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첫번째 범주는 사회의 위계질서에서 한 인간이 갖는 사회적 지위와 위치에 관한 것이다. 인구학자 마샬 살린스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빈곤은 단지 재화의 양이 적다는 사실만을 말하지 않는다. 빈곤은 수단과 목적의 관계도 아니다. 무엇보다 빈곤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빈곤은 사회적 지위다..... 지금까지 인류의 문명이 사람들을 계급을 통해 부당하게 구별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빈곤 또한 ..... 인류의 문명과 함께 점차발달하고 있다’ 만약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이 나쁜 이유가 전적으로 그곳의 물질적 생활수준에 낮기 때문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깨끗한 물과 다양한 영양소처럼 기본적인 재화를 충분히 공급해 줌으로써 건강상태는 눈에 띄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같이 가장 부유한 국가의 평균 기대수명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낮게 나타났다. 심지어 GDP수준이 미국의 잘반에 해당하는 그리스보다 미국의 평균 기대수명이 낮았다.
매우 가난한 국가들은 부유해지면 건강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부유한 국가들 사이에서는 생활수준이 높아진다 해서 건강수준도 따라서 높아지지 않았다. 한 국가 내부에서는 부유한 계층일수록 건강이 좋았고, 가난한 계층일수록 건강이 나빴다.부유한 국가 내부에서는 소득과 건강이 긴밀한 연관이 있지만, 부유한 국가들 사이에서는 소득과 건강에 긴밀한 연관이 없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장 그럴듯한 헤석은 절대적 소득수준과 상대적 소득수준의 차이에서 찾을수 있다. 국제적 비교에서 비교의 대상이 된 생활수준은 절대적 소득수준이었다. 반면 각 국가 내부에서 문제가 되는 생활수준은 상대적 소득수준이다. 한 개인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비교하면서 인지되는 사회적 지위와 위치이다.
사회내부에서 생활수준과 건강수준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려면, 먼저 생활수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소득계층에 따른 내구성 소비재 소유실태를 조사한 영국정부의 자료를 보면 놀랍게도 영국 국민은 상당히 많은 다양한 재화를 가지고 있다. 최하위 20%를 조사했을 때도 조사 대상자 가운데 80%가 컬러 TV, 냉장고, VCR, 전자렌지와 같은 내구성 소비재들을 가지고 있었다. 빈곤층의 건강이 나쁜 이유를 이러한 제품들이 건강을 해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낮은 물질적 수준에 덧씌워진 사회적 낙인 때문이다. 2류의 재화들은 당신의 인생은 B급이라고 말해준다. 인간사회에서 소득이나 부와 같은 물질적 수준의 차이와 사회적 지위, 권력, 특권과 같은 사회적 수준의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어김없이 가난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항상 부자이다. 그래서 부와 빈곤은 지위를 가늠하게 해주는 중요한 기준이다.
캐롤 쉬빌리는 짧은 꼬리원숭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어떤 생리효과를 일으키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쉬빌리가 발견한 사회적 지위가 낮은 원숭이가 겪는 여러 생리현상들, 동맥경화증이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축적되는 현상, 복부비만과 고혈압의 전조인 인슐린 저항성의 증가현상이 그것이다. 실험적 조건에서는 이 결과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물질적 격차가 없었기 때문에, 이 결과는 오로지 사회적 지위 격차 때문에 생긴 변화였다. 서열이 낮아진 짧은 꼬리원숭이가 스트레스로 건강이 나빠졌다는 사실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개코원숭이를 상대로 주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ㅡ 기본수치를 측정했다. 측정결과 서열이 높은 동물보다 낮은 동물이 코르티솔을 더 많이 분비하고 있으며, 더 높은 스트레스레 시딜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코르티솔의 수치의 차이는 건강 격차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도시 내부에서 사회적 계급에 따른 건강 격차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동물의 서열체계과 인간의 계층은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둘은 사회심리학자 폴 길버트의 지적처럼 모두 희소자원에 접근하는 권리를 얻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사회적 지배체제이다. 따라서 힘이 센자가 가장 부자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자신의 일에 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상태도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자 건강불평등의 원인이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일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아마도 다른 누군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이용하여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할 때 자기 통제력을 잃었다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강한 자기 통제력은 사회적 관계에서의 자율성을 의미한다. 한 인간이 자신의 일에 어느정도 통제력을 가질수 있는지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 흑인남성들은 코스타리카 남성들보다 실질 소득이 4배나 높았지만, 수명은 9년 짧았다. 미국 흑인의 건강이 더 나쁜 이유는 물질적 수준이 절대적으로 낮아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보다는 교육적 차별, 인종주의, 그리고 빈곤 지역에 살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등, 빈곤이 가져오는 심리사회적 효과가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었다. 미국내 히스패닉은 대부분 빈곤층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보다 학력도 더 낮다. 이들의 건강 수준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집단이 건강수준도 낮다는 경향에 반하고 있다. 히스패닉의 역설이라고 한다. 히스패닉의 역설의 존재 이유는 그들이 주로 자신들만의 거주지역에 모여 그들만의 언어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히스패닉은 사회적 지위가 낮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열등감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이리는 커다란 사회안에 있는 작은 사회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관련 연구자들에게 잘 알려진 사례는 '로세토'라고 불리는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이탈리아인 사회이다. 로세토 주민들은 이탈리아어를 사용했던 시기에 이들의 식단이나 생활습관이 좋지 않았음에도, 이들 건강 수준은 주변도시들과 비교할 때 월등히 높았다. 그러나 로세토의 후세대들이 영어를 사용하게 되고, 미국 사회에 완전히 편입하게 됨으로써 건강상태는 점차 악화되었다. 낮은 사회적 지위로 인한 악영향들은 공동체적 결속력이 강한지 약한지, 구성원들 사이의 동질감이 있는지 멊는지에 따라서, 자신이 비교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그리고 스스로 가난한 미국인으로 여기는지, 아니면 부유한 멕시코인으로 여기는지에 따라서 혹은 놓여있는 상황에 따라서 충분히 희석될 수 있다. 물질적 생활수준은 다를 수 있지만,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최소화 하려고 노력했던 히스패닉이나 이탈리아 공동체 사례는 건강수준이 물리적 수준보다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원칙을 보여주는 보기드문 예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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