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

대항문화와 맨발의 교사들

'우리는 모두 교사이며, 전우주가 교실이다. 누구에게나 교사가 되고 싶은 본성이 있다 '(소로)

교사란 교실에서 강의를 하고, 시험을 보고, 점수를 매기는 교사가 아니다. 사람들과 대화 하면서 서로를 보살피고, 영감을 주고, 격려하고, 안내하고,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지지해주는 사람을 말한다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교사라는 것이다. 우리의 본질적 자아의 중심에는 남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교 교사가 아니라 맨발의 교사이다. 중국은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기초적인 의술을 가르쳐서 전국의 산간벽지로 보냈다. 이들을 맨발의 의사라 불렀다. 맨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나는 이 나라 전체에 맨발의 교사들이 퍼져서 공공선에 주목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목적과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며 사람들을 이끄는 모습을 상상했다. 맨발의 교사는 성공에 목매지 않는다. 따라서 권력, 권위를 얻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들은 순례자나 개척자가 되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맨발의 교사는 인간정신에 영양분을 제공하고, 공공선에 주목할 것을 고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될 수 있다. 삶을 사랑하고, 협력과 협동의 방법을 알고, 행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과연 내가 몇 명이나 알고 있는가?  대부분 내가 듣는 소리는 정신없이 바삐 움직이는 삶과 어리석은 정부에 대한 불평이다.

 

2차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으로 1948년 유엔에서 제정한 세계인권선언문이 바로 그것이다. 선언문에서는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자유로우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공포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으며, 일할 권리, 휴식과 여가를 즐길 권리, 의식주와 의료, 건강을 포함해 적합한 생활수준을 요구할 권리, 실업이나 질병, 장애, 배우자의 사망, 노령 등 불가항력적인 여타 상황속에서 생계곤란을 겪는 경우 사회보장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인격을 완전하게 발전시킴과 동시에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경심을 강화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 모든 것이 권리이다. 식품구입권이나 정부보조는 공짜로 주는 지원금이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다. 우리에게는 공포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도 있다. 한 번이라도 이 두가지가 인간의 권리라고 생각해 봤는가?  인간의 원리 뿐만이 아니다. 선언문에는 국민의 의지가 정부권력의 기반이 되어야 하며, 국민은 형제애의 정신에 입각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인격이 완전히 자유롭고, 충분히 발달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의무가 있다 ’

 

학습은 개인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교육은 우리를 생명의 힘을 나타내는 경이로운 존재가 아닌 경제적 기계로 바라본다. 교사는 학생 각자의 능력이 충분히 발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보다 시험에 대비 시켜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나와 너’를 집필한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모든 참된 삶은 만남 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존재,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 고유하고 유일한 존재’라고 말했다. 또한 ' 타인을 욕망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돈, 사회적 지위, 권위, 권력을 조종하고, 동시에 그것들로부터 조종당하는 문화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 문화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없는 문화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교사이고 모든 대화가 학습과 변화의 원동력이라는 맥락에서 대화를 고려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던지는 말들이 혁명의 불씨가 되거나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대화에 접근하게될 것이다. 랍비 주시아가 임종에 임박해서 말하기를 ‘ 내세에서는 너는 왜 모세처럼 살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왜 너 자신으로서 살지 못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우리는 진정성이 없는 사회에서 산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부터 TV에 나오는 이야기까지 진정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날이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성공과 사회적 지위라는 인위적인 이미지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원한다면, 가공된 이미지를 버리고, 허식과 겉치레를 떨쳐내고, 겉으로만 그런 척하는 모든 것들을 거부해야 한다. 광고, 정치적 수사, 유명인들 등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가식으로 얼룩져 있다. 이런 가식때문에 우리는 거짓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능력을 상실했다. 진정성이 없다면 삶을 심오하게 경험할 수 없다. 사람들과 모여서 생각하고, 대화하고, 행동하면서,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존엄성’이라는 책을 저술한 도나 힉스는 모든 갈등의 중심에는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존엄성을 침해 당했다고 격분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우리가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생존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누군가 우리를 업신여긴다고 느껴진다면, 그 느낌은 앞으로 우리를 공격하거나, 파멸시킬 것이라는 징후가 될 수도 있다.

 

존중받지 못한다는 기분은 위험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감정이다. 반대로 상대가 예를 갖추고 우리를 존중한다고 생각되면, 이는 안전하다는 신호다. 그런 경우 사람들과 친밀해질 수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해를 가해서는 안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존중할 때, 사랑과 공감, 연민이 넘쳐흐르고 친밀해질 수 있다. 도나 힉스는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던 원시시대에는 모두에게 먹을거리와 물이 충분했기 때문에 관계형성이 단절보다 우세했다고 주장한다. 인류역사에서 이러한 시기가 95%를 차지한다. 그러나 1만년전 농경사회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자원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땅을 두고 전쟁을 일삼으며 타인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한 보호막인 계급제도를 포함해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지배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만들었다. 우리가 아무런 가치없고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으면, 우리는 상대를 공격하거나 아예 상대와의 관계를 끝낸다. 존엄성에 대한 침해는 생존을 위협하는 것과 맞먹는다.

 

존엄성으로 모두를 대하며 존엄성을 경험하는 기회를 사람들에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맨발의 교사가 담당해야할 역할이다. 오래전부터 누군가로부터 존엄성을 침해받았고, 또 우리 자신이 누군가의 존엄성을 침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 공감의 감정이 생성된다. 분노와 증오는 존엄성 침해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 러나 화를 내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존엄성 측면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면 공감하는 법도 알게 될 것이다.

 

다음은 힉스가 오랜 연구 끝에 정립한 존엄성의 핵심요소들이다.

 * 존엄성 인정. 사람들을 판단하지 마라.

* 포용력. 사람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

* 안전성.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 있을 때,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라.

* 인정. 경청하고 반응하면서 사람들의 말에 충분히 집중하라.

* 인식.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인지하고, 그들이 기여한 것에 감사하라.

* 공정성.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하라.

* 선의의 해석. 사람들이 진실하다고 믿고 그들을 대하라.

* 이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경해와 감정을 존중하라.

* 독립심.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생각하도록 용기를 북돋아라.

* 책임. 행동에 책임를 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