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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2)

* 일하지 않는 부자들

임금 노동자들의 실업이 주는 해악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본인들의 고통, 사회의 노동력 손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데서 오는 사기 저하 등등. 너무도 잘 아는 얘기들이어서 더 이상 상술할 필요도 없다. 부자들의 실업은 또다른 종류의 해악이다. 세상엔 놀고 먹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대개는 여자들인데 그들은 별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돈은 많아서 자만심이 강하다. 또한 돈이 많기 때문에 자신들의 안락을 위해 타인들의 노동력을 바치게 만들 수 있다. 자신은 아무데도 쓸모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비현실적인 감상주의로 만들기 때문이다. 보다 심각한 해악은 다수 사람들의 생계가 무익한 것에 묶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부자들의 소비는 그에 기생하는 인구들을 다수 양산하게 된다. 그들 자신은 부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상품(서비스)을 사주는 게으른 부자들이 없으면, 자신들이 망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힘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에 의존해 삶으로서 그들은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예술적으로 고통받는다.

 

* 교육

노동자 부모에게서 수학이나 음악이나 과학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지만, 그 아이들 에겐 그러한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교육은 점점 더 속물화 되어가고 있다. 사립초등학교 아이들은 학교생활의 매 순간마다 계급의식을 흡수하게 된다.

 

* 여성해방과 아동복지

종속은 임금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더 나쁜 것이다고용인은 직장을 버리고 나오면 그만이지만, 아내들은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아내는 가정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임금을 요구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아내들은 남자들과 경제적으로 동등해 수 없을 것이다.

 

* 무익한 공공 서비스

개화된 통치가 시작된 이래로 이윤동기의 무계획한 운용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정부가 뭔가 해야 한다는 인식이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러한 정부의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전쟁이었다. 정부사업의 비능률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 조차도 국가방위를 민간 청부업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얘긴 꺼내지 않는다. 또한 도로, 항만, 등대, 도심 공원 조성 등등, 공공기관이 맡아야만 할 일들이 많다.공공서비스의 수와 복잡성의 증대는 지난 세기의 대표적인 특정의 하나였다. 그 가운데 가장 거대 해진 것이 교육이다. 철도와 자동차는 읍구의 구분을 무용하게 만들었고, 항공기는 국경을 쓸모없게 만들고 있다.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공간은 점점 확대되고, 정부의 관리범위도 점점 더 넓어지게 될 것이다.

 

* 전쟁

자본주의와 연계된 전쟁의 위험성은 어느 정도인가?  또 사회주의의 확립으로 그 위험성은 얼마나 제거 수 있을 것인가?  전쟁은 매우 오래된 관습으로 비록 그 원인은 언제나 주로 경제문제였지만, 자본주의에 의해 처음 도입되어진 것은 아니다. 과거의 전쟁들은 주로 두가지 근원에서 비롯되었다. 군주의 개인적 야망이 그 하나이고, 힘있는 부족 혹은 국가의 모험심 확장이 나머지 하나이다. 어느 시대에나 승리를 확신하는 강건한 사내들은 전쟁을 즐기고, 여자들은 그들의 무용을 예찬하는 분위기가 전쟁을 조장해 왔다. 그러는 사이 전쟁은 최초의 기원에서 많이 멀어졌지만 전쟁이 없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앞서 말한 고대적 동기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전쟁을 막는 완결된 안전장치는 오직 국제사회주의를 통해서만 주어질 수 있다. 전쟁이 승리자들에게 조차도 번영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쓰라린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런데도 왜 전쟁위협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일까?  끝없는 시소게임에서는 영구적 평화란 결코 올 수 없다. 평화는 국가간 적대감의 근원을 뿌리 뽑는데서 가능하다. 오늘날 그러한 원인들은 주로 특정 파벌들의 경제적 이해에 얽혀 있기 때문에 결국 근본적 경제재건을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

 

세계는 지금, 술버릇을 고치려 애쓰고 있지만, 연신 술을 권하는 친절한 친구들에 둘러싸여 번번히 옛 습관으로 되돌아가고마는 술꾼과도 같은 상태에 있다. 현재 자본주의를 전쟁의 원인으로 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이 원인의 전부란 뜻이 아니라 다른 원인들을 근본적으로 자극하는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원인이 사라지게 되면, 그러한 자극도 사라질 것이다. 국가 재정 대차대조표 상으로 봐도 사회의 다른 부문들을 희생시켜 철강산업에서 이익을 내봤자 다른 곳의 손실을 벌충하는 데 다 쓰여질 것이고, 개인의 임금이 한 산업의 손익에 따라 동요하는 체제도 아니므로 공공비용을 들여 철강의 이익을 밀어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윤추구가 산업의 주요동기로 기능하는 현상은 사라지고, 대신 정부 주도의 계획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정부가 오판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적인 개인보단 실수할 가능성이 적다. 개인보다 훨씬 풍부한 지식을 소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계획함으로써 한 업종이 사양길로 들어서고, 새로운 사업이 성장할 때는 사양산업의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성장산업쪽으로 투입시킬 수도 있다. 물질적 안락과 여가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입안자들에게 맡겨질 것이므로 결국 국민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다. 

 

모든 사람이 국가에 의존해 살뿐,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은 사라질 것이다. 사회주의는 무산계급만을 위한 신조가 아니다.  사회주의가 경제 불안을 방지하게 되면 극소수 최상층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행복이 증대될 것이다사회주의라는 제도가 프롤레타리아 및 소수 지식인들을 제외한 사람들에겐 설득력 있게 제시될 수 없으며, 수상쩍고 파괴적인 유혈의 계급전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은 사실일까?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 하면, 무신론이나 공포정치를 연상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종교에 관한 한 사회주의는 아무 할 일도 없다. 사회주의는 경제의 원리여서 사회주의자는 기독교든 회교든 불교든 브라만 숭배든 어떤 것을 믿더라도 사회주의와 논리적 모순을 느낄 필요가 없다. 

 

설득이 가능하고 아직 다수가 설득되지 않았는데도 무력에 호소하는 것은 적절지 못하다. 다수가 설득 되어졌을 땐, 민주정부의 통상적인 운용에 맡길 수 있다. 폭동을 진압하는 것은 여느 정부라도 취할 수 있는 조치이고, 민주국가의 다른 입헌 정당들이 무력에 호소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주의자들도 더 이상 무력에 의존할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의 약점이 어떤 것이든 사회주의가 영국이나 미국에서 성공하기를 희망할 수 있으려면, 오직 민주주의에 의해 또한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