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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2)

미국 사람들은 흔히 부자가 된 이후에도 장시간씩 일한다.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임금 노동자들에게 여가를 준다는 생각에 분개한다. 실제로 그들은 자기 아들들이 여가를 누리는 것조차 싫어한다. 평생동안 장시간 일해 온 사람이 갑자기 일을 하지 않게 된다면 따분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상당한 양의 여가 없이는 최상의 많은 것들로부터 차단된다. 러시아 정부도 '근면하라, 질주하라, 먼장래의 이익을 위해 장시간 일하려는 의욕을 가져라. 심지어 당국에  순종하라' 까지.  오랜 세월 부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정직한 노동을 칭찬하는 글을 써왔다. 소작한 생활을 예찬했고, 부자들보다 가난한 자들이 천국에 갈 가능성이 더 높다고 가르치는 종교를 공언해 왔고, 일에는 특별한 고귀함이 있다고 육체 노동자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려고 애써왔다. 러시아에서는 육체 노동의 훌륭함에 관한 모든 가르침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고, 결국 다른 누구보다도 육체노동자가 존경받는 데까지 이르렀다. 육체노동자야 말로 이상적이라고 젊은이에게 가르치고 있으며 그것이 모든 가르침의 기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하지 않고도 편안할 수 있는 선에 이르렀을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우리는 경제적 정의를 이룩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전체 생산물의 많은 부분이 일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생산을 통제하는 중앙기관이 없으므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이 대량 생산된다.  결국 우리들은 많은 노동인구들을 놀게 만든다. 그들의 무노동은 다른 노동자들의 과도한 노동으로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필수품과 기초 편의용품을 모두에게 제공할 수 있은 수준이 되면, 노동시간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합리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노동자에게 '당신이 인생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뭐요?' 하고 물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는 육체노동을 즐긴다. 그것은 내가 인간의 가장 고귀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내 몸이 주기적 휴식을 요구하는건 사실이므로 최선을 다해 채워 넣어야 하겠지만, 아침이 오고 내게 만족감을 불러일으키는 노고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갈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나는 한번도 듣지 못했다. 그들은 일을 생계에 필요한 수단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과거에는 속편하게 노는 것에 대한 수용력이 있었다. 그러나 능률 숭배로 인해 그러한 부분은 사라져버렸다.  현대의 인간은 모든 일이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일하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 영화보러 가는 습관에 대해 끊임없이 비난하며 그런 버릇은 젊은이들을 범죄로 이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영화를 만드는 노동은 훌륭한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이기 때문에, 또한 돈을 벌게해주기 때문에 이익을 가져오는 것만이 바람작한 행위라는 관념이 모든 것을 뒤바꿔 버렸다.

 

돈을 버는 것은 선이고, 돈을 쓰는 것은 악이었다. 물품생산에서 나온 가치가 어떤 것이든 그것은 그 물품을 소비하는 행위에 의해 획득된 이익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은 이윤을 위해 일한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일의 사회적 목적은 생산한 것을 소비하는 데 있다. 우리는 생산에 대해선 너무 많이 생각하고 소비에 대해서 너무 적게 생각한다. 도시 사람들의 즐거움은 대체로 수동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영화를 보고, 축구시합을 관전하고, 라디오를 듣고, 하는 식이다.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적극적인 에너지가 모조리 일에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과거 여가를 즐기는 계층은 소수였고, 일하는 계층은 다수였다.  유한계층이 누리는 편의는 사회정의란 측면에서 때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층은 문명이란 것을 담당하는 공헌을 했다. 예술을 반전시키고 과학적 발견들을 이루었다. 책을 쓰고, 철학을 탄생시키고, 사회적 관계들을 세련시켰다.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운동 조차도 흔히 위로부터 일어난 것이었다.  유한계층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결코 야만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도 하루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에서는 과학적 호기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호기심을 맘껏 탐닉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든 배곯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생활의 기회를 가지게된 평범한 남녀들은 보다 친절해지고 서로 덜 괴롭힐 것이고, 타인을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대 생산방식은 우리 모두가 안하고 안전할 수가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지금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열심히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