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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회학 (김명숙 등)

법문화와 법의식 (양현아) 1

 

법문화 연구는 한국인의 고유한 법에 대한 인식, 태도, 의견등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고, 여러 경험적 조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만큼 법문화란 법의식, 법감정, 혹은 법인식과 같은 개념들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때로는 혼용되기도 한다. 법과 사회의 괴리는 어느 사회에서나 발견되는 일번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이 문제는 외국에서 계수된 근대법과 한국의 자생적 법규 간의 불일치라는 역사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이러한 불일치에 주목한 법사회학자들은 그 원인을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유교적 규범과 근대법간의 충돌로 보기도 하고, 그러한 유교적 규범들이 현대사회 속에서 연고주의나 정실주의와 같은 현상으로 변형되고, 왜곡된 데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했다. (정실주의(patronage)란 사람을 공직에 임용함에 있어 실적 이외의 요인, 즉 정치적 요인뿐만 아니라,혈연, 지연, 학연 등 개인적인 친분, 기타의 온정관계 등을 기준으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법문화란 대체로 한 사회에 있어서 법 또는 법체계에 대한 태도, 가치관, 의견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 국가 또는 한 집단내에서 공통적인 법문화를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법앞의 평등, 과실, 명예 등과 같은 법률개념은 그 사회에 통용되는 문화 구속적 개념이기도 하다.  이런 개념들을 이해하고, 확정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이 속한 문화적 개념이나 규범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다. 또한 한 사회의 경계안에 하나의 문화만 존재한다고 할 수도 없다. 지역, 계층, 직업집단 등에 따라 때로는 상이한 문화들이 존재하므로 판단자가 속한 집단의 문화적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법문화에는 국가적 지역적 경계가 있고, 나아가 다수자와 소수자의 법문화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법문화란 법과 문화, 사회가 서로 역동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적용을 포착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법문화와 유사한 개념으로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법의식개념이 있는데, 이는 법문화보다는 법현상의

심리적 측면에 한정된다. 또 유사한 개념으로 법 감정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법의식 개념에는 인지적 요소가 강하다면, 법감정에는 정서적 요소가 강하다고할 수 있다.

 

문화란 인간이 그들의 경험을 해석하고, 행위를 방향짓게 하는 의미의 직조물이라는 기어츠의 시각에서 문화란 인간의 제행위에 부착된 의미의 코드로서, 그 자체가 해석을 기다리는 의미의 그 자체라는 측면에 강조한다. 법문화는 법의 제정, 해석, 적용 등 법현상에 관한 의미 체계이면서 개인적인 인지나 감정상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집합적인 성격을 지닌 의미의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란 여타 사회, 경제, 정치적 변화와 상호작용하는 것이어서, 법문화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있는 현상이라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법문화와 관련하여 살아있는 법론으로는 널리 알려진 법사회학자 에어리히에 의하면, 법이란 특정한 사회의 사회관계와 규범에 기반을 두어야만 작동한다는 근본적으로 사회과학적 법학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였다. 규범은 언제나 사회규범이고, 그것은 언제나 사회관계의 결과물이다. 살아있는 법의 첫째 원천은 법문서들이며 둘째 원천은 삶과 상거래, 관습과 관행에 대한 직접 관찰이다

 

시민들에 의해 실제로 준수되고 수용되는 지점에서 살아있는 법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촌락민들은 농사를 위해서 상부상조 해야 했고, 이웃간 돈독한 관계유지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관계속에서 분쟁해결 방식도 공동체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경향을 나타내며, 결과적으로 개인의 행위의 통제도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다수 시민들은 전통적 생활양식, 관습, 관행에 얽매여 있다. 국가에 매몰되어 공동체로서의 실체를 가지지 못하는 서울의 사회적 삶은 여러측면에서 외형적으로 농촌과 차이가 있지만, 전통적 사회구조가 여젼히 지배하고 있으며, 도덕적, 규범적 의미에서 시민문화가 근거없다고 한다. 식민주의와 전쟁을 겪으면서 근대국가를 건설한 한국의 경우 국가의 법규범의 형성과 집행에 시민적 기반이 취약했을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1960-1970년대 활동한 법사회학자 함병춘교수의 한국인의 법문화의 요점을 살펴보면, 한국인은 소송을 통한 분쟁해결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법은 경제발전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보다 많은 법은 우리에게 해로울 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법이 아니라, 보다 적은 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서구적이며 형식적인 한국의 법체계는 한국의 토착적인 법문화와 서로 이질적 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공식적 법체계인 상부구조는 일본이 변형한 독일법 체계를 모델로 하고 있지만, 한국의 법문화는 여전히 전통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것이다. 일본인의 법관념론에 따르면, 개인들이 서로 독립적 주체로서 상호적으로 대항과 존중을 하는 관계가 아니라, 집단 내지 사회관계에의 귀속을 기축으로 하고, 그 내부에 상하적으로 협동체제인 상호의존관계 속에 있고 화和의 존중을 질서유지의 기본원리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송기피 경향뿐 아니라 법의 규범성, 소유권, 계약관념과 같은 여러면에서 일본의 법제도, 법과정, 법행동의 존재방식을 규정하는 기본요인이다. 문화론은 현실을 수용하게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사회통제의 수단이 되기 쉽다. 일본인이 소송을 흔히 하지 않는 것은 여러 제도들이 소송하지 않도록 구조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