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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해야 건강하다. (리처드 윌킨슨,

풍요로운 사회

가장 본질적인 수준에서 말하자면, 인류도 다른 종들 처럼 희소자원을 둘러싼 경쟁 때문에 생기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같은 종의 구성원들은 서로 비슷한 욕구가 있고, 따라서 생존을 위해 각자가 필요로 하는 재화도 대체로 같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같은종 사이에서는 언제나 갈등이 잠재되어 있다.  스펙트럼의 극단은 권력과 강압에 기초한 위계체계로 이 체계에서 가장 좋은 재화는 가장 힘이 센 개체에게 돌아가고, 사회적 관계는 권력의 분화에 따라 질서를 잡는다. 또 다른 극단은 공평과 개인의 필요를 인정하는 평등주의적 해결책으로 채집과 수렵을 주로 하던 선사시대의 인간들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이 방식을 사용했다. 권력과 공포에서 비롯된 관계와 사회적 의무,평등, 협력에서 비롯된 관계는 서로 대조를 이룬다. 한 사회의 불평등 정도는 해당 사회가 이런 연속선 위에서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사회적 관계의 유형은 지배의 관계와 친화의 관계로 나눌수 있다. 지배의 관계는 서로 경쟁자가 되어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고, 위계질서 속에서 상대를 갈취하는 관계이다. 반대로 친화의 관계는 서로 원조, 우정, 협력의 대상이 되는 관계를 말한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회적 관계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사회적 전략을 구사한다. 불평등은 더 자기 중심적이고 덜 친화적이며, 반사회적이고 스트레스를 더 받게 하고, 폭력수준을 높이며 공동체적 결속을 약화 시키고, 건강을 악화 시키는 사회전략들을 부추긴다. 한편 평등한 사회는 친화적이며, 덜 폭력적이고 상호지지적이며, 포용적이고, 좀더 나은 건강 상태를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성격은 위 두가지 특성의 혼합으로 이루어지는데, 혼합의 비율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매우 유동적이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뉜다. 2,3,4장에서는 우리는 불평등이 인간과 사회에 어떻게 해를 가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나머지 장에서는 이런 관계들을 연결하는 인과적 경로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2장에서는 소득 불평등이 클수록 사회적 관계의 질이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살펴볼 것이다. 불평등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더 큰 적대감을 갖고 있으며,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지 않고 서로 신뢰하지 않는다. 3장에서는 건강 상태를 악화시키고, 인간을 빨리 죽게 만드는 심리사회적 요소를 살펴볼 것이다.  심리사회적 요인들은 직접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기보다 생물학적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면서 건강을 간접적으로 악화시킨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첫번째 위험요소는 낮은 사회적 지위이다. 멸시당하는 느낌, 사회적 위계서열에서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느낌, 종속감과 낮은 통제력처럼 사회적 지위가 낮아서 생기는 모든 사회적 감정을 포함한다. 두번째 위험한 요소는 빈약한 사회적 관계이다. 친구가 없고 독신생활을 하며, 사회적 연결망이 허술하고 참여하는 공동체가 없는 상황을 말한다. 세 번째 위험요소는 초기 아동기 경험이다. 임신기간 산모가 받는 스트레스도 초기 아동기 경험에 포함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대우받고 존중 받으며 친구를 사귀고, 초기 아동기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 이런 경험이 성인기에 자존감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인간을 스트레스에 취악하게 만드는 위와 같은 세가지 위험 요소들은 겉보기에는 사사로운 개인적 특성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이 어떤 특정 사회에서 더 문제가 되는데는 그럴만한 사회적 원인이 있다. 4장에서는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망률이 높다는 증거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소득 격차가 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이 더 나쁘다는 사실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사회의 하층계급은 더욱 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질도 매우 안좋다.

 

5장에서는 폭력과 자기존중감의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폭력사건은 종종 자신이 멸시 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발생한다. 이 사실은 불평등과 낮은 사회적 지위가 우리의 존엄성과 자존심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히는지 보여준다.  6장은 어떤 사회적 작용이 사회적 거리감, 속물근성, 그리고 위계서열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부추기는지 살펴본다. 불평등과 사회적 관계의 질 사이에서 인과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7장에서는 불평등하고 위계서열이 강한 사회는 여성들을 억압하고 남성 중심적이며, 가부장적이기 쉽다. 불평등한 사회는 반사회적이며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다. 서열이 중시되는 영장류사회에서도 지배적인 동물에게 모욕당했던 동물은 자신보다 약하고 어린 동물에게 이른바,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억압한 사람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상에 분노를 표현하는 행동인, 전위된 공격행동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할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확인받고자 하는 우열사회가 낳은폐단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이것을 '자전거타기 반응'이라고 불렀다. 권위적 사회구조에서는 사람들은 마치 자전거를 탈때의 자세처럼 윗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반면, 아랫사람에게 발로 차서 넘어뜨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왜 여성이나 종교적, 인종적 소수자가 더 심한 치별을 당하는지 설명해 준다. 당신은 양육강식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하여 항상 뒤통수를 조심해야 하며, 힘이 센 원숭이를 피해 다녀야 하고, 갖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언제든 싸울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선사시대 처럼 평등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사회적 전략이 필요하다. 이 사회는 사회적 관계가 성숙해 있으며 호혜와 협력을 통해 상호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고히 하고자 선물교환이나 식량공유와 같은 제도를 사용한다. 

 

8장에서는 인간이 평등하거나 혹은 불평등한 환경을 살 때 익히게 되는 행동들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초기 아동기에는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프로그램화 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위계질서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 메커니즘을 추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9장에서는 사회적 환경의 중요한 세가지 가치, 자유, 평등, 우애와 직결된다는 것을 알아볼 것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에 자유는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봉건귀족과 지주들의 독재에 굴종하거나 종속되지 않은 해방상태를 의미했다. 원래 자유는 서열제도가 양산해낸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는 정신이었다. 우애는 폭력, 신뢰, 우정, 그리고 공동체 삶에 참여하는 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상이다. 평등은 자유와 우애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불평등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시당했거나 멸시당했다고 느낀다. 심각한 물질적 불평등은 다양한 심리적 문제들을 만들어 낸다. 불평등의 증가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심각한 장애물이다. 불평등은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경쟁을 부추기며, 사람들에게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고도한 소비에 집착하도록 압박을 가한다. 이는 계속 솟구치는 경제 성장, 자원고갈, 환경오염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