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뉴욕주 빌 토머스라는 젊은 의사가 실험을 했다. 응급실을 찾는 사람은 개별적이고, 치료 가능한 문제를 가지고 온다. 환자가 더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온다면, 토머스는 두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해당문제를 무시 하거나, 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곳, 예를 들어 요양원 같은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돌보는 것과 치료하는 것을 혼동하고 있었다고 그가 말했다. 그는 요양원에 없는 요소가 바로, 생명 그 자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학창시절 그는 책을 열렬히 탐독했고 독학으로 많은 것을 배우는 타입이었다. 그저 선생님이 시키는 과제를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망설임없이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 토머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 나는 거절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세일즈맨이 되려면 기꺼이 거절당할 수 있어야 해요.’ 그는 그런 성격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버티고 원하지 않는 건 피할수 있었던 것이다. 토머스는 또 그에게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공부하는 게 정말 좋았다. 그는 전적으로 자립하는 자급자족 개념에 충실하고 싶었다. 집도 친구들 도움으로 손수 지었다. 먹을 거리를 자기 손으로 길렀고, 바람과 태양광을 이용해 자가발전도 했다. 그는 날씨와 계절에 순응하며
살았다.
토머스는 요양원이 자신의 농장과 대조적이라는 걸 느꼈다. 농장에서 그가 경험한 것은 어지러울 정도로 충만한 생명력이었다. 하지만 요양원은 출근할 때 맞닥뜨리는 것은 생명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구속과 규정으로 가득한 삭막함이었다. 그는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의 환경이 자급자족을 소중히 여기는 자신의 이상과 근본적으로 배치된다는 것을 뼛속까지 느끼고 있었다. 토머스는 좋은 사람이란, 독립성을 극대한 삶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바로 독립성이야말로 요양원 주민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집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요양원에도 좀 더 생명력을 불어넣기로 결심하고,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생명자체를 들여놓기로 한 것이었다. 식물과 동물, 어린 아이들을 요양원 주민들의 일상으로 끌어들이면 어떻게 될까?
토머스는 이런 제안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요양원에 존재하는 세가지 역병이라고 불리게 된 무료함, 외로움, 무력감을 공략하는 것이 이 계획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살아있는 생명을 요양원 안에 들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를 가나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관한 뿌리깊은 문화가 있게 마련이다. 토머스는 이렇게 말했다. 문화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습관과 기대를 모두 합친 거예요. 그 습관과 기대가 좋은 삶을 향유하게 하기보다 요양원의 틀에 박힌 일상과 안전을 우선시 하도록 만든 것이었고, 거주민들과 함께 지낼 개 한 마리 들이는 일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동물, 식물, 어린아이들을 요양원 주민들이 영위하는 삶의 일부가 될 만큼 충분히 많이 들이고 싶었다. ‘문화는 엄청난 관성을 지니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문화는 그 지속성 때문에 영향력을 행사 합니다. '문화는 혁신의 싹을 질식시키는 힘이 있어요‘ 개 두마리와 고양이 네마리와 새들이 요양원에 도착했다. 인조식물을 모두 치우고 각 방에 살아있는 식물을 들여놨다. 직원들은 학교가 파한 자녀들을 요양원으로 데려와서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주민들의 가족과 친구들은 요양원 뒤뜰에 정원과 아이들 놀이터를 만들었다. 토머스와 그의 아내, 간호부장 그레이싱이 열심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뭘하고 있는지를 몰랐다.
토머스팀이 너무 어슬프게 일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도왔다. 여느 집에서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을 돌보는 책임은 모두 함께 나눠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동물이 있으면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럴때 누구든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게 옳다는 논리다. 그레이싱은 직원들끼리 균형있게 책임을 나눠갖도록 도왔다. 사람들은 서서히 요양원을 생명으로 채우는 것이 임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요양원 주민들에게 끼친 영향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해졌다. 그전에는 말을 못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사람이 말문을 열었고, 걷지도 못할 것 같은 사람이 개를 산책시키겠다고 나섰다. 사람들의 눈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의 효과조사 결과 체이스 요양주민들은 비교집단주민들에 비해 복용하는 처방약이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불안증세에 먹는 향정신성 제재의 처방이 특히 줄어들었다. 약 구입에 들어간 비용은 비교집단에 비해 38% 밖에 되지 않았다. 사망률도 15% 감소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토머슨는 이렇게 답했다.
’살아야할 이유를 갖고 싶어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사망률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심리학자 주디스 로딘과 엘렌 레인저 박사는 한 요양원에 사는 주민들에게 화분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주민 절반에게는 화분에 물을 주게 하고 그들의 삶에서 무엇을 책임을 지는 일이 어떤 혜택을 주는지에 관한 강의를 듣도록 했고, 나머지 절반은 누군가 대신 물을 주게 했고, 환자의 복지는 직원들의 책임이라는 강의를 듣게 했다. 1년 반이 흐른 후에 더 많은 책임이 주어진 그룹은 활동적이고 정신이 맑았으며 더 오래 살았다. L이라는 남성은 60년을 함께한 아내를 잃고 일상생활에 관심을 잃었다. 토머스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떠올렸다. ‘ 지난 3개월 동안 벌어진 일로 인해, 그의 세상은 완전히 무너져버린 상태였습니다. 아내를 잃고 집도 자유도 한순간에 빼앗겨버린 거죠. 그중 최악은 아마도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의미를 잃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삶의 기쁨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죠.’ L은 잉꼬 한쌍을 받아 새를 돌보기 위해 들어온 직원에게 자기가 새를 좋아하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새들이 침잠해 있던 그를 끌어내고 있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면 장애가 있는 노인들의 사망률이 떨어진다는 것도 토머스가 한 실험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요양원 노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를 정도로 치매가 심한 노인들마저도 더 의미있고, 기쁘고, 만족스러운 삶을 경험하는 것이 가능했다. 얼마나 약을 덜 먹고,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것보다 사람답게 사는 일에 대해 얼마만큼 더 가치를 두는지 측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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