 자신이 보는 세상에 갇혀서 살아간다. 신비스런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교감하기 위해서는 우주, 자연, 사회, 인간, 그리고 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학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세상을 이해하려면, 그러한 연결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이해는 평소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네 마음이 열려있어야 하고,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네가 전문으로 하는 분야 역시 이러한 기반위에 쌓아야 한다.
그래서 고전중 ‘大學’에서는 삶의 기반으로 ‘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말하고, 불교에서는 이 세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먼저 반야般若, 즉 지혜를 갖고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 말한단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이고, 삶 자체가 공부다. 삶 자체가 공부가 되려면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공부의 시작이 호기심이라면, 그 마무리는 생각이다. 그리고 네 몸에 습득되어 행동하게 되는 것은 네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네 몸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그것이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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