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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지음,

경제성장과 경제발전

적도기니는 잊힐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 수가 70만을 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다. 누가 이렇게 작은 나라에 관심이나 있겠는가?  적도기니는 2010년 1인당 국내총생산 2만703 달러를 기록한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자 나라이며, 지난 20-3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율을 기록한 나라중 하나이다. 이렇게 하고도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니 도대체 뭘 더 해야 하는 것일까? 적도기니가 중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는데도 우리는 왜 중국의 기적만 듣고, 적도기니의 경제 기적은 들어보지 못했을까? 두 나라의 규모가 다른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잘해도 우리는 작은 나라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 이유는, 그 성장이 천연자원의 발견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1996년 굉장히 규모가 큰 유전을 발견한 것 말고는, 이 나라 경제가 변한 것은 별로 없다.

 

19세기 미국의 경제성장은 농수산물과 광물을 포함한 풍부한 천연자원 혜택을 크게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삼림자원을 보유한 핀란드는 20세기 들어서도 한참을 목재수출에 크게 의존했다. 호주의 경제성장은 아직도 광물 수출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나라들과 적도기니가 다른 것은 경제성장이 생산능력의 증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찾고, 채취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인상적일 정도로 발달을 거듭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적도기니는 원유 말고는 다른 것을 거의 생산하지 못할 뿐더러 원유 마저도 스스로 생산해 낼 능력이 없어서 미국 정유회사들이 모두 채굴하고 있다. 적도기니의 경험은 경제성장 즉 경제의 성장량이 늘어나는 것이 경제발전과 어떻게 다른지 잘 보여준다. 생산활동을 조직화하는 능력, 더 중요하게는그것을 탈바꿈 시킬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경제발전의 핵심이다. 한나라의 경제가 생산능력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천연자원이나 값싼 노동력으로 만든 제품에 의존하면 당장의 소득만 낮은 것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현재 생산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가치를 지닐지 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생산능력이 우월한 나라는 천연자원을 대체하는 제품을 개발해, 그 자원의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의 소득을 급격하게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혁명 초기 신기술을 개발하는 주체가 주로 비전을 가진 개인이었다. 그 결과 19세가말에서 20세기초 까지는 많은 기술에 발명가들의 이름이 붙었다. 19세기말 이후 기술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 개인이 신기술을 발명하는 일은 점점 더 드물어졌다. 기업은 내부에 연구실을 만들고,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오늘날 신기술 개발은 개인의 영감에 의존하기보다는 생산에 종사하는 기업 안팎에서 진행 되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셍산능력의 증가가 모두 기계와 화학공정의 개발같은 좁은 의미의 기술발전만으로 가능해진 것은 아니다. 많은 부분이 조직기술, 즉 경영기술 향상 덕분에 이루어졌다. 작업흐름을 더 효율적으로 조직하는 것과 더불어 노동자들 자체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테일러 방식이었다. 테일러는 과학적 분석을 통해 생산공정을 가능한 한 가장 간단한 임무 단위로 쪼개고, 노동자들에게 각 단위의 작업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훈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움직이는 조립라인과 테일러방식의 원칙을 결합해 20세기 초에 대량생산체제가 탄생했다. 이 방식이 포드방식 이다. 2차대전후 미국과 유럽에 대량 생산체제가 널리 퍼지면서 상승하는 임금이 시장을 확장하고, 그에 따라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게 되어 고정비용을 더 많이 분산하는 것이 가능해져 생산성이 더욱 늘어났다. 표준화 임무를 수행 하는 노동자들은 감시하기가 쉬어지는 데다 조립라인의 속도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노동강도를 쉽게 높일 수 있다. 1980년대부터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개발되어 이른바 린생산방식lean production system이라 부르는 절약형 생산체제로 한단계 더 발전했다. 토요다사가 실행한 것으로 유명한 이 방식은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적기에 공급해 재고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포드방식과 달리 토요다방식에서는 노동자를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다수의 기술을 익힌 노동자들은 작업방식이나 순서를 결정하는데 상당한 발언권을 가지며, 기술 향상에 관한 제안도 활발히 하도록 권장된다.

 

한 경제체제의 생산능력에는 정부, 대학, 연구기관, 훈련기관 등 기업이외 다른 기관들이 가진 생산을 용이하게 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능력도 포함된다. 경제의 전반적인 생산능력은 경제제도의 효율성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기업의 소유형태 및 금융거래에 관한 제도는 생산성을 높이는 기계, 노동자 훈련, 연구개발에 대한 장기적 투자에 영향을 미친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 실적을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동안 추적하는 경우라면, 1인당이 아니라 전체 성장률을 봐도 크게 상관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긴 기간에 걸쳐 여러나라의 경제성장률 추이를 비교 분석하려면, 1인당  성장률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18세기말까지 거의 모든 지역의 1인당 연간 생산량 증가율이 0%에 가까웠던 것을 이미 살펴보았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이 수치는 연간 1%로 올라갔고,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1인당3-4% 까지 증가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30-40년동안 기적적 성장기의 정점에 달했을 때, 증가율은 8-10%를 기록했다. 어림잡아 1인당 생산량 증가량이 3%이상이면 양호, 6%이상이면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대충 맞다. 복리계산법을 사용하면 성장율 숫자는 크게 다르지 않아도, 기간이 늘어나면서 커다란 격차가 벌어진다. 한 나라는 3%, 다른 나라는 6% 비율로 성장했다면, 두나라 차이는 크지 않다. 그러나 40년동안 지속하면 6% 성장한 나라는 10.3배 부자가 되는데 비해, 3%성장한 나라는 3.3배 밖에 더 잘 살지 못한다. 한나라의 생산능력을 여러 측면으로 드러낸다고 생각되는 수십가지 각종 지표를 종합해서 만들어진다. 지표는 생산구조, 사회기반 시설, 숙련도, 혁신활동 등이 있다. 기술이 실제 산업에서 쓰이려면 대부분 기계나 구조물 같은 고정자본에 체화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총고정자본('총'은 자본재의 감각상각을 제하지 않았다는 뜻) 형성이라고 부르는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가 높지 않으면, 그 경제는 잠재력을 많이 개발할 수 없다.

 

그래서 총고정자본형성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투자율이 개발잠재력의 좋은 지표가 된다. 세계전체 투자율은 20-22% 정도이다. 중국에서는 지난 몇년동안 이 비율이 45%라는 엄청난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디른 극단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등은 한해 2% 정도밖에 투자하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 투자율이 높은 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투자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현재의 소비를 희생한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미래에 더 나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현재의 생활수준을 희생한다는 의미다. 한나라의 경제발전 상황에 대한 유용한 지표는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비 지출과 일정 기간동안 그 비율이 변화한 추세이다. 부자나라는 가난한 나라보다 국내총생산의 더 많은 부분을 연구개발에 지출한다. OECD 평균은 2.3% 이고, 몇몇 나라는 국내총생산의 3% 이상을 투자한다. 핀란드와 한국이 그 중 선두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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