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타자들( 양현아) 2

식민지화는 거의 항상 식민지지배의 사회에 의해 외래법률의 유입을 가져왔는데, 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법제가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로 이동했다. 식민지 지배의 일환으로 새로운 정치와 지배의 기술들도 발달되었는데, 이 지배기술은 식민지에서뿐 아니라 본국에도 적용되게 되었다. 근대법은 식민지화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을뿐 아니라, 영미 식민지화의 정당화 논리로 내세워져정복과 착취가 문명의 확장으로 재해석 되기도 하였다. 유럽의 대다수 식민지 국가들에서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유럽식 법정을 이용한 반면, 토착민들은 자신의 분쟁을 관습법의 법정에서 해소하였다. 식민 이후의 국가들은 자주 이러한 이중적 법체계의 유산에 유지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식민지에 입법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토착민들은 국가법속에서 왜래법을 체험하는 소외 현상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래법도 제도로서 적용되고 토착민을 다스림으로써, 그들의 사회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식민지의 법과 문화를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식민지적 시선을 통해 자신의 관습을 바라보는 문화 자체는 포스트식민주의 연구자들의 주요 관심이다. 식민주의의 타자로서의 주체성과 법문화는 식민이후에도 오히려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역설과만나게 된다.

 

식민지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법의 유입을 강압적 주입과 같이 지나치게 단순화 하여 보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이다. 토착지의 엘리트들이 유럽과 미국법체계를 수정하여 그들만의 새로운 법체계를 만들어내는 데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식민시기 관습법이란 재국주의 세력과 식민지 내부의 여러 집단간 상호작용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법을 통한 식민지 통제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규율이라는 견지에서 분석될 수 있다. 순수한 전통론에서 그려지는 전통이란 이론적으로 식민주의가 조성했을 본질화된 문화이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식민지법학을 적극적으로 직면하지 않는다면, 한국인들은 자신의 법체계안에서 자신도 모르는 채 법의 타자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적 지반, 기층이라는 의미에서 서브알턴은 마르크시즘에서의 프롤레타리아 내지 민중과 의식적인 거리를 취한다. 1982년 인도 벵골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라나지뜨 구하의 주도로  ' 서브알턴: 남아시아 사회와 역사에 관한 글들'의 창간호가 발간 되었다. 서브알턴의 연구집단은 1960년대이래 식민주의 역사학과 식민지배 과정에서 등장한 인도의 민족주의란 영국이 만들어준 식민제도에 참여하여 제한된 자체안에서 권력을 얻고자 했던 토착엘리트들의 경쟁을 포장하는 수사修辭였다고 비판한다. 오히려 인도민족주의 역사는 인도와 영국사이의 역사가 아니라, 인도인과 인도인 사이의 경쟁의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식민지 인도에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헤게모니에 결코 통합되지 않는 인민의 의식과 삶의 영역이 별도로 존재했고, 엘리트정치와 구별되고, 엘리트정치에 종속되지 않는 인민정치 즉 서브알턴의 정치가 엘리트 정치와 공존했다. 서브알턴은 한 사회의 역사와 기반이 되는 기층민들이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까지 기록되거나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사회학의 맥락에서 포스트식민주의 문제의식을 몇 줄기로 정리해보면, 근대법의 뿌리에 식민주의 지배 관점이 있다는 점, 식민주의 시각이 억압차원이 아니라 관습과 관습법이라는 자기문화에 대한 지식 생산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 식민이후 관습과 관습법에 대한 재정리 노력이 매우 부족하였고, 기존의 관련 연구들에는 민족주의적 시각이 우세했다는 점, 민족주의로는 식민주의 유산을 가진 법의 틀을 넘어서는 인식론이 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식민지 사회내부의 지배 질서를 해부하고,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국가와 시민의 관계법과 문화에 대한 지식형성 과정에 대한 더 많은 탐구가 요청된다.

 

오늘날 세계는 식민주의 유산에 더해 급속한 세계화에 따라 법적규제의 체제들과 법질서간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국제법의 규율범위가 통상관계에서부터 환경, 인권 등으로 확장 되면서 법적 다원성에 국내법과 국제법이라는 새로운 층위가 더해지고 있다. 공존이라기 보다는 서로 녹아들지 못한 채, 지질의 단층 처럼 머물러 있는 다원적 법체계에 대한 탐구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