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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저항과 체념사이에

문화적 노화

우리는 '어제'라는 모델은 창피하며 우스꽝스럽고,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픈 부끄러움에 지나지 않을까?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동시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한 것, 곧 통속은 언제나 어제 유행으로 체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계라는 것은 정적으로 머물러 있는게 아니라, 끊임없는 혁신의 과정을 겪는다.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표시질서가 넣어져 그 의미가 바뀐다. 비평가는 표시정리자로 의미를 부여하거나, 받아들이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비평가를 상대로 결코 이길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살며 겪은 현상은 곧 , 지워버릴 수 없는 그만의 특수함이다. 그 현상은 개인적 체계 내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표시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으로 어떻게 비평가에게 그게 아니라고, 내가 직접 겪어본 바로는 당시 전혀 다른 의미였다고 설득할 수 있으랴. 자신이 개인체계, 그 인생의 향기를 오랜 세월동안 지녀온 탓에 그의 개인적 체취가 되어버린 그 체계로부터 빠져 나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노력만 한다면, 오늘의 질서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표시를 전부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배울 수 있다.

 

인간의 문화적 실존은 그가 살아가는 사회적 실존의 한 형식이다. 그가 사회생활을 하는 폭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그가 누리는 문화생활이 어떤가도 결정된다. 사회적으로 맺는 관계가 지니는 성격에 따라, 인간은 그가 현재 어떤 모습을 가지는지 정해지는 셈이다. 몸이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살덩이라는 질량이 되어버리고 힘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여기서 문화적 감성으로 이해된 정신역시 마찬가지이다. 정신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둔중하고 무거워지는 나머지, 새로운 표시의 도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문화적 노화, 감성과 수용의지의 퇴행, 매일 새롭게 등장하는 요구를 바라보는 피로감과 체념은 생리적인 노화 과정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편차가 심하다. 물론 시대를 앞서 간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제나 시대에 앞선 음악을 선보인 어떤 위대한 음악가는 동시에 영화예술면에서는 정신이 체 따라가지 못하는 지진아이기도 하다.

 

문화적으로 늙어가는 사람은 교만함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하더라도, 늘 시간의 수레바퀴 아래 깔린 패배감과 소심함에 젖어 풀길 없는 암호처럼 낯설게만 보이는 세상에 낙담할 따름이다. 모든 체계는 그 자신의 고유한 체계가 가진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아마도 그가 죽고 언젠가 그의 시스템이 변형된 형식으로 위대하게 부활하리라는 것 등은 늙어가는 인간에게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매일 새로워 지는 시대로부터, 자신은 버려지고 만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생겨나기가 무섭게 대중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약어는 심지어 초등학생의 입에까지 거침없이 오르내리며, 문화적으로 늙어가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 대화에 끼어보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단 한번도 끼어들지 못한다.

 

어떤 화제거리가 생겨나고 대중으로 퍼져 나가며, 다시금 시들해 지는 과정이 갈수록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느낌은, 노인을 완전히 낙담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수고로운 배움이 허망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라는 게 극단적으로 드러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매순간 새로운 면모를 과시하며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인 상위체계, 곧 시대정신은 몇십년에 걸쳐 그 근본을 다져온 개인체계를 갈수록 멀리 떨어뜨리며 알아볼수 조차 없게 만든다는 확인은 서글프지 않을 수 없다그저 뒤처져 헛된 자부심만 가지고 모든 것을 부정하는 노인이라는 비난은 정말 듣고 싶지 않다. 문화적인 개인체계의 핵심은 젊은 시절에 형성된다. 개인는 부단한 역동성으로 끊임없이 혁신되는 상위 체계에 제압 당한다.  상위체계가 최신 정보수단으로 한껏 과시를 일삼으면, 늙어가는 사람은 동시대의 문화가 부담스러운 나머지 자아의 상실로 고통 받는다. 역사적이라는 말은 교육을 통해 전승傳承 되며 신성시 된다는 뜻이다. 전승되고 전수傳受 된 교육가치는 개인체계안에서 대개 사소한 비중을 가질 뿐이다. 모든 상위체계는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행히도 역사적 체계를 품는다. 당시에 모든 상위체계는 어제와 그제의 체계를 파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