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태를 좌우하는 두번째 심리사회적 요소는 친분관계이다. 활발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일수록 나중에 질병에 걸리거나, 빨리 사망할 확률이 낮다. 셸던 코헨은 18세에서 55세 사이의 건강한 자원자 276명에게 다섯 종류의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있다. 콧물을 투여했다. 실험 대상자가 지닌 사회적 연결망의 범위를 조사했다. 사회적 연결망이 넓은 사람과 비교했을때, 연결망이 좁은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는 경우가 네배 이상 높았다. 그리고 취약한 인간관계와 불운한 결혼생활이 건강을 해친다는 증거들도 발표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건강을 좌우하는 세번째 심리사회적 요인은 어린시절의 정서적 발달이다. 장기적인 코호트 연구들을 보면, 전체 생애에 걸쳐서 연속적인 불이익을 겪게 되면 생애 후기에 병에 걸리기 쉽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인다. (코호트연구: 질병이 발생하기전에 특정한 질병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동일한 통계인자를 가진 집단을 장기적으로 관찰해 그런 위험요소가 그 결과를 일으키는지를 보는 전향적 연구이다.)
선진국에서 신생아의 몸무게에 차이가 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변인은 산모의 영양상태가 아니라, 임신 기간중 산모가 받는 스트레스였다. 임신중 스트레스를 받은 산모들은 코르티솔 수치가 높았는데, 이때 태아도 코르티솔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 신생아는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의 스트레스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태아기에 산모가 받는 스트레스는 갓난 아기나 초기 아동기에 자녀가 받는 스트레스와 연속선상에 있다. 심리학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사회적 정서적 발달에 출생 전후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취약한 애착관계, 가정불화, 부모의 상실은 아동의 심리적 발달만이 아니라, 신체의 건강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러 연구를 통해 우리는 한 인간의 건강수준이 성인기에 스스로 획득한 사회적 계급과는 별개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사회적 계급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어린시절에 불행했던 사람에게는 외적통제 소재( 자신의 성공과 실패 원인을 파악할 때, 그 원인을 자기의 통제권 밖인 외부로 돌리는 경향을 일컫는다 )와 신경과민이 특징적으로 나타났으며,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태도도 부족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낮은 사회적 지위, 빈약한 친분관계, 어린시절의 불안정한 정서발달이라는 세가지 심리사회적 위험요소는 부유한 국가에서 건강을 악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요인들이다. 만약 전체 인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을 파악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면, 우리는 독극물에 노출된 경우처럼 특수한 사례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요인들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적대감, 우울증, 무력감, 불안, 그리고 존중감의 결핍처럼 세가지 심리사회적 위험요소 때문에 생기는 심리상태들은 우리의 생리적 건강을 피폐하게 만든다. 심리사회적 위험요인은 스트레스가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만약 만성스트레스의 세가지 주요 원인을 조금만 더 들여다본다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불안이다. 생애초기부터 시작된 정서적 불안은 낮은 사회적 지위가 가져오는 불안과 연결되어 있다. 낮은 사회적 지위와 어린시절 받았던 스트레스는 모두 코르티솔의 기본 수치를 높이며, 불안정, 부적응에 대한 공포. 열등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처럼 비슷한 어휘로 표현되곤 한다. 뿐만 아니라, 어린시절의 불안정은 낮은 사회적 지위가 가져오는 불안정을 악화시키며. 낮은 사회적 지위는 개별 인간을 불안정한 상태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
친분관계의 효과도 이런 논의와 일맥 상통한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진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자기불신과 불안감이 활개를 치게 된다. 세가지 심리사회적 요인들은 만성불안을 일으키는 사회적 원인의 집결체이다. 불안감은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경험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 핵심에는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평가하는 성찰적 존재이며. 사회적 동물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며, 타인은 우리가 자신을 인식하고, 경험하게 하는 거울이 된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아내고자 끊임없이 주변을 관찰한다. 이런 행위는 인간의사회적 행동과 상호작용을 이끄는 핵심동인이 되어왔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적대감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하며, 그들의 이해와 신뢰, 협력을 구하려고 간청하거나, 어떤 말에 놀라거나 당황하고, 기뻐하고 혼란스러워하는지 눈치를 살핀다. 우리는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스스로 성장하고 사회화 된다.
학습과정은 다른 사람을 따라하거나, 그들의 반응을 통해 자신이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알게 되면서 이루어진다. 타인은 우리를 평가하고 판단한다. 그들은 우리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고,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으며,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 존중하거나 무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은 우리의 안정과 안전, 사회화와 학습에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인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존중받고 있는 느낌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존중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일상적 차원에서 말하면, 그것은 우리가 한 일를 좋게 평가받을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당신의 농담에 즐겁게 웃거나, 당신의 도움이나 조언 그리고 감정적인 지지를 고마워할 때 느끼는 기쁨처럼 말이다. 이 모든 경우에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타인의 욕구들과 결부해서 자신을 이해한다. 타인에게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는 선사시대에 인류가 집단내에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방식이기도 했다. 타인이 유용하다고 평가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집단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지킬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득을 함께 나누고, 추방당하거나 희생당할 위험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집단의 일원으로 계속 남아있게 해주는 보험과 같은 것이었다. 이에 역학적 연구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는 태도가 현대사회에서 만성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한때 인간을 한평생을 꽤 안정적이고, 좁은 공동체에서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치며 살아야 한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경험하고, 자각하는 성찰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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