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으로는 농업이든 서비스업이든 어떤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생산능력을 향상시켜 경제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경제발전이 산업화, 더 정확히 말하면 제조업부문 개발을 통해 이루어졌다. 농업이나 서비스분야보다 제조업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훨씬 쉽다. 제조활동은 자연의 구애를 받는 폭이 훨씬 적고, 기계화와 화학적 공정을 쉽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농업은 땅, 기후, 토질 등의 물리적 환경에 의존해야 한다. 서비스 활동은 그 특성상 근본적으로 생산성 향상이 불가능한 것이 많다. 현악 4중주단이 27분짜리 곡을 빨리 연주해 9분에 해치웠다고 해서 생산성이 3배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 우리는 최근 금융분야의 생산성 향상이 품질악화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도하게 복잡하고 위험도가 높고, 심지어 사기성까지 있는 금융상품이라는 질 낮은 서비스를 우리가 감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조업 부문은 자본주의 학습장 같은 역할을 해왔다. 기계, 운송, 장비 같은 자본재를 생산해 다른 산업분야에 공급함으로써, 그 산업분야가 세탁기나 시리얼 같은 소비재를 생산하는 제조업이든 농업이든 서비스업이든 해당 분야의 생산능력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최근에 와서 제조업 부문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유행처럼 번졌다. 우리가 산업화 후사회에 진입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1960년대부터 일부 국가가 탈산업화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생산량과 고용 모두 양쪽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떨어지고, 그 자리를 서비스 산업이 메꾸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소득이 올라가면서 제조업 생산품보다 외식, 해외휴가 등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시각은 1990년대에 인터넷이 발명되고 이른바 지식경제라는 것이 탄생하면서 한층 더 힘을 얻었다. 이제 물건보다 지식을 생산하는 능력이 중요하고 금융, 경영컨설팅 등 지식기반을 둔 고가치서비스 산업이 탈산업화를 경험하는 부자나라의 경제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업화 후 경제체제가 풍미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산업화단계를 건너뛰고, 서비스산업만으로 부자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보다는 소프트웨어, 회계, 의학스캔이미지 판독 등의 수출로 성공해 세계의 사무실로 불리는 인도를 더 바람직한 모델로 본다. 대부분의 부자나라들이 고용면에서 탈산업화한 것은 맞다. 즉 가게나 사무실이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비율이 점점 줄어든 것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와 함께 총생산량에서 제조업 생산량이 차지하는 비율이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서비스 가격에 비해 공산품 가격이 싸졌다. 서비스업보다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이 훨씬 더 빨리 이루어졌다. 머리를 자르거나 외식을 하는 비용에 비해 컴퓨터나 휴대폰 가격이 얼마나 떨어졌는가? 전에는 구내식당, 보안, 일부 디자인 및 엔지니어링 처럼 제조업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던 서비스의 많은 부분이 이제는 아웃소싱되어 독립된 기업들로부터 공급받는다. 이중 국외기업으로부터 아웃소싱 하는 것을 오프쇼어링 이라 부른다. 이로인해 서비스가 실제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무엇을 만드는 일이 별다른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는 지식경제라는 새시대가 도래했다는 시각은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항상 지식경제 안에서 살아왔다. 산업화가 더 진행된 나라일수록 더 부유한 것은, 생산된 제품과 서비스의 물리적성질보다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연관된 지식의 질 때문이다. 18세기에 가장 첨단기술 산업이었던 모직방적이 이제 가장 수준 낮은 산업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 명확히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 산업부장관이 언젠가 했던 다음발언은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 '폐기해야 할 산업은 없다. 다만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이 있을 뿐이다'. 최근 금융, 운송 등의 일부 서비스 활동에서 높은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서비스활동에 기반을 둔 경제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처럼 고가치서비스를 수출하고, 거기서 번 이윤으로 필요한 공산품을 수입해 오면 된다는 것이다.
2008년 위기를 겪으면서 서비스가 성장의 동력이라는 믿음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 아프게 깨닫게 되었다. 이 고생산성 서비스의 많은 부분이 엔지니어링, 디자인, 경영컨설팅 등 제조업부문 기업이 주고객인 생산자 서비스이다. 따라서 제조업 기반이 약해지면 이런 서비스의 질이 떨어져 서비스 수출도 어려워진다. 19세기말까지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농업은 경제주축이었다. 오늘날 부자나라 중에도 몇세대 전까지만 해도 인구의 거의 4분의 3이 농업에 종사하던 곳이 많았다. 이제 부자나라에서는 농업이 생산량과 고용, 두 가지 면에서 모두 작은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이 나라들에서 농업은 국내총생산의 1-2%를 생산하고 노동인구의 2-3%만을 고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부자나라의 농업 생산량이 지난 세기에 엄청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농업의 중요성은 고용문제로 오면 한층 더 커진다. 가장 가난한 나라 일부에서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총노동력의 80-90%에 이르기도 한다. 지난 30년동안 인상적인 산업화를 이루었음에도 중국도 농업부문에서 일하는 인구가 여전히 전체 노동력의 37%를 차지한다.
서유럽 산업국과 미국이 제조산업의 절정에 이르렀을때, 당시 노동력 40%가까이가 제조업부문에서 일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부자나라들에서 제조업 종사자들은 15% 미만이다. 제조업부문 고용비율 하락은 총생산량에서 제조업부문 생산량의 비율이 감소하는 현상과 함께 일어났다. 국내총생산 대비 제조업 생산이 25%에 달했으나 이제는 선진국 중 어느 나라도 20%를 넘지 않는다.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의 비율이 뚜렷하게 줄어든 것은 제조업의 생산성향상 속도가 빨라서 다른 부문보다 가격을 상대적으로 많이 낮출수 있기 때문이다. 불변가격으로 계산해도 지난 10-20년 사이 영국의 제조업 비중은 극적으로 감소했다. 이는 영국의 탈산업화 현상이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이 상대적으로 빠른데 따른 공산품 가격의 하락때문이 아니라, 영국제조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절대적으로 쇠락한 결과임을 짐작게 해준다. 중남미의 산업중심지라 불리는 브라질의 탈산업화는 더욱 극적이다. 국내총생산중 제조업 비중은 1980년대중반 34%에서 현재 15%로 급락했다. 탈산업화현상은 1980년대이후 이 나라들에서 시행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결과였다. 갑작스런 무역자유화로 인해 제조산업이 줄지어 파괴되었다. 인도가 산업화의 과정을 뛰어넘어 서비스 산업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 산 증거라는 주장 역시 매우 과장된 것이다. 2004년이전 인도는 서비스부문에서 무역적자를 냈다. 2004년에서 2011년 사이에는 서비스부문의 무역흑자를 기록했지만, 국내총생산의 0.9%에 불과해서 국내총생산의 5.1%에 달하는 재화부문 무역적자액의 17%를 상쇄하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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