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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영혼이란 무엇인가?

내가 어렸을 때는 사람이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육체는 시공에 존재하지만 영혼은 시간에만 존재한다고 알고있었다. 오늘날에는 이같이 멋진 옛날의 소박함들이 사라졌다. 물리학자들은 물질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하고, 심리학자들은 정신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심리학자 얘기부터 해보자면, 정신활동으로 생각이 되는 모든 것을 육체활동으로 격하시키려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물리학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육체라고 불어왔던 것이 사실은 어떤 물리적 실체에도 대응하지 않는 정교한 과학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얘기 정도이다. 스스로 정신활동을 육체활동으로 격하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반면, 육체 자체는 정신이 만들어낸 편리한 개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은 물질적 객체들이 감각으로 확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틀림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것은 의심스러울지 몰라도 당신이 마주치는 것들은 실재임이 분명하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형이상학이다. 세상은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속성이 변해가는 물질로 이루어진게 아니라 사건들로 이루어진다정신과 물질 모두 사건들을 편성하는 편리한 방법에 불과하다.  정신 한가닥 혹은 물질 한조각, 둘 중에는 어느 것이 영구불멸일거라고 가정할 만한 근거는 없다.  태양은 분당 수백만톤의 비율로 물질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신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기억인데 어떤 사람의 기억이 그 사람이 죽고난 뒤에도 존재한다고 추정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 반대로 생각할 근거들도 충분하다. 기억은 분명히 뇌의 어떤 구조와 연관되어 있고, 따라서 죽음으로 인해 그 구조가 쇠퇴하면 기억도 작용을 멈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리에 맞기 때문이다.

 

나는 유물론의 반대자들은 늘 두가지 주요 바람에 의해 움직여 왔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정신이 불멸이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하는 바람이고, 또 하나는 우주의 궁극적인 힘은 물질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 욕구들이 상당한 힘을 지닌다는 건 사실이다. 만일 인간들이 식량과 부를 추출하려고 이 행성의 땅덩이를 이용해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곳의 많은 부분이 참으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힘은 아주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현재까지도 우리는 태양이나 달이나 심지어 우리 지구의 내부에 대해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힘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에 어떤 정신적 원인들이 있을거라고 가정할 만한 근거는 눈꼽만치도 없다. 지구상에서 우리의 모든 힘은 지구가 태양에서 끌어오는 에너지공급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다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태양에 의존해야만 하며, 만일 태양이 식어버린다면 우리의 어떤 희망도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학은 우리의 우주를 향한 야망을 축소시킨 반면, 지구 내에서의 안락은 엄청나게 증대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