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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저항과 체념사이에

세상 이해, 그 모순에 저항하기

젊은 사람들을 다시는 따라 잡을 수 없다. 그동안 정신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려 시도해 왔다. 오늘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저 이런저런 착각에만 빠져 살았다. 모든 것은 시간과 더불어 허망하게 사라진다는 말은 지당한 진리이다.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는 태도보다 더 낫지도 더 나쁘지도 않은, 하나마나한 말이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이 나를 사로잡는다. 영원함은 바람 한점 없는 잔잔 바다 처럼 보인다. 영원함을 들먹이는 것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간에 저항해서도 안되며, 시간의 꽁무니를 따라다녀서도 안 된다. 이게 진리다. 물론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빠져나와 영원함을 붙들 출구가 없다는 것도 진리다. 그 영원함은 없음 곧 무無이기 때문이다. 몇십년 동안 나를 채워오고 붙들어준 모든 것은 바로 나의 시절에 나날의 욕구를 충족 시켰으며, 시간의 수레바퀴가 무자비하게 깔고 지나갔다 하더라도,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았다.

 

나는 내일 다시 말해 10분뒤, 1년뒤, 10년뒤, 아무리 길게 잡아도 15년뒤에는 더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나를 묶고 있던 사슬을 끊는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로부터 풀려난 자유, 내가 쟁취하려는 자유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텅빈, 내가 더는 살 수 없는 공간, 오로지 고개만 빳빳이 세우는 자유의 공간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공포에 따른 행동일 뿐이다. 묶임을 묶음으로 느끼지 않고, 자유가 더는 자유가 아닌 곳에서 자욱한 안개의 영원에게만 자신을 맞추며, 빠져 나갈수 없이 지레 체념하면서도 이를 깨닫지도 못하는 것,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막아줄 묘약이라고는 없는 몸의 쇠락과 문화적 노화는 더 나쁠수 없는 메시지, 곧 종말의 선포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죽어간다'로 읽어야 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뭔가 생겨나기는 하리라. 늙어가는 사람은 아무 희망도 없이, 매일 새로운 체계를 해독하려는 싸움터로 나가야만 한다. 그는 세계를 더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이해하는 세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강제는, 과거에 사로잡히는 것 만큼이나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는 그저 누군가일 뿐이다. 그리고 늙어 죽어가는 모든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영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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