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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치료만이 전부가 아니다.(2)

윌슨이 실행한 프로그램의 핵심은 믿을수 없을 만큼 단순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늙고 쇠약해져서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볼수 없게 되었을 때도, 삶을 가치있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1943년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발표한 영향력 있는 논문 ‘인간동기부여 이론’에는 인간욕구의 위계가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가장 밑바닥에 기본적인 욕구가 자리한다. 여기에는 생리적 생존에 필요한 음식, 물, 공기에 대한 욕구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법, 질서, 안정감 등에 대한 욕구가 포함된다.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가면 애정과 소속감에 대한 욕구가 포함된다. 그 위에는 성장에 대한 욕구, 개인적 목표를 이루고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고, 성취에 대한 인정과 부상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자리한다맨위에는 매슬로가 '자아실현'이라고 명명한 욕구가 있다. 도덕적 이상이나 창조적 행위를 그것 자체를 위해 추구함으로써 자기실현을 하려는 욕구다. 노인 주거시설에 대한 관심과 정책이 건강과 안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매슬로가 말한 목표를 인식하고 그것을 충족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삶을 추동하는 주요 동기는 꾸준하고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엄청난 변화를 거친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매슬로의 고전적인 욕구 위계에 끼워 맞추기 힘든 경우가 많다. 젊은 시절 사람들은 매슬로가 말한 것처럼 성장과 자아실현을 추구한다. 성장은 외부세계로 열려 있음을 수반한다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경험, 더 넓은 사회적 관계, 그리고 이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기 위한 방법을 샅샅이 탐색해 나간다. 그러나 삶의 후반부에 접어들면 우선순위가 급격히 변한다. 대부분은 성취와 사회적 관계를 추구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을 줄인다. 관심범위가 좁아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더 적은 수의 사람들과 상호작용 하며, 가족이나 오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무엇을 하는 것보다 존재하는데, 그리고 미래보다 현재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노인들이 관심사를 좁히는 까닭은 신체적, 인지적 쇠락에서 오는 위축으로, 이전처럼 어떤 목표를 추구하기 어려워졌거나,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세상이 그들을 막기 때문이다.  이때 노인들은 그것에 맞서 싸우기보다 적응을 하게 된다. 아니 더 슬프게 말하자면,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스탠퍼드대학의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슨은 2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정서적 경험을 몇년에 걸쳐 추적했다. 전반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정서적으로 만족스럽고, 안정적인 경험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면서 삶이 더 협소해지는 데도 말이다. 산다는 것은 일종의 숙련 과정이며, 노인들의 침착함과 지혜는 오랜 시간에 걸쳐 획득 된다는 것이다.  카스텐슨 교수는 스물한살 되던 해에 교통사고로 심각한 머리 부상에 내출혈을 일으켰고, 뼈는 산산조각났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할 정도로 위급했던 3주가 지난 다음에 생각할 시간이 많았죠. 죽음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었는지를 깨달을 만큼 몸이 회복되고 나니, 내게 중요한 게 무언지를 보는 눈이 굉장히 달라졌어요.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런 생각 뿐이었어요. 이 일 다음에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어떻게 하면 성공 혹은 실패를 하게 될까?....” 15년후 카스텐슨 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기초로 해서 하나의 가설을 만들었다. 우리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지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달려있다는 가설이다. 젊고 건강할 때는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믿는다. 가지고 있는 기능과 능력을 잃을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세상은 내 손안에 있다’. 젊은이들은 현재의 즐거움을 기꺼이 뒤로 미룬다.

 

삶의 시야와 한계를 몇십년 단위로 판단할 때, 어쩌면 인간에게는 그것이 무한한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이때 우리는 메슬로의 피라미드 맨위에 자리잡은 것처럼, 즉 성취감, 창의성, 그리고 자아실현에 필요한 여러 속성들을 추구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삶의 시야가 축소되어 눈앞의 미래가 불확실 하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될 때, 삶의 초점은 지금, 여기로 변하게 된다. 일상의 기쁨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연구팀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명의 덧없음을 절실하게 느낄 때면, 삶의 목표와 동기가 완전히 변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관점인 것이다. 톨스토이도 이 점을 간파했다. 이반 일리치는 건강이 악화 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이전까지의 야망과 허영이 모두 사라저버렸다그는 그저 안식을 원했던 누군가 옆에 있어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걸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아내도, 의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