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평등주의

인간이 본질적으로 평등주의적이거나 위계적인 것은 아니다. 선사시대와 그 이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은 가장 권위적이고, 전제적인 사회에서부터 매우 평등한 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사회체계를 경험해 왔다. 수렵채집인사이에서 사회적 위계질서가 없으며, 상호교환의 범위나 친족의 범위를 넘어서 자원을 공유한다. 특정 개인이 자원을 더 많이 차지하려 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의 저지나 저항으로 무산된다.  인류학자들 사이의 논쟁에서 중요한 점은수렵채집 시회가 얼마나 평등주의적이었나가 아니라,  왜 그 후 정착농업이 발전하면서 평등사회가 막을 내렸는가였다. 동물세계에서 약자는 아무리 굶주려도 강자가 배를 채울때까지 기다려야한다. 하지만 어떤 문헌에도 인류의 수렵 채집사회가 조금이라도 이와 비슷하게 작동했다는 기록은 없다.

 

여러 인류학자의 증거에 따르면 수렵채집사회는 평등주의적이었으며, 권력, 소유, 짝짓기에는 격차가 거의 없거나 아주 미미했다. 농경사회가 시작된 이후에 변한 것은 인간본성이 아니라, 인간본성이 작동하는 사회적 환경이었다. 수렵채집사회에서 사람들이 서로 물질을 공유할수 있었던 것은 이타주의 때문이라기보다 경계속의 공유때문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공정한 몫을 받게 되는지를 예의 주시했다. 가드너가 말하는 '순위이양증후군'이라는 것은 한동안 격리되어 있어서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었던 한 사회가 더 넓고 고등한 사회와 접촉하게 되었을 때 갑자기 자율성을 잃고 그 부속물로 전락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직장인의 건강을 연구하는 논문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업무에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건강이 나빠진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통제력을 갖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에 대한 자연적 제한보다는 사회적 제한과 관련있다.

 

일반적으로 동물사회에서 암컷과 수컷사이에 덩치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동물사회에 지배종속의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두개골의 크기로 태아가 출생이전에는 어느 정도의 기간을 산모의 태반에 머물렀는지 가늠할 수 있다.  또 학습이 사회생활에 중요해질수록 출생이후에 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기간이 길어진다. 이 때문에 여성은 점차 아이를 기르는 데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우월한 남성과 짝짓기 하는 것보다는 남녀가 1:1로 결합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남녀 한쌍이 짝을 이루는 결합 방식은 남성 지배체계로부터 평등주의로 발전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틀림없다. 무기와 지능이 개발 되면서, 신체의 크기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무기의 발명으로 한때 우월한 남성의 표상이었던 완력으로는 더는 안전을 보장하거나 우월함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농경사회에서 노동의 대가는 곡식을 심고 몇 달 동안 그것을 돌본 다음에야 비로소 결실을 얻을 수 있는 연기된 보상이다. 반면 수렵채집사회에서는 즉각적인 보상을 누리는데 사람들은 식량을 구하러 나간 날 바로 식량을 얻게 된다. 연기된 보상체계에서는 농사를 위해 사전에 막대한 노동력을 투입해야 될 뿐 아니라 식량저장고, 장비들을 마련하는데도 노동력이 필요하다. 즉각적인 보상체계와는 다르게 연기된 보상체계는 저장된 식량, 씨가 뿌려진 들판과 같이 자원을 사적으로 보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불평등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자원의 희소성에 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서열체계가 강한 자가 자원에 먼저 접근할 수 있는 체계다. 농경사회에서는 욕구가 즉각적으로 충족될 수가 없고, 사람들은 저장된 식량에 의존해야 하며 파종기와 추수기 사이에 식량이 부족할 가능성이 컸다. 농경사회의 발전과 산업화의 초기단계에 이르는 긴 역사의 대부분은 불평등을 강화하는 희소성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해 주지는 못햇다. 갈수록 인구밀도가 증가했기 때문에 인류는 땅과 땅에서 나오는 모든 자원을 더 많이 착취할 수 있는 치밀한 방법들을 개발해야 했다. 증가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끊임없이 땅을 경작해야 했고, 농지의 생산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공비료를 주거나 윤작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