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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서구의 문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자신이 속한 문명을 올바르게 바라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가지의 확실한 수단이 있다.  바로 여행, 역사, 그리고 인류학이다.  여행자는 자기가 관심있는 것만 본다.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관심사에 따라 역사적 사건들을 정리한다. 인류학자는 그 시대의 지배적인 편견에 따라 사실들을 선정하고 해석한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나는 문명의 제1본질적 성격으로 예견을 꼽고 싶다. 우리는 국가나 시대를 그들이 발휘하는 예견에 따라 많이 문명화 되었다. 개인적 예견과 집단적 예견에는 차이가 있다. 산업주의적 특징을 가진 모든 작업들은 높은 수준의 집단적 예견을 보인다. 나는 문명에 필수적인 또 하나의 요소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지식이다. 우리는 문명을 '지식과 예견의 결합'에서 나오는 생활양식이라고 정의수 있을 것이다.

 

과학과 산업주의야말로 오늘날 서구문명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서구의 특징은 연역적 추론과 기하학이란 학문을 창안해낸 그리스인들로부터 시작된다. 로마인들은 행정과 법전을 앞세워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로마인들은 통치자 개인에 대한 충성보다는 국가라는 비인격체에 대한 헌신이란 덕목을 창안해냈다. 과거 그리스인들도 공직에 몸담은 사람들 대부분이 페르시아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았을 정도로 정치인들이 부패해 있었다. 국가에 대한 헌신이라는 로마인들의 개념은 서구에서 안정된 통치를 낳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근대이전 서구문명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한가지 더 필요한 것은 퉁치권과 종교-기독교 간의 기묘한 관계였다. 기독교는 본래 매우 비정치적이었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에서 민족적, 개인적 자유를 잃은 사람들의 위안물로 등장하면서 오히려 세속의 지배자들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태도를 유대교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등극하기 몇 년전부터 기독교는 국가에 대해 충성을 다짐하는 커다란 조직으로 발전했다. 유대인들의 도덕에 대한 열정으로부터 기독교의 윤리적 지침이 나왔고, 그리스인들의 연역적 추론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신학이 나왔으며, 로마 제국주의 법모델로 교회의 중앙집권적 지배와 교회법 체계가 생겨났다. 

 

문명은 보다 우수한 외부문명과 접촉하지 않는 한 쇠락하는 것이 일반적인 법칙이다. 자생적인 발전이 일어난 것은 인류 역사상 드문 몇몇 시기, 몇몇 지역에서는 볼수 있을 뿐이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 문자와 농경을 발전시킨 경우는 틀림없는 자생적 진보였던 것 같다. 그리스에서도 200여년 정도 자생적 발전이 이루어 졌다.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 사부유럽의 발전도 자생적이었다. 그러나 시기 및 지역에 진보가 일어나지 않았던 다른 시기및 지역과 구분지을수 있는 어떤 일반적인 사회조건이 존재했다고 보진 않는다. 결국 위대한 진보의 시대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소수 사람들에게 달려있었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활약하는 데는 물론,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조건들이 필수적이었지만, 그러나 충분조건은 아니 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 없이도 그 조건들은 흔히 존재해 왔었지만, 진보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이 어려서 죽었더라면,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는 16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중세에 빚지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의정체'이다. 이것은 대제국 통치를 피지배자들 스스로가 선택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최초의 제도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같은 제도가 성공한 곳에서는 고도의 정치적 안정을 누렸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대의정체가 지구상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실제로 그것이 성공한 곳은 주로 영어권 나라들과 프랑스에 한해서라고 볼 수 있다. 지난 4백년간 유럽 역사는 성장과 쇠락이 공존하는 역사였다. 쇠락한 것은 가톨릭 교회로 대표되는 구통합체이고, 성장한 것은 애국주의와 과학에 기초한 새로운 통합체이다. 과학 자체는 우리에게 어떠한 도덕관념도 제공하지 못하며, 또한 어떤 도덕관념들이 우리가 전통에 빚지고 있는 것들을 대신해 줄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전통은 아주 서서히 변하므로, 우리의 도덕관념들은 여전히 산업사회 이전 체제에 적합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점차로 자신들의 육체적 습관에 일치하는 사고와 산업기술에 모순되지 않는 관념들을 지니게 될 것이다. 생활방식의 변화 속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급속히 빨라졌다. 그리하여 세계는 지난 1백50년 사이에 지난 4천년 세월동안보다 더 많은 변화를 겪었다.

 

현대의 새로운 관념들 거의 대부분이 기술적이거나, 과학적이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과학은 미신과 도덕적 족쇄로부터 자비심을 해방시킴으로써,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새로운 도덕관념들의 성장을 촉진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전통 도덕관념들은 순수하게 개인적이거나, 혹은 현대의 중요한 집단들보다는 훨씬 작은 집단들에 적합한 것들이다. 현대 기술이 사회에 미친 기장 주목할 만한 영향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의 행위들이 대규모 집단들로 조직 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행위가 그가 속한 집단과 협력 혹은 갈등 관계에 있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자주 있게 된 것이다.  가정과 같은소집단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있으며, 오직 하나의 대집단, 즉 전통적 도덕에서도 어느 정도 고려해 국가나 정부만이 존재한다. 르네상스부터 19세기 자유주의까지의 특징이었던 개인의 자유를 향한 운동이 산업주의로 증대된 조직화로 인해 중단될 가능성 마저 보인다. 개인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커지면 국가가 개인의 업적보다 집단적인 업적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애타심과 이웃사랑을 촉구하므로 개인주의적이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심리적인 착오다. 기독교는 개인의 영혼에 호소하고, 개인의 구원을 강조한다. 기독교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 이웃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지, 그가 보다 큰 집단의 일원으로 타고났기 때문은 아니다. 유대인들은 오직 하나의 종교만이 진실이라는 관념을 최초로 만들어냈지만, 온 세상을 그 종교로 개종시키고자 하진 않았다. 다만 같은 유대인들 가운데서 종교가 다른 사람들만을 박해했을 뿐이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의 특별한 계시에 대한 믿음 위에 로마인들의 세계통치에 대한 열망과 그리스인들의 형이상학적 예민함을 추가했다. 그러한 조합 결과 지구상에서 가장 맹렬하게 박해하는 종교가 탄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