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의 핵심은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적 관계와 건강 모두에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회적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을 짚어보고, 이런 민감성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개별인간에게 생물학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적 독성은 실제로 화학적 독성보다 더 위협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관심을 끌지는 못한다.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은 오염된 건물을 폐쇄하기보다 훨씬 어렵다. 일차적으로 개인 간의 건강격차는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정도가 달라서 생긴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질병에 자주 걸리는가이다. 군 의무대가 전쟁 사상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전쟁에서 사상자 수가 많거나, 적은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 군 의무대의 의료수준을 조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전쟁 자체의 성격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상자수를 결정하는 전쟁의 성격이란, 한 사회의 전반적인 건강수준을 결정하는 사회경제적 생활의 특성을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군의무대의 활동에 해당하는 사후적 의료서비스가 전혀 의미 없는 말은 아니다.
물질적 요인만이 아니라 심리사회적 요인들이 특정 집단 인구에서 특정한 병에 걸린 환자의 비율을 의미하는 이환율이나 사망률의 격차를 매우 정확히 설명해준다. 자기통제력의 부족, 우울증, 절망감, 적대감, 신뢰의 부족, 사회적 지지의 부족, 취약한 사회적 관계,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험, 가정 불화, 업무 스트레스, 노동강도에 미치지 못하는 사회적 물리적 대가, 근친의 사별, 비혼과 이혼상태, 고용주거 불안정 모두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물론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독특한 심리가 있다. 그러나 인간의 심리상태는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산물이며, 인간 모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 사회의 공통적인 관념, 그리고 자신의 감성적 심리적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이 최근 들어 학계가 심리적이라는 표현보다는 심리사회적 이라는 개념을 더 자주 사용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의 감정상태는 사실 사회적으로 유형화 되며, 개별적인 우연보다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회적 환경과 개별인간 사이의 어떤 관계들은 너무나 명백해 보인다. 만약 당신이 무일푼에 곧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르며, 빚을 지고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당신은 매우 불안해 할 것이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분명하다. 고용불안정은 외부적이고 물질적인 요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고용 불안정은 고용상태 자체가 아니라 고용상태가 불안한 데에서 오는 심리적 근심을 통해 건강을 악화시킨다. 대기오염, 감염성 미생물, 비타민 부족과 같은 문제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요소들은 건강을 직접적으로 악화시키는 물질적 요인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고용불안정이나 주거불안정은 오직 우리가 고용상태와 주거상태 때문에 불안을 느낄 때에만 영향을 미친다. 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이런 상황들로 말미암아 생기는 감정이라면, 이에 대한 해결책이 물질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요인들은 심리사회적 요인들로 분류되어야 한다. 특정한 물질적상태에 반응하는 인간의 심리적 상태가 불행, 우울, 불안정, 분노, 불안 가운데 어떤 형태를 띠든 간에 물질적 상태는 그런 스트레스를 만들어 낸 근본적인 원인이다.
인간의 정신상태는 분명히 개인별로 다르다. 하지만 개인의 정신상태는 외부세계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정신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며, 세계에서 우리 자신의 위치를 깨닫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문제는 현실세계에서 생활하는 인간들의 경험이며, 그런 경험들을 바꾸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실제 현실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는 생물학적 경로는 사회적 환경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경로 가운데 하나다. 건강상태는 이제 우리가 입으로 무엇을 먹고, 코로 무엇을 들어마시는지 혹은 몸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서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건강상태는 삶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과 감정에 따라서 좌우되는 심리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건강을 악화시키는 심리사회적 위험요소로 가장 많이 부각되고 있는 세가지 요인은 낮은 사회적 지위, 사회적으로 소외된 상태, 그리고 어렸을때 감정적, 사회적 발달이다. 마찬가지로 낮은 임금이나 실업같은 경제적 요인들은 우리가 예상하는바 처럼 건강을 직접적으로 악화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요소들은 임금이 적고 직업이 없어서 사회적으로 조롱받고, 멸시당하고 있다는 느낌 혹은 분노를 느끼거나 무시당해서 수치스러운 느낌처럼 심리사회적 스트레스를 중간경로로 해서 건강을 간접적으로 악화시킨다.
최근들어 흡연, 음주, 운동부족 등의 요인이 건강을 심각하게 악화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담배를 자주 피우며, 왜 여가가 있을 때도 운동하기 어려운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 이면에는 심리사회적 원인이 숨어있다. 건강을 위해서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들을 가리고, 지켜 나가는 것은 종종 극기에 가까운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건강을 위한 이러한 결단은 우리가 만족스럽고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때 더 잘 발휘될 수 있다. 기분이 침체되어 술이나 담배처럼 위로를 주는 대체물이 필요할 때, 이런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현대인들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신의 일을 통제할만한 권력과 자원이 없을 때, 어떤 일 때문에 열등감이나 적대감을 느끼고 우울해질 때, 자신을 지지해 주는 친구가 없을 때 우리의 건강은 쉽게 나빠진다. 우리가 사회적 경험을 하거나 사회적 관계를 맺는데서 물질적 차원만이 아니라, 심리적 차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불안, 우울, 지지의 결핍, 모멸감은 건강을 악화시키는 것을 떠나서, 그 자체로 인간이 느끼는 주관적인 고통이다.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으면 당장 입이 즐거울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건강에 안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피하려고 한다. 스트레스는 그것이 건강에 미치는 객관적인 파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고통스러운 주관적 경험이다. 상대적 박탈감처럼 심리사회적 요인들 때문에 생긴 여러 현상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다양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사회문제들에는 폭력, 인종적 계층적 편견, 알코올과 기타 약물에 대한 의존, 10대임신, 학령기 아동들의 낮은 학업 성취도, 아동기의 행동적 문제 등 헤아릴수 없이 많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물질적 요인들만으로는 인간의 심리사회적 행복을 향상 시킬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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