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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회학 (김명숙 등)

법과 분쟁 (황승흠)1

갈등이나 분쟁없는 사회가 인간의 이상향으로 거론되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갈등이나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법의 핵심적인 사회기능중의 하나가 분쟁을 처리하는 것이다. 분쟁연구자들의 초점은 질서 있는 사회생활이었다. 이들은 규칙뿐만 아니라 분쟁의 절차, 분쟁 당사자의 전략과 상호작용의 과정에 관심을 기울였고, 법정과 같은 공식적인 제도뿐 아니라 다양한 비공식적인 분쟁해결 제도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분쟁연구는 비록 법자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해도, 분쟁상황을 둘러싼 질서의 논리 안에서 분쟁 당사자들이 서로 상호작용 하며 심지어는 규칙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분쟁과정 연구의 목적은 분쟁과 질서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다. 인류학자들의 관심이 법, 규칙에서 분쟁으로 분쟁의 처리에서 과정으로 옮겨가는 것을 하나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분쟁은 병리적인 성격을 띤다.  그것은 일탈이나 기능장애를 의미하며, 사회통제를 위한 각종 제도적인 장치에 의해 교정되어야 할 것으로 파악된다.

 

과정 중심의 패러다임은 인간행위를 끊임없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고, 그가 다른 구성원들과 협력하는 것을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성향의 표현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그런 규범은 무시되며, 사회관계와 호혜성의 그물내에 있는 타인의 행동에 의해 개인적인 계획이 일차적으로 통제 된다. 이러한 분석은 사회과정 그 자체내에 있는 질서의 역학을 추구하고, 제도보다는 일상 생활의 맥락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춘다. 과정중심의 패러다임에서는 분쟁을 병리적이나 기능장애로 보기보다는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본다. 리처드 에이블은 분쟁의 과정을 어떤 사회관계가 거쳐가는 단계의 발전으로 설명하고 있다. “ 분쟁은 연대기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분쟁이 되기 위해서는 양 당사자간에 먼저 물리적 접촉이 있어야 하고 이 접촉은 중요한 상호작용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갈등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갈등은 불일치를 의미하지만, 단순한 사실의 불일치는 갈등이 아니다.  갈등이 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사실에 대한 주장과 함께 규범적 지지와 같은 지적우월에 대한 승인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요구를 부정하는 것에서 갈등이 시작된다. 갈등 역시 사회관계의 발전단계이므로 결코 일탈이 아니다, 일치하지 않는 요구가 공적으로 주장될 때 갈등은 분쟁으로 발전한다...” 

 

갈등이 공적으로 주장된다는 것은 분쟁이 전체 사회관계와 밀접한 관련속에서 해결되고, 분쟁 당사자사이의 비공식적인 논리보다는 전체 사회의 공식논리, 즉 법,규정이 더 중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쟁이란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경력과 생애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둘러싼 외적인 사회환경속에서 생성, 발전하거나 소멸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불만이 갈등으로 발전하고, 그 갈등이 분쟁으로 표출되는 것은 그 사회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의 제약을 받는다. 똑같은 갈등양상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회에서 똑같이 분쟁으로 비화되지 않는다. 사실상 분쟁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유예되거나, 당사자가 포기하거나, 상위의 권위에 복종한 것을 수도 있다. 결과가 분쟁을 종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분쟁으로 지속되는 경우도 많다.이러한 의미에서 분쟁은 기나긴 생애를 살아간다.

 

분쟁을 사회관계의 발전단계로 본다면, 분쟁의 처리도 분쟁의 과정의 한 요소로 이해되어야 한다. 분쟁 처리는 분쟁의 시작 ,즉 불만의 생성으로부터 시작된다. 분쟁이 발생하려면 어떤 자원에 대해서 상대방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 요구가 있어야한다. 명예나 위신과 같은 것도 갈등을 일으키는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다. 그러나 사회적 또는 문화적으로 희소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은 갈등을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사회속의 개인은 갈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들의 욕망을 억제한다.  펠스티너는 '산업화된 사회환경에서 분쟁 당사자는 분쟁이 표출되지 않도록 상대방 당사자와의 관계를 제한 또는 단절시키는 회피의 방법에 더 의존하게 된다'고 한다.  회피는 분쟁 당사자가 분쟁해결을 위해 더 이상 돈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 분쟁관계에서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분쟁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분쟁처리과정에서 지나치게 돈이 많이 든다면, 분쟁당사자는 회피를 선호할 수 있다.  또한 분쟁 당사자간 사회적 힘이 지나치게 불균형한 경우에 약한 쪽의 분쟁 당사자는 회피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