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질서는 분명하게 계급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위계질서는 자원에 대한 접근과 권력의 불평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지배와 종속의 위계질서는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를 말하기 때문이다. 어떤 계급이 상대적으로 우월하고 다른 계급은 열등하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킬 때에만 문제가 될 것이다. 계급에 이런 사회적 심리적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불평등이다. 그리고 지배와 복종의 심리학을 유발하고, 양산하는 것도 바로 불평등이다. 사람들 사이에 상당한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계급을 구분할 수 없는 일종의 제도화된 시장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 지주와 소작인처럼 명확한 계급구분도 불가능 하다. 모든 사람은 피고용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직원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권한은 상층에도 있고 하층에도 있다. 최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그 분야의 직원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권한을 갖는다. 반면에 청소부중에서도 어떤 청소부들은 감독관 역할을 하며, 다른 청소부들을 고용하거나 해고할 권리를 갖는다. 계층적 편견과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 대한 차별과 속물근성,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의 문제, 인종적 편견, 일만 하는 기계처럼 느껴지는 경험, 개인적 야망과 주식시장의 이윤에 의해 굴러가는 세계, 기회의 불평등이라는 불합리함, 자기 아이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는 문화적, 교육적 전략, 우울, 폭력, 마약, 학습과 행동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모두 낯익은 모습들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계급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근대적 계급체계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 핵심은 불평등과 그것의 문화적 표식이다. 소득격차가 클수록 지위격차가 커지고 분업이 확대되며 편견과 차별, 우리와 그들의 구분, 우월감과 열등감이 심화된다. 시장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종교집단, 언어집단, 인종집단을 계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집단간 사이에 불평등이 끼여들때 그런 차이는 우월과 열등을 가르는 사회적 격차가 되어버린다. 한 집단은 우월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위를 누리는 반면, 다른 집단을 차별받고 열등하게 취급 받으며 긴장 속에서 살아게 된다. 이때 하층 집단은 존엄성이 무시당했고 부당하게 대우받는다고 느낀다. 육체노동자와 비육체 노동자 사이의 구분 역시 사회적인 차원의 구별이다. 겉으로 보이는 차이가 다양한 사회적 지위와 결부되고 또한 그것을 상징하게 되면, 그런 차이는 사회적으로 부과된 의미를 갖게된다. 겉모습의 차이가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될 때, 겉모습은 낙인이 되며 편견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들이 사회적 지위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편견이라는 강력한 마수에서 빠져나와 그저 차이로만 존재할 수 있다.
시데니우스와 프라토는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아랫사람에 대한 편견, 불평등과 위계질서에 대한 태도를 측정하기 위해 '사회적 지배 지향측도'(SDO: Social Dominance Orientation Scale)라고 불리는 심리평가 질문지를 만들었다. ‘흑인과 히스패닉이 낮은 임금을 받는 이유는 열악한 교육과 차별 때문이 아니라 게으르고 아둔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또한 ‘강력한 법과 질서 체계, 군사비 증액, 학교보다 감옥에 대한 지원비 증액’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사회조직들이 억압적 위계질서에서부터 평등주의적 호혜체계까지 다양할 때, 사람들은 어느 한쪽에서 최선의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한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달라지면, 인간의 반응도 이에 따라 민감하게 변한다. 생활수준의 물질적 차이는 지위의 차이이며, 개인의 능력차이로 이해된다. 따라서 부자들은 고귀하고 중요하며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며, 가난한 사람들은 거의 쓸모없는 인생 낙오자로 여겨진다. 생활수준의 차이는 문화적 차이로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우월과 열등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강화하면서, 사회적 관계에 서열이라는 색깔을 덧입힌다. 불평등이 커질수록 우리는 서로 돕는 협력의 전략에서 권력과 공격에 기반을 둔 경쟁의 전략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행복이 점점 개인의 물질적 성취에 따라 결정되고, 사회적 관계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듦에 따라 인간관계는 좀 더 자기 중심적이고 경쟁적으로 변한다. 사람들은 서로 신뢰하지 않고,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활동에서 멀어지며 공격적 성향이 보편화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1년에 1만파운드(약1880만원) 이하로 생활하는 가족은 2만파운드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가족보다 두배이상 자주 싸웠다. 부부갈등, 가정폭력, 산후 우울증, 아동의 행동장애, 아동의 코르티솔 수치에 관한 연구들은 모두 '가난한 가정일수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득격차가 커져서 상대적 빈곤이 심화되면, 더 많은 아동이 스트레스가 심한 가정환경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1987년 연설문을 살펴보면, 공산주의 체계를 여전히 개혁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사람들의 공적생활의 수준이 나빠지는 경향에 주목했다. 그는 중앙계획경제하에서 사회적 자본이 쇠퇴하는 이유를 ‘경제에 그리고 사회적 정신적인 영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사회를 좀먹는 요소들이 늘어나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었으며,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팽배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는 경제적 변화에 따른 사회적 자본의 쇠퇴이며, 여기서 경제적 변화란 개인주의가 급격히 증가하고, 소득 격차가 확대된 것을 말한다. 유능한 정부와 통치자들은 항상 소득분배와 사회통합이 서로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건전한 직관을 가지고 있다. 사회를 통합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부가 전략적으로 평등주의적 정책을 도입했던 사례들도 많다.
제2차 세계대전기간에 영국에서는 소득격차가 급격히 감소했다. 당시 영국정부는 전쟁의 부담을 국민이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부자에 대한 과세를 급격히 증가시켰고, 필수품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사치품에 세금을 부과했으며, 공정한 분배를 위해 대부분의 식료품과 물픔을 배급했다. 사회적 변화는 분명 경제적 변화에 뒤따라 일어난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거주하는 로세토라는 작은 마을도 불평등과 사회적 관계 사이의 인과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부여준다. 로세토주민들은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낮았다. 연구자들은 조사를 통해 '마을 공동체가 놀라만한 수준으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로세토에서는 부자와 무일푼인 사람을 옷차림과 행동으로 분간하기 어려웠다.
로세토에서는 주택이나 자가용 같은 살림살이들은 매우 소박하고 놀랄만큼 비슷했다. 로세토에서는 이웃을 이기려는 분위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로세토에서도 부에 엄연한 격차가 있었다. 하지만 부자가 자신의부유함을 과시 하거나,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처지가 좋지 않다고 느끼게 하는 행동은, 꼴사나운 일로 간주되었다. 물질적 부나 자기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로세토주민들은 과시와 신중함, 야심과 절제, 겸손과 위엄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로세토 공동체 내에서 소득불평등이 심화되자, 평등주의적 가치는 이내 불안과 긴장에 휩싸이게 된다. 이 사례는 평등하다는 현실보다 평등주의적인 사회풍토가 더 중요한지 모른다. 사회를 계층화 시키는 사회적 지배과정은 분명이 집단심리와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과정은 자신을 우월한 집단이나 열등한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 규정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사회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불평등은 우리의 사회성의 핵심을 건드린다.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의 문제는 외부적이고 비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구성되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돈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게 되면서 열등함과 우월함은 점차 시장과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에 따라 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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