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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해야 건강하다. (리처드 윌킨슨,

자유, 평등, 우애

신문기사에서는 교황 요한 바오로는 마더 테레사를 ‘단지 낮은 자가 아니라 낮은 자들의 시종’이 되는 길을 선택한 사람으로 미화하고 있다. 부로부터 자발적으로 등을 돌리고 가난한 자들과 더불어 사는 것, 그 자체가 성스러운 행위로 미화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 기회의 평등이 누군가에게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줄수 있겠지만, 최선의 대안은 아니다. 사회구조 전체가 바뀌지 않는 한 결국 다른 누군가에게는 열등한 지위가 돌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는 방식으로 누군가의 구직을 돕고서는, 그것이 실업으로 인한 사회전체의 불행을 줄였다고 믿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때 실제 실업률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 일뿐이다. 기회의 평등을 결과의 평등으로 대체하려 하는 정치적인 시도들도 사회문제의 원인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다. 사회적 압박이 우리 모두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불평등이 심해지고 사회적 지위가 점점 중요해 지면서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자신의 서열과 성과에 신경을 쓰게 된다.  직업, 지위, 학력, 소득이 좀 더 중요해지고 스스로 자신감을 갖지 못할 때 대인관계는 더욱 괴로운 일이 되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에 더 많이 시달리게 된다. 사회적 관계는 물질적 토대위에 세워진다.

 

그 구조의 깊은 심리학은 희소자원에 접근하기위한 갈등과 같은 홉스적 난제를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하는가' 라는 진화론적 중요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일종의 구성원들이 비슷한 욕구를 가진다는 것은 같은 안에서 특정한 자원을 놓고 경쟁하거나, 갈등할 가능성도 높다. 인간사회들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따라 사회구조의 기반이 형성된다. 걀등을 해결하는 방식은 '힘이 곧 정의'라고 보는 전략과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을 양극단으로 하는 연속 선위 어느 지점에서 선택된다. 전자의 전략을 사용하는 사회에서 분배의 불평등은 권력의 차이를 의미하며, 후자의 전략은 분배의 평등에 좀 더 가까운 사회에서 선택된다.  인간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성격에 적응하기 위해, 그에 맞는 다양한 사회전략과 대응방법을 선택했다. 희소자원의 배분이 권력에 의해 결정되고, 약자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강자들이 배를 채우는 사회가 있다고 치자. 이런 사회에서는 하층차별이나 편견처럼 자기의 우월감을 표출하려는 다양한 지배행동이 판을 칠 것이다. 협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살 때 인간은 호혜, 신뢰, 공정의 원리, 상호원조,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처럼 좀더 사회적인 전략들을 수행할 수 있다.

 

평등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에게 인정과 존중을 받고 싶은 욕구들, 돈과 지위보다는 사회적자원을 통해 실현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가치 있는 것,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협력의 전략은 지배행동을 제한하고, 그대신 좀 더 사회적인 분배체계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물질적 관계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관계를 의미한다. 선물은 우정을 뜻하며, 뇌물은 선물이 부채감을 일으킨다는 심리적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인간의 정신구조는 희소자원을 두고, 서로 갈등해야 하는 상황에서든, 협력해서 이득을 얻을수 있는 상황에서든, 인류가 함께 살아갈수 있는 가장 알맞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연마되어 왔다. 사회의 신뢰수준을 측정하기위해 자주 상용되고 있는 질문을 예로들면 사람들에게 ‘ 모든 사람이 기회가 된다면 당신을 이용하려 들 것이다’라는 명제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물었다. 이때 물질적으로 불평등한 국가들과 지역들에서 신뢰수준이 상당히 낮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를 속여서 권력과 기회를 얻을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현대인간의 친분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선사시대에서도 지배적이었던 것이 바로 평등이다. 물질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연결하는 강력한 상황논리가 존재한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살인율과 폭력이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무시당하기보다 가치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사회적 배제나 열등하다는 평가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런 경험의 충격은 금방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당사자가 쓸데없이 민감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이후에도 개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에서 내세웠던 자유, 평등, 우애라는 요구를 내세웠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는 현대 시장 민주주의에서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와는 다르다. 자유는 왕, 봉건 지주, 지방지주 귀족들의 무자비한 권력에 종속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했다. 따라서 자유의 개념은 사회적 지위격차의 정도, 종속과 사회적 열등감 및 지배를 피하고자 하는 욕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한 때 자유의 땅이라 불렸던 미국이 오늘날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긴장으로 심각하게 오염 되었다는 점이다. 우애는 우리의 관심을 사회적 관계의 질로 돌린다. 우애는 사회연대의 가능성, 다시 말해 더 호의적이고 상호지지적인 사회관계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이야기 한다.

 

평등은 자유와 우애의 전제조건이다. 소득과 사회적 격차가 심하면 하층계급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비롯해 다양한 고통을 겪게 된다. 자유는 열등하게 취급받고 싶지 않다는 욕망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불평등으로 가장 심각하게 손상된다. 또한 불평등때문에 발생하는 위계적인 관계는 우정이나 공동체 생활을 불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평등은 우애의 필수요건'이기도 하다인간의 도덕적 가치와 일치하는 삶의 올바른 길이 있는 것처럼 '공평함과 평등'의 세계는 인류의 사회적 열망이 지향해 온 사라지지 않는 이상이었으며, 타인을 단순히 자신의 목적을 위해 착취하는 자연의 일부로 여기기보다 서로 존중하는 그런 세계였다. 언제부턴가 인류는 이런 사회적 가치들에 관한 직관적 통찰력을 잃어버렸다. 선진국에서 건강, 행복, 복지평균수준은 이제 1인당 국민소득에만 좌우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개별국가 내부에서 사회구성원들의 건강, 행복, 복지수준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1인당 GDP가 급속하게 성장했음에도 복지국가들의 관련지표들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훨씬 못하는 국가들에서는 행복지수가 경제성장과 함께 증가하지만 부유한 국가들에서 행복지수는 다시 완만해진다. 사회가 부유할수록 행복과 복지수준은 절대소득보다 상대소득과 사회적 지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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