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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1)

파시즘은 공산주의에 대한 역습, 그것도 대단히 만만찮은 역습이다. 이렇듯 사회주의가 막시스트의 용어로 설파되는 한 강력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되므로, 서구 선진국에서 사회주의의 가능성은 날이 갈수록 희박해진다. 나 자신, 사회주의자 임을 어느 열렬한 막시스트 못지않게 확신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주의가 무산계급의 복수를 위한 복음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먼저 사회주의의 정의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이 정의는 경제와 정치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경제면으로 볼 때 적어도 토지와 광물, 자본, 은행, 신용, 무역을 포함한 기본 경제권을 국가가 소유해야 한다. 정치면에서는 기본 정치권력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주의의 정의에 대해선 마르크스 자신이나 1918년 이전의 모든 사회주의들도 당연히 동의할 것이다. 대중의 통제가 없다면 정권이 자신의 부의 축적을 제쳐놓고, 경제 계획을 수행해하리라고 기대할 만한 근거가 없으며, 결국 그것은 모양만 새롭게 바꾼 착취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반드시 사회주의 체제의 한 요소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사유재산을 굳이 법으로 금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사적인 투자만 금지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자를 받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므로, 개인이 소지하기 적당한 정도의 소액을 제외한 사유재산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투쟁은 사람들의 성질을 악화시키고 무자비한 형태의 군사력을 전면에 부각시키며, 죽임과 추방과 감금으로 수많은 전문가들의 귀중한 재능을 낭비하게 만든다. 그 결과, 승리 정권은 병영 막사처럼 엉성한 정신상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주의에 찬성하는 논거 아홉가지를 제시하겠다.

* 이윤 동기몰락

 독립된 범주로서의 이윤은 산업발달이 일정단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명백해진다. 생산자의 이윤은 전체 수입가운데서 가상의 경영자에게 줄 임금 즉 자신의 노동력의 대가를 뺀 나머지가 된다. 주주들이 경영에 전혀 참여 하지 않는 대기업의 경우, 주주들이 받는 것은 모험에 대한 이윤이다. 좋은 기계를 만들어 상품을 더 싼 값에 팔게되면 기존 기업들의 직공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곳이다. 일자리에서 물러난 사람들은, 임금이나 취업보조금에 의존해 살게된 사람들은 예전처럼 돈을 쓰지 못할 것이고, 그 결과 그들이 예전에 사서 쓰던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실업현상이 나타난다. (사회 전체적으로 구매력이 줄어 들게 된다)

 

어떤 종류의 상품이 적절한 기준 이상으로 싼값에 대량 생산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대량생산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공장은 수없이 생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윤획득의 유일한 가능성이 대형시장의 배타적 장악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보다 약한 경쟁자들은 점점 뒤로 쳐지게 되고, 그중 하나가 폐업할 경우 그 단위가 클수록 혼란도 커진다. 경쟁으로 인해 너무 많이 생산하여 이윤도 남기지 못하고, 팔게 되는 상황이 계속된다. 현대 대규모 산업이 사적이윤이란 동기에 의해 움직이도록 방치해 둔 결과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특정상품을 어느 기업이 제조할 것이냐의 여부를 결정하는 비용을 사회가 아닌 기업이 부담하게 되어 있다. 직장을 잃게 된 근로자와 경영자들을 키우고 교육하는 데 들 비용의 적절한 할당액을 포드 씨의 제작비에 추가해야만 한다. 사회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그밖에도 더 있다. 노동쟁의, 파업, 폭동, 경찰력의 증강, 재판과 구금, 이 모든 항목들을 고려해 보면, 옛날 차들보다 새 차들이 사회에 안기는 부담이 훨씬 크다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우리 경제제도에서는 무엇이 사회에 유리한가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부담비용인 반면,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을 결정하는 것은 개별 생산업자의 부담비용이다.

 

* 여가의 가능성

기계의 생산력 덕분에 인류는 과거보다 훨씬 적게 일하고도 상당수준의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지금 이 시대에는 이윤동기가 작용하고 있는 탓에 여가가 고르게 분배될 수 없다. 즉, 어떤 사람들은 과로하고,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실직상태에 실직 상태에 있는 것이다. 고용주는 임금 노동자의 가치가 그가 하는 일의 양에 달려있고, 작업량은 노동시간이 7-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한 노동시간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임금노동자들은 짧은 시간 일하고 낮은 임금을 받기보다는, 오래 일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쪽을 택한다. 그리하여 노사양측이 다 장시간 노동을 선택하게 되고, 그 결과로 실직하게 된 사람들은 굶어죽거나 국민의 비용으로 정부 당국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인류 대다수가 합당한 수준의 물질적 풍요에 도달해있지 못하기 때문에, 필수품과 간단한 편의재에 관한 한 현명하게만 운용하면 하루 평균 4시간 이하의 노동으로도 지금 생산되고 있는 만큼 충분히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근로자의 평균작업 시간이 8시간이라고 할 때 비능률 및 불필요한 생산이란 형태가 없다면, 근로자의 절반이상이 실직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경제적 불안정

현재 세계에선 다수의 사람들이 궁핍할 뿐 아니라, 궁핍하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임금 노동자들에겐 항시 실업의 위험이 존재한다. 기업인들은 심지어 꽤 부자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조차도 돈을 몽땅 잃는 것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부에 대한 욕망은 대부분 안전에 대한 욕망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늙고 쇠약해졌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또는 자식들의 사회적 계급이 추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돈을 모으고 투자한다. 이제는 안전성이란 획득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대기업들이 무너지고, 정부가 파산하고, 지금까지 버텨온 것들이 있다헤도 다음번 전쟁 때 모두 쓸려가 버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바보들의 천국에 계속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불행하게도, 될 대로 되라는 심리상태에 놓이게 됨으로써 가능한 치료책을 합리적으로 고려해 보는 일을 대단히 어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