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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 나를 지켜내는 힘( 토마스

다른 생각이 필요해

엘버트 엘리스는 ‘비이성적 세계에서 이성적으로 살기’라는 상당히 강령적인 논문을 썼다. 그는 논문에서 일상적으로 인간의 광기가 나타나는 사례를 열거하였다. 그 사례는 전쟁, 테러, 억압, 부패, 환경오염, 인구폭발에서 시작하여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무지, 아동 성학대, 잘못된 교육시스템, 인간이 자초한 경제위기를 거쳐 쓸데없는 의식과 미신, 과식, 흡연, 알코올 섭취 등 스스로를 해하는 행동들, 광고, 근본주의적 종교와 성차별 등이다. 여기에 처음에 석가모니를 힘들게 했던 인간이라면 어쩔수 없이 겪는 기본적 문제들, 즉 질병, 노화, 죽음 같은 것을 더하면 인간이 겪는 고통의 목록이 대략 완성될 것이다. 이런 수많은 문제 속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냉소적으로 변한다어떤 사람들은 공격적으로 반응하고 공황장에를 얻기도 한다. 알코올, 마약, 약물, 광신주의 같은 것으로 괴로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 시킬 따름이다.  앨버트 엘리스가 강조하듯이 이토록 비이성적인 세계에서도 이성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누군가가 상황을 부풀리고 과장하고, 흐름을 돌리려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하하면서 같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것을 일궈낼 수 있다. 모든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그에 속한다. 나쁜 건 나쁘지만 현재 나쁜 것보다 더 나쁘지 않다. 견딜 수 있다. 때로 잘못하고 살수를 저지른다해도 그 때문에 자신 혹은 타인이 나쁜 사람이라고 수는 없다.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너무 후회하지마라. 점점 성숙하고 나아지는 것이 중요하다. 받아들이는 것은 평정심에 이르는 가장 좋은 길이다. 물론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변화 시킬 수는 없다. 세계는 본질적으로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나쁜 것과 좋은 것이 공존하기에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경험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 엘리스는 세상의 부조리를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역겨운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고자 노력할 수 있다고 보았다. 모든 것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행복해지기‘라는 게임처럼 생각하라고 하면서.

 

합리적 정서행동치료와 인지행동치료의 바탕이 되는 기본적인 생각은 너무나 중요해서 치료의 중심이 되어야 마땅하다. 전인류중에서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이고, 그 중에서 약물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더욱 극소수이다. 정신적 괴로움은 대부분의 경우 치료가 필요 없다. 그런 현상은 잘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을 때 그로인해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살다보면 힘든 일을 만날 수 있고, 그럴때 필요한 것은 어려운 시기를 넘기는데 도움이 되는 이성적인 삶의 철학이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비이성적인 생각과  행동방식으로 인생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비이성적인 생각이란 상황을 그 자체보다 더 나쁘게 민드는 생각들, 현실을 수용하기 힘들게 만드는 생각들을 말한다. 지진이나 홍수, 가뭄, 추위, 질병, 죽음 같은 것들은 우리가 결코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에 이성적이고 평온하게 대처하는 것은 우리 영역에 속한다.

 

유리는 유감스럽게도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는 그다지 많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각자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며, 결과 또한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에픽테토스는 자신의 권한에 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자꾸만 외적인 사건을 통제려고 하며 자연까지도 어떻게 해서든 복종 시키고자 한다. 당신은 얼마나 자주 다른 사람들에게 화가 나는가, 얼마나 자주 그들에게 실망하는가. 당신은 자신이 화나고 실망한 것이 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는 바로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분노하고 실망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어떤 생각들이 우리로 하여금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게 할까?

 

'그가 저런 행동을 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아...' 여기서 핵심은 이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과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마음에 들지 않기에 상대방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나 상대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할 수 있을까?  '그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럴수도 있는거지, 나는 그 일을 감당 할 수 있어, 자기 원하는데로 하는거지 나도 그렇고, 그냥 서로 의견이 다른 것 뿐이야... ' 게슈탈트 상담이론(형태주의)창시자 프리츠 페를스는 이와 관련하여 근사한 모토를 남겼다.

 

“ 나는 나, 너는 너.

  나는 너의 기대를 채워주려고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야.

  너 역시 나의 기대를 채우려고 살아가는게 아니지.

  우리가 마음에 맞는다면 그건 놀라운 일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없어.“

 

스스로를 충분히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에게서 듣고 싶은 말을 자신에게 해주고, 타인에게 바라는 것을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너의 필요를 채워줄 태니까, 너도 나의 필요를 채워줘’라는 식의 태도는 불필요하게 복잡한 상황을 만든다. 스스로를 충만케 하는 것은 나르시시즘도 아니고, 이기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성숙함의 표시이다. 어린아이만이 어른이 필요를 인지하고 채워줄 때까지 기다리는 법이다.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더 여유롭다. 다른사람들도 원하는 행동을 하고, 원하는 생각을 하고  원하는 말을 해야할 것이 아닌가. 이것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그다지 누가 되지 않는다.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있을때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

 

평정심 훈련이 긍정적 사고와 다른 점은 불안을 유발하는 생각들을 의문시하고, 정확히 검토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 내가 여기서 하는 말 즉 나의 행복이 상대방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이 정말로 맞을까? 내 생각이 옳은 이유는 무엇이고, 틀린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생각들이 내가 원하는 기분으로 인도하고, 나의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까?  아니면 내 생각으로 인해 스스로를 그저 짜증스럽게 만들뿐인 걸까? 스로에게 그 무엇을 억지로 주입해서는 안된다. 어떤 생각을 다른 생각과 교환하기만 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어떤 생각을 옳다고 여기면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입장을 받아들을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생각이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다. 그 누구도 감정과 행동에 대한 스스로의 영향력을 앗아갈 수는 없다. 당신의 생각, 감정, 행동은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철학은 당신의 자율성을 강화시키고 인격의 성숙과 성장을 도모한다.

 

우리주변에는 힘겨루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화를 할 때든 물건을 살 때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기려고만 하는 사람들이다. 언제나 우리 자신의 목표가 우선시 된다. 모든 것을 늘 고분고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거슬리는 것들에 시시콜콜 반응하다보면 할일이 너무 많아질 것이다. 계속 싸우고 얽히다보면 막상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은 전혀 못하게 된다. 과거가 어떠했든 이미 지나간 일이다. 일생을 과거에 얽매여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시작할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