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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회학 (김명숙 등)

법의 타자들 ( 양현아) 1

페미니즘을 정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은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서구에서 태동한 사회운동, 정치학이자 현대사회 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사상체계라 할 수 있다. 남성들의 시각 입각하여 제정된 법의 성차별적 효과에 대한 비판과 재개정운동은 한국에서 페미니즘 법학의 풍부한 역사적 자원이 되었다. 이러한 운동은 대표적으로 1953년부터 시작된 가족법 개정운동에서 2005년의 호주제도 폐지에 이르렀다. 1980년대 이후 부상한 비교적 최근의 사회이론인 포스트식민주의는 식민지이후에도 정치적, 문화적 측면 등에서 지속되는 식민지성에 대한 비판이론이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식론이다.  민족주의는 자기민족을 중심으로 세계와 역사를 해석하면서 자아 대 타자와 같은 식민주의자들과의 이분법을 통해 자기민족의 순수성, 피해자성만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서구의 이질적인 법체계가 식민지 조선에 유입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일본을 통해 유입된 서구의 법체계는 식민지 조선사회의 현실과 어떻게 맞물렸고, 이에 대해 식민주의자들은 어떤 법해석과 법적용을 하였을까? 그리고 이후 탈식민지 한국에서 법에 남겨진 식민지 유산은 어떻게 해석되고 극복 되었을까? 여성을 동등한 개인으로 취급하라고 할 때, 그 동등성의 준거점은 남성과 같이 취급하라는 의미가 될 소지가 많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여성에 대한 동등대우는 여성에 대한 많은 장벽과 통념을 파기시키는 데는 효과적 이지만, 남성을 평등모델로 채용한다는 점에서 남성중심적 평등론이라는 한계점도 있다. 진정한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차이' 나아가 양성간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오랜 역사동안 남성의 렌즈에 의해 왜곡, 오해, 평가절하된 가부장적 산물로서의 여성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법적으로 차이가 문제된 대표적 사안으로는 여성만이 치르는 생리, 임신, 출산에 관한 법적대우에 관한 것이다. 야성의 진정한 차이, 나아가 양성간의 차이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식각과 잣대가 필요하다.

 

여성들이 주로 오래 해온 가사노동, 자녀양육도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 맡아야 할 노동이 아니라, 남녀 모두 공유해야 할 보살핌의 가치로운 역할로 그 의미가 전환되었다. 자유주의적 평등과 여성의 차이를 중시하는 입장 모두를 비판하는 대표적 저자로 캐더린 맥키논이 있다.  그는 여성이 배려적인 것은 남성이 여성의 배려를 가치롭게 여기기 때문이다. 여성이 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그녀들의 존재가 남성과의 관계속에서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질적 페미니즘의 조류에서 보면, 젠더관계란 인종주의나 식민주의 혹은 신식민주의, 제국주의와 같은 다른 거시적 사회변화와 엇물려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계급적, 인종적, 역사적으로 형성된 여성 간의 차이 혹은 차별은 때로는 남녀간 차이나 차별에 못지않게 심각할 수 있음에도, 기존 페미니즘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유색인종 페미니즘은 인종문제에 대해 도외시 해 온 서구와 벡인 중심의 페미니즘에 대해 성찰을 촉구한다.

 

식민지를 벗어난 포스트식민사회에서 페미니즘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포스트식민주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식민지 지배에서 지배관료들은 식민지 사회의 봉건적 지주-소작관계라든가 가족관계를 근대화 하려는 관심이 부족하였고, 또 이들과 결탁한 토착세력들 역시 기존 토착사회의 권력 관계를 개혁할 필요성이 없었다. 여성의 권리나 평등을 구현 하려면 단지 남녀간의 동등성 혹은 차이라는 축을 넘어서고, 서구중심의 페미니즘과 인권의 시야를 넘어서는 역사적인 분석을 요한다는 엄연한 현실에 직면한다. 전통적으로 페미니즘 법학의 역할은 성차별적 효과를 분석과 비판하는데 있을 것이다. 법의 제정과 개정을 요구했던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운동으로는 가족법 개정운동을 들 수 있다. 최근 여성주의 입법운동의 예는 성매매특별법의 제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운동은 반성매매 그리고 성매매여성을 지원하는 여성운동 단체들이 법제정운동의 중심주체로 활약하였다. 페미니즘 법학의 사회운동을 공익소송운동을 통해서 살펴보면, 1990년초에 서울대 교수와 조교간에 발생했던 성희롱사건은 성희롱에 대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소송이 입법을 이끌었다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선례이다.

 

법적담론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에 대한 분석은 동성애자나 유색인 혹은 외국인 노동자 등으로 끊임 없이 확장되고 구체화 되어왔다법이 하나의 중심주체를 전제로 만들어지고 해석된다면, 법은 그 외곽에 있는 소수자들을 도와주고자 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통해 이들은 '타자'로 만들어내는 데 대해서는 성찰하기 어려울 것이다. 요컨대 법의 타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법이 그들을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법은 그들도 하나의 고려대상으로 삼긴 하지만 판단자 혹은 화자가 아니라, 판단 받는자 혹은 피보호자라는 의미에서 법의 타자적 주체로 호출하면서 포섭한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