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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현대사회의 확일성

미국은 어느 지역을 가나 경관이 대단히 비슷하다. 어느 지역이나 자기 지역만의 자랑거리를 갖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남부는 미국의 타지역과 다른 면이 많다. 남부는 농업위주에 귀족주의적이고, 복고적인 반면 미국의 나머지 지역들은 산업위주에 민주주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나는 시칠리아에 있는 오렌지 농장과 캘리포니아 오렌지 농장에 가보았다. 시칠리아 오렌지 농장의 영농방식은 전통적인 방식이다. 로마 노예들과 아랍 침략자들의 혼혈 자손들로 과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고 무지하다. 캘리포니아 오렌지 농장은 적절한 기계들에 의해 적절한 조치가 취해진 오렌지들이 적절한 냉동차에 실려 적절한 시장까지 여행하게 된다. 이런 식의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옛시대의 농부들처럼 자연의 힘에 매여 묵묵히 일만 하는 하인이라곤 결코 느끼지 않는다. 반대로 스스로를 주인으로 자신들의 의지대로 자연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노르웨이인과 시칠리아인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인들을과의 뚜렷한 차이는 인간이 물리적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고 주인이 됨으로써 초래된, 인간사의 엄청난 혁명을 발견하게 된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얼음과 눈을 무서워 했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용암과 지진을 무서워 했다.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자금 시장의 경색이 문제였다. 미국은 인간이 만든 세계이지만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이기도 하다. 물질환경뿐 아니라, 사고와 정서까지 말이다. 라디오가 온갖 첨단정보를 퍼뜨리고, 그 결과 어느 특정한 전국 모든 가정의 대화가 절반은 똑같아지는 것이다사고나 여론이 획일화되는 것은 물질적인 생활가구가 획일화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의 발명품이 가져오는 불가피한 결과이다. 

 

오늘날의 여론은 주로 학교나 교회, 언론, 영화, 라디오 등을 통해 만들어진다.  영화는 미국 중서부에서 좋아 하는 것들을 헐리우드식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해 낸다. 사랑과 결혼, 출생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정서들이 이 조리법에 따라 규격화 되어간다. 부를 누리는 즐거움과 부를 획득하기 위해 택해야 하는 방법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미국에서 획일화는 비교적 무식한 분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도는 다소 덜하지만, 문화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획일성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전적으로 좋다거나, 전적으로 나쁘다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될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는 단점도 있고 장점도 있다. 최고의 장점은 사람들이 평화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것이다. 단점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수를 박해하는 경향을 만든다는 점이다. 후자의 결점은 아마도 일시적일 것이다. 조만간 소수들이란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획일화를 목표로 할 때 생겨날수 있는 위험을 잘 보여준다.  좋은 자질은 나쁜 자질보다 파괴하기 쉽다는 것,  따라서 획일화는 모든 기준들을 낮추는 방법을 통해 가장 손쉽게 얻어진다는 점이다. 이같은 획일화 과정의 많은 부분이 다소 과도한 국가주의에 의해 영향받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이미 최강국가이며, 그 우위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점은 당연히 유럽인들의 우려를 불러일으키며, 호전적인 국가주의의 기미가 보일 때마다 우려가 더욱 커진다. 미국에는 획일적 경향과 더불어 민주주의에 대한 그릇된 관념이 퍼져 있는 듯하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똑같기를 요구하며, 따라서 어떤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게 있다면, 그는 스스로를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우쭐댄다'고 받아들인다. 프랑스도 미국못지 않게 민주적인 나라지만, 이런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든 법률가든 성직자든 정부관료든 프랑스에선 모두들 제각각의 유형들이다. 다른 직업에 대해 우월함을 내세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직업마다 그 나름의 전통과 기준이 있다. 미국에서는 모든 전문인들이 기업가란 틀로만 평가된다. 마치 오케스트라를 바이올린으로만 구성하라고 법령으로 정해놓은 것과 같다. 사회는 다양한 기관들이 다양한 역할을 해내는 하나의 틀 또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보는 것이 낫냐, 듣는 것이 낫냐'를 두고, 눈과 귀가 서로 다투다가 동시에 두가지는 못하니까 둘다 하지 말자고 결정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내가 보기엔 미국에서 이해된 민주주의가 바로 이렇다. 그것이 무엇이든 보편적이지 않은 탁월함에 대한 기묘한 질서가 만연해 있다.  미국에서는 대중 과학서들도 과학에는 전문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마지 못해 인정할 때, 비로소 인기를 얻게 된다.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탁월함을 존경하는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특정의 분야에서 탁월해지기란 대단히 어렵다. 미국인들은 많은 귀중한 것들을 미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하고, 유럽에서 수입해야만 한다. 성공한 경영간부에 의해 세워진 틀에 모든 사람이 끼워 맞춰지기를 기대하는 한, 예외적으로 탁월한 존재- 특히 그것이 예술분야의 것이라면- 는 자라기도 전에 큰 장애에 부딪히게 된다. 

 

규격화는 예외적인 사람들에겐 불이익을 주는 면이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행복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생각을 말할 때, 그것이 듣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비슷할 것이라는 확신속에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규격화의 손익균형을 맞출 수 있다곤 생각되지 않지만, 세계가 점점 기계화 됨에 따라 지금 미국에 존재하는 규격화가 유럽전역에도 퍼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점에 대해 미국을 비난하는 유럽인들은 바로 자기나라의 미래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며, 문명발전의 불가피하고 보편적인 추세에 스스로 맞서려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과학이 세상을 완벽하게 바꿔놓은 상황에서, 역사에서 나온 논거들을 현재와 미래에 적용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지나친 비관주의로 빠질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규격화는 그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