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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해야 건강하다. (리처드 윌킨슨,

불평등: 더 적대적이고 덜 친화적인 사회

이 장에서 제시된 사례들은 빈곤층과 부유층의 소득격차가 다른 사회보다 낮은 사회, 즉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적 관계의 질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사로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친절하든, 적대적이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든, 예의가 바르든, 난폭하든, 믿음직스럽든 의심스럽든, 지역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든, 그렇지 않든 간이 이런 차이는 보통 선천적인 유전인자 때문이거나 어릴적 경험을 통해 형성된 성격차 정도로 치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지역 사람들이 다른지역 사람들보다 더 친절하고 여유가 있으며 덜 폭력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어떤 공간이 친근하고 편안하고 안전할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더 좋아한다. 만약 한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친밀한이유를 묻는다면, 대체로 사람들은 각 사회의 문화적 전통이 다르다고 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화적 전통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이 어디서 비롯되었으며, 더 친밀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무 대답도 해주지 못한다.  초기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평등을 지향했다.

 

그들은 평등이 인간의 선천적인 사회성을 더욱 풍성하게 발현할수 있도록 도울뿐 아니라,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결정적 가치라고 믿었다. 사회통합의 정도, 서로 신뢰하는 정도, 그리고 사람들이 공동체적 삶이 관여하는 정도는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다.  최근에는 정치적 입장이 정반대인 사람들 조차 모두 사회적 관계의 질을 개선하거나, 공동체적 삶을 회복하는 데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자본이란 개념은 빈곤의 원인 자체가 아니라, 상대적 빈곤이 가져온 결과에만 눈을 돌리게 한다는 것이다. 극빈지역에서 사회적 자본수준이 낮게 나타났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우파 정치인들은 빈곤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자원은 더 많은 소득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믿고 싶어 할지 모른다. 소득불평등보다 사회적 자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소득불평등이 사회적 자본을 피폐하게 만든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형편 없는 사회적자본도, 불평등이 치러야 하는 사회적비용이다. 심각한 불평등을 겪고 있는 사회는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 최근 들어 사회적 자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된 이유는, 바로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사회적 관계의 질과 공동체의 삶이 약화되었다.

 

알렉시스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는 공동체적 삶이 갖는 장점에 주목한 가장 초기 연구다. 토크빌은 평등을 시민공동체 생활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보았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모든 인간이 ...  그들의 직업, 부, 출신에 따라서 다시 돌이킬수 없는 방식으로 서열을 부여받게 되있을 때.... 각 계급들은 자신들 만의 정서, 의견, 권리, 도덕적 관행, 생존양식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 계급의 구성원들은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과 어떤 공통점도 공유하지 않게 된다.  그들 사이에서 공유할 만한 사고방식이나 동질의식이 없다.  만약 그들이 인류라는 똑같은 종에 속해 있다고 믿었다면.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 계급이 거의 평등해서 모든 사람이 비슷한 사고방식과 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개인들은 단번에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헤아릴수 있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 하려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상대방이 이방인이나 원수라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상상은 곧바로 상대방의 입장에 서게 할 수 있다. 평등은 상대방의 개인적인 일들에 동정심을 느끼거나, 동료의 육체가 찢겨나갈 자신도 그만큼 고통을 느끼게 해준다.“

 

1,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정부는 전쟁의 부담을 사회구성원 전체가 똑같이 짊어지고 있다는 인식과 국민화합을 진작 시키고자 몇몇 사회정책들을 고안해 냈다. 리처드 티트머스는 '전쟁수행을 위해 일반 대중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면 우선 불평등을 줄여야 하며, 또한 사회계층 피라미드의 높이를 낮춰야 한다' 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소득격차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만 아니라, 실업자들 사이에서도 급격하게 사라졌다. 반면 소득세는 매우 큰폭으로 올랐다. 미국의 주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이치로 가와치와 브루스 케네디는 ' 평등한 주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더욱 신뢰한다 '는 사실을 밝혀냈다. 가외치와 케네디는 미국의 일반 사회 조사자료를 이용해 '소득격차가 큰 곳 일수록 사람들은 기회만 있다면, 타인들은 나를 이용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가장 평등한 주들에서는 오직 10-15%으 인구만이 타인을 믿을수 없다고 답했다. 반면에 불평한 주들에서 그 비율은 35-40% 까지 증가했다. 로버트 퍼트남은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얻은 자료에서 나타난 '신뢰 수준과 각 국가의 불평등 사이에 강력한 연관관계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소득격차가 가장 크고 신뢰도가 가장 낮은 브라질이 놓여 있고, 다른 한 쪽은 소득격차가 유독 낮고 신뢰도가 높은 스웨덴이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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