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스페인 사람들이 페루에서 금을 가지고 온 결과 금은 스페인 영토 전역의 물가만 올려놓았을 뿐, 스페인을 실제 재산면에서 전보다 부자가 되게 해주진 못했다. 이것은 역사상으로 상식에 속하는 일이지만 오늘날의 문제를 적용함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각국 정부들의 정신역량이 못미치는 듯하다. 경제를 보는 시각이야 늘 혼란스럽게 마련이지만, 특히 오늘날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하다. 이런 측면에서 종전 직후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보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었는지 당시 각국 정부가 수용소의 정신병자들이 아닌 정상인들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종전후 연합군측에서 독일을 벌하고자 했고 배상금을 부과하였다. 연합군이 독일에게 원했던 금액은 전세계의 모든 금을 합쳐도 모자랄 정도로 엄청났다. 상품으로 배상 받든지 아니면, 한 푼도 배상받지 못하든지 둘중 하나였다. 연합국측 정부들은 수입과 비교해 수출이 얼마나 초과하는가로 한 나라의 부를 가늠해 왔던 습관을 문득 떠올렸다. 연합국측은 배상이라는 방법으로 독일인을 처벌해야 한다는 데는 변함 없었지만, 다른 한편 독일이 어떤 특정한 형태로 배상하게 놔둬서는 안된다는 입장 역시 단호했다. 그래서 독일인들이 배상해야 할만큼 독일인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독일에 대부해주는 데 출자한 사람들은 이자를 원했고, 배상금을 갚는 문제에서와 같이 이자를 갚는 문제에서도 발생했다. 그리하여 이자를 갚을 수 있도록 또 독일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을 시작으로 수많은 파산건이 발생했고, 이어 독일에 돈을 빌려주었던 사람들에 이어 그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사람들, 하는 식으로 연쇄파산이 줄을 이었다. 결국 세계적인 불황, 궁핍, 기아, 도산 등 연이어 온갖 재난들로 세계가 고통받는 결과를 낳았다. 독일 배상문제가 불행의 전적 원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사고의 혼란이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가장 극명한 예임에는 분명하다. 만일 한 개인이 옷을 공짜로 얻는다면 그는 옷을 만들기위해 자기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국가들은 기후와같은 자연현상적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 한, 자신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자신들이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고자 하는 개인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할 경우, 대단히 낮은 수준의 안락함에 만족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금에 대한 미신은 그로인해 득을 얻는 사람들뿐 아니라, 해를 입은 사람들에게까지도 뿌리깊이 박여있다. 존경받고 있는 직업들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일이 금캐는 일이다. 금은 아프리카 땅에서 캐어져 도둑과 사고를 막기 위한 엄청난 경계속에서 런던이나 파리나 뉴욕으로 건너와 , 거기서 다시 은행의 지하금고속에 보관된다. 그럴바엔 차라리 남아프리카 땅밑에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만일 내가 곤궁할 때 대비해 100파운드를 저축해 놓겠다고 말한다면 나는 현명하다고 할 수 잇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곤궁해지더라도 그 100파운드를 쓰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그 돈은 이미 내 재산으로서의 유효성을 상실한 것이다. 금의 강점은 이론상으로는 각국 정부들이 부정직하게 나올 때, 안전장치를 제공해 주는데 있다. 실제로 정부들은 자신들이 유리할 때면 언제든 금을 포기해 버린다. 사실 정부들은 일부사람처럼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 빚을 갚지만 그렇지 못할 때 갚지 않는다.
개인의 경우 돈을 빌리고자 하고 또 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한 정직하게 나가는 것이 이롭다고 생각하지만, 만일 그의 신용이 바닥났을 때 도망가는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전후 독일에서 보았듯이 국내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전망이 더 없다 싶으면, 정부는 자국 화폐가치를 인하하는 방법으로 국내부채를 깨끗이 정리해 버린다. 흔히 경제 상거래가 어느 정도까지 군사력에 의존하는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부는 부분적으로 사업능력에 의해 획득되지만, 그러한 능력은 육군이나 해군의 힘이란 틀 내에서만 가능하다.네덜란드인들이 인디언으로부터 뉴욕을 넘겨받고, 다시 영국인들이 네덜란드로부터 넘겨받고, 이어 미국인들이 영국인들로 부터 넘겨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이란 수단을 통해서였다. 미국에서 석유가 발견되었을 때 그것은 미국시민들의 것이었다. 그러나 힘이 강하지 못한 나라에서 발견될 경우에 어떻게 해서든 몇몇 강대국들의 시민들이 그 소유권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흔히 위장술에 의해 가려지지만, 그 배경에는 전쟁의 위협이 잠복해 있고, 최종적으로 협상을 결말짓는 것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위협인 것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시대 청소년들의 냉소주의 (0) | 2017.01.16 |
---|---|
현대판 마이더스(2) (0) | 2017.01.13 |
건축에 대한 몇가지 생각 (0) | 2017.01.11 |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 (0) | 2017.01.10 |
게으름에 대한 찬양(2) (0) | 2017.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