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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

자신의 친구를 배신함으로써 명예의 자리에 올랐더 프란시스 베이컨은 ‘ 지식은 힘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모든 지식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베이컨이 염두에 두었던 지식의 종류는 이른바 과학적 지식이란 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은 호머를 즐겼기때문에 자신들이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없이 우리가 음악을 대하듯 호머의 시詩와 친근하게 지냈다. 그러나 16세기로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매우 상당한 언어지식을 갖추지 않고선 호머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배우는 것이 술을 마시거나, 사랑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삶의 기쁨의 하나였다르네상스의 주요동기는 무지와 미신이 지성의 눈을 가린 사이에 놓쳐버렸던 예술과 사색에 깃든 풍요와 자유의 회복에서 오는 정신적 기쁨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철학, 기하학, 천문학과 같은 순수하게 문학적이거나, 예술적이지 않은 문제들도 관심을 기울였다.

 

16세기 및 17세기의 수학 연구는 옛 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실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 이었다. 사람들은 무용한 지식의 가치에 대해 점점 더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고, 반면에 공동체의 경제적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만이 가치가 있는 유일한 지식이라는 믿음이 점차 확산 되었다.  러시아의 경우 실용적인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서 미국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 교육기관에서 가르쳐지는 모든 것들이 교육이나 통치상의 목적에 이바지해야만 한다. 이제 지식은 그 자체로 좋은 것, 혹은 폭넓고 인간적인 인생관을 세우는 수단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전문적인 기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교육기관들이 기술을 가르치고, 충성심을 주입시키는 방식으로 유용한 목적에 기여함으로써 국가를 만족시켜야 한다. 우리는 나태하게 생을 즐기는 사람은 생각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이 대의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정신적 여유가 없다. 그게 뭔든 간에 우연히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에 도움이 될 지식을 제외한 다른 어떤 지식도 습득할 여유가 없다. 좁은 의미의 실용적 교육관을 옹호할 수 있는 말은 많다. 법벌이를 시작하기 전에 모든 지식을 다 배우기엔 시간이 모자란다. 현대의 지식은 평균적 건강수준을 엄청나게 진보시켰지만, 동시에 대도시를 독가스로 전멸시키는 방법도 찾아냈다. 의식적인 활동이 어떤 한가지 목적으로만 모아질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쇠약증세를 동반하는 균형감의 결여를 보이게 마련이다. 정신이 한쪽으로 팔려있고 휴식이 부족하면, 그렇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러시아공산주의자, 독일나치들 모두가 반드시 어떤 과업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만 지나치게 빠져버린 결과 일종의 긴장성 광신주의에 빠져 버린 자들이다. 광신자들이 생각하는 대단한 과업이란 대부분의 경우 시각의 협소함이 건망증을 일으켜 막강한 장해요인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거나, 아니면 그런 요인들이 모두 응징과 테러를 가해야 마땅한 악마의 책동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아이들에게만 놀이가 필요한 게 아니다. 어른에게도 현재의 즐거움외 아무 목적도 없는 행위에 빠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놀이가 제 구실을 다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일과 관계없는 부분에서도, 기쁨과 흥미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여가가 많아지면 상당한 지적활동과 관심사들을 보유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루해 하기 십상이다. 여가를 가진 인간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교육받은 인간이며, 또한 그 교육은 직접적 유용성을 가진 과학, 기술적 지식뿐 아니라, 정신적 기쁨도 목표로 했음이 틀림없다. 지식을 획득함은 인간의 사고와 욕구의 성격을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 문화는 자기 자신에게 당장 중요한 문제뿐만 아니라, 비개인적인 폭넓은 목적에도 부분적이나마 관여하게 만든다.  우리는 지식을 수단으로 어떤 능력을 획득하면, 사회에 혜택을 주는 일에 그 능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너무도 성급하게 가정해 왔다.

 

정신을 가꾸는데서 적극적인 인도주의의 감정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때론 있겠지만, 오히려 정신수양이 이웃을 부당하게 취급하는 것과는 다른, 관심사들을 제공하고, 지배를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자아존중의 근거들을 제공해 준다.  정신수양은 보다 덜 해로운 형태의 힘과 존경을 받을만한, 보다 가치있는 방법을 제공해 준다.  무용한 지식의 가장 중요한 이점은, 아마도 숙고하는 습관을 조성해 준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 볼 때 행동이란 낭만적이고, 불균형적인 자기 주장만이 있는, 터무니 없이 열정적인 충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주외 인간의 운명에 대한 심오한 이해에서 나올 때 최상의 행동이 된다. 숙고하는 습관의 이점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가장 심오한 것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걸쳐있다. 작은 고민거리들은 영웅적 행위의 뛰어남이나 모든 인간적 불행의 덧없음에 비하면, 별로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들로 보이기 쉽다.그렇지만 바로 그런 일들에서 생겨나는 짜증들이 많은 사람들의 좋은 성격과 즐거운 인생을 망쳐 놓는  것이다. 그럴 경우 그 순간의 문젯거리와 약간의 연관이 있을 뿐인 동떨어진 지식에서 의외로 큰 위안을 받을 있다. 진기한 지식은 불쾌한 일을 덜 불쾌하게 만들뿐 아니라, 즐거운 일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준다1백여년 전, 선의의 박애주의자들이 유용한 지식을 확산 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단체들을 출범 시켰지만, 그 결과 사람들로 하여금 무용한 지식의 기막힌 맛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소한 문화적 즐거움들이 실제 생활의 사소한 걱정거리들을 달래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반면, 숙고의 보다 중요한 이점들은 인생의 커다란 악이나 죽음과 고통과 잔인함, 불필요한 재난으로 맹목적으로 치닫는 국가들과 관련되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독단적인 종교로도 더이상 위안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인생이 무미건조 해지고, 가혹해지고, 사소한 자기 주장으로 가득차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다른 대체물이 필요하다. 현재의 세계는 성난 자기중심적 집단들로 꽉 차 있다. 이들은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할뿐 아니라, 한 발 양보하느니 차라리 문명을 파괴시키고 말겠다는 태세들이다. 이같은 편협증에는 아무리 많은 과학기술적 지식으로도 해독제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개인심리에 국한된 편협증이라면 역사, 생물학, 천문학 및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적당한 시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해줄 수 있는 모든 학문들에서, 해독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것이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특정한 정보가 아니라, 전체의 시각에서 본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지식이다. 여기에는 예술, 역사, 영웅적인 사람들의 인생 접하기, 우주차원에서 볼 때 인간은 한심할 정도로 우연적이고, 하루살이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지식은 인간특유의 것에 대한 일종의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해하고 아는 힘, 도량 있게 느끼는 힘, 올바르게 사고하는 힘을 키워준다. 개인적 불행이든, 공적인 불행이든, 의지와 지성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극복될 수 있다. 의지에는 악을 피하고, 비현실적인 해결책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가 포함된다. 지성에는 그 악을 이해하고, 치유가 가능하다면 치유책을 찾아내고, 만일 불가능하다면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벗어난 다른 영역, 다른 시대, 행성간의 공간에 놓인 심연들에는 무엇이 놓여있나를 되돌아봄으로써 그 악을 참고 살만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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