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론이 선언되는 시점과 그 이론이 실제효력을 발휘하는 시점 사이에는 흔히 상당한 시간 간격이 있는 경우가 많다. 1860년 영국정책은 아담 스미스가 1776년에 발표한 사상에 의한 것이다. 오늘날 독일의 정책은 1807년 피히테가 내놓은 이론의 발현인 셈이다. 1917년 이후 러시아 정책들은 18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공산당선언의 교리를 구현하고 있다. 따라서 현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 정도 앞선 과거로 되돌아가 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널리 알려진 정치적 교리에는 일반적으로 대단히 다른 두가지 동기가 있다. 그 하나는 지적 선구자들 다시 말해 과거 이론에서 시작해 진화 혹은 반동을 거쳐 성장해 온 이론들을 앞당긴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분위기에 도움이 되는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경제적, 정치적 상황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18세기 전반 뉴턴이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동안에은 지식으로 가는 길은 단순한 일반법칙의 발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역적 추론을 통해 그러한 법칙들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뉴턴의 중력법칙이 1세기에 걸친 면밀한 관찰을 통해 발견되었다는 점도 잊은 채, 많은 사람들이 일반법칙은 자연적으로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독립전쟁 및 프랑스혁명에서 설파된 인권선언은 바로 이 같은 관점의 정치적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이성의 신전이 거의 완성되어 가는 듯 보이던 바로 그때, 지뢰가 하나 부설되었고 결국 그 지뢰에 의해 건축물 전체가 공중분해 되어버리고 만다. 지뢰를 놓은 이는 바로 데이비드 흄이었다. 그의 의도는 명목상 자명한 공리들로부터의 연역을 관찰과 귀납으로 대체하자는 것이었다. 정신적 성향으로 볼 때, 그는 완벽한 합리론자였다.
독일적 특색을 지닌 철학은 칸트에서 비롯되는데 흄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된다. 칸트는 인과, 선, 불멸, 도덕률 등을 믿으려 했지만 흄의 철학이 그 모든 것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리하여 그는 순수 이성과 실천이성을 구별하는 장치를 만들어냈다. 순수이성은 입증될 수 있는 것으로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실천이성은 덕에 필요한 것으로 대단히 많았다. 물론 순수이성은 순수하게 이성인 반면, 실천이성은 편견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칸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그의 직계 계승자인 피히테였다. 피히테는 철학에서 정치학으로 옮겨 가면서 국가 사회주의로 발전하게 된 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한 인물이었다. 우리가 이성이라고 할 때 실제 의미는 세가지 특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힘보다는 설득에 의존하는 것, 둘째 논쟁을 수단으로 설득하고자 하는 것, 물론 이때 그 수단을 쓰는 사람은 그것이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믿는다. 셋째, 소신을 형성함에 있어 가능한 한 관찰과 귀납을 많이 쓰고 직관은 적게 쓰는 것이다. 이성을 이렇게 정의할 때, 이성에 의존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과 얘기를 듣는 사람의 이해 관계와 사고방식이 어느 정도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추론케 한다. 어떤부인이 거위들에게 '어서 와서 죽어다오. 너희들 속에 소를 채워 넣어 손님들을 배불리 먹여야 하니까' 하고 소리쳤을 때, 그녀가 이성적으로 접근했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잡아먹으려고 하는 대상에게 이성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스운 일이다.
18세기 영국에서는 귀족들과 그 친구들의 여론만이 중요했으며, 그러한 여론들은 늘 합리적인 형태로 포장되어 다른 귀족들에게 제시되었다. 정치참여층이 점점 확대되고 이질화되면서, 이성에의 호소도 점점 어려워진다. 논쟁의 출발점이 되는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가설들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보편적인 가설들이 존재하지 않을때, 사람들은 자신의 직관에 의존하게 된다. 이질적인 집단들의 직관들은 당연히 서로 다를 것이므로, 직관에의 의존은 결국 충돌과 힘의 정치로 이어지게 된다. 11세기 이후 스콜라티시즘, 르네상스, 과학의 발전을 거치면서 이성의 주장들이 점차 세를 넓혀갔다. 19세기 들어 과학과 기계가 승리하면서 저지되었다.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는 그리스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나란히 공존해 오면서, 둘 중 하나가 지배적이다 싶을때 언제나 반동이 일어나 그 반대편이 새롭게 분출하곤 했다. 오늘날 이성에 대한 반동은 중요한 한 가지 면에서 과거와 크게 다르다.
과거의 반동들의 목표는 흔히 구원이었다. 그러나 우리시대 비합리주의자들의 목표는 구원이 아니라 권력이다. 따라서 기독교나 불교와 정반대되는 윤리를 전개하고, 지배욕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치에 뛰어들게 된다. 이런 움직임에 반대하는 공리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같은 정당의 양 진영으로 볼 수 있다. 둘 다 세계적이고, 둘 다 민주적이며, 둘다 경제적 이익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양측의 차이는 목적의 차이가 아니라 수단의 차이다. 파시즘이 자라는 토양을 제공해온 비합리주의자들의 목적은 개인들의 위대함이다. 목적 자체가 이성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목적의 문제는 이성적 논쟁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적은 비합리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파시즘이 자라나온 사상의 원조에는 몇가지 공통된 특징들이 있다. 그들은 감정이나 인식보단 의지에서 선을 추구한다. 행복보다 권력을 더 높이 평가한다. 논쟁보다 힘을, 평화보다 전쟁을, 민주주의보다 귀족주의를, 과학적 공정성보다 선전을 선호한다. 그들은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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