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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왜 짧은가? (세네카, 천병희

평정심

현인은 자심감이 넘쳐 운명에 다가가기를 망설이지 않으며, 결코 운명 앞에서 물러서지도 않을 것이네. 그는 운명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네. 그는 하인과 재산과 관직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과 눈과 손, 그리고 인생을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 나아가 자신의 인격까지 무상한 것으로 간주하며, 마치 모든 것이 자신에게 대여된 것처럼 살다가 돌려달라면 불평없이 모두 기꺼이 돌려줄 각오가 되어있네. 그러나 자신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고해서 그는 자신을 가치없는 존재로 여기지 않으며, 자신의 모든 의무를 꼼꼼하고 세심하게 수행한다네. 언제 돌려달라고 명령을 받든지, 그는 운명과 말다툼 하지않고 ‘내가 소유하고 향유했던 것에 대해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소. 나는 높은 임대료를 주고 그대의 재산을 돌보아 왔지만, 그대가 그렇게 명령하니 돌려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물러가겠소. 그대의 재산 가운데 어떤 것을 계속해서 내가 갖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것을 돌볼 것이오. 그러나 그대의 생각이 다르다면 나는 은식기와 은화와 집과 하인을 돌려주고, 그대의 처분에 맡길 것이오’라고 말할 것이네.

 

죽음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목숨을 싸구려 물건 처럼 여겨야 할 것이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죽음의 원인 되네.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이 점을 명심하고 남의 불행이 모두 자기에게도 자기에게도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무장할 것이네. 위험이 닥친 다음에 위험을 견뎌내려고 무장해도 이미 너무 늦다네. 궁핍과 기근과 걸식이 뒤따르지 않은 부가 어디 있다 말인가? 이런 것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세. 옥좌에 있느냐 옥좌 아래 부복하느냐는 간발의 차이에 불과하네. 모든 상황은 바뀔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은 자네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알아두게나.

 

우리는 분주히 돌아다니는 것을 멈추어야 하네. 많은 사람들은 남의 일에 개입하고, 늘 바쁜듯한 인상을 준다네. 그들은 할 일을 찾아 정처없이 돌아다니고, 의도한 일이 아니라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한다네. 그들이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은 인사를 해도 아는 체도 않을 사람에게 아침 문후를 드리기 위해서거나, 알지도 못할 사람의 장례식이나, 어떤 송사꾼의 송사나 여러번 결혼한 여인의 약혼식에 참석하거나, 또는 어떤 사람의 가마를 뒤따라가며 거들어주기 위해서라네. 그리고 쓸데없는 일로 지쳐 집으로 돌아오면 그들은 자신이 왜 외출했으며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다음 날이면 똑같은 경로를 따라 돌아다닐 것이네. 어떤 사물의 외관이 그들을 자극하지만 그들의 현혹된 마음은 그것의 무가치함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이라네.

 

볼일이 없는 데도 해가 뜨자마자 외출하여 수많은 문을 두드리지만 허탕을 치네. 그들은 수위에게나 제이름을 알려줄 뿐이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퇴짜를 맞는다네. 그러나 정작 그가 집에서 가장 만나보기 어려운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네. 데모크리토스는 이렇게 말했네 ‘ 조용히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많은 일에 개입하지 말지어다’  많은 일에 개입하는 사람은 가끔 자신을 운명의 힘에 맡기기도 한다네. 현인은 인간의 운명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수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라네. 또한 우리는 융통성이 있어야 하네. 그래야만 정해진 계획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운명이 인도하는 대로 상황에 적응하고, 계획이나 처지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테니까 말일세. 아무것도 바꿀수 없는 것과 아무것도 참을 수 없는 것은 모두 마음의 평정에는 해가 되네. 우리의 마음은 모두 외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네. 우리의 마음은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을 좋아하고, 자기를 존중하고, 남의 것을 되도록 멀리하고, 자신에게 헌신적이어야 하네.

 

가끔 우리는 인류에 대한 증오심에 사로잡힌다네. 우리는 대중의 모든 악덕을 가증스런 것이 아니라 가소로운 것으로 보도록 훈련해야 하네. 우리는 모든 것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고 견뎌야 하네. 인생은 우는 것보다는 웃는 것이 더 인간다운 것이네. 웃는 사람이 우는 사람보다 인류에게 더 많은 기여를 하네. 자신의 품성을 가리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꾸밈없는 순박함은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내포하고 있는가! 하지만 이런 생활방식도 모든 사람에게 노출된다면 멸시당할 위험이 있네. 가까워진 것이면 무엇이든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세. 순박하게 사는 것과 아무렇게나 사는 것은 천양지차가 아니겠는가? 부류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는 잘 정돈된 것을 흐트러뜨리고 격정을 다시 깨우고, 아직 완치되지  못한 정신적 상처를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네. 하지만 고독과 교제는 서로 혼합되고, 교체되어야 하네. 고독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을 그리워하게 만들고, 교제는 우리 자신을 그리워하게 만드네이것은 서로 치료제가 되어주네. 군중에 대한 증오심은 고독이 치유해 주고, 고독에 대한 염증은 군중이 치유해 주니까 말일세.

 

놀이와 오락에 자연스러운 즐거움이 내포되어 있지 많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그토록 바라지는 않을걸세. 하지만 그것들을 지나치게 즐기게 되면, 마음은 진지함과 힘을 모두 잃게될 것이네. 우리는 마음을 너그럽게 대하고, 가끔은 휴식을 취하게 해주어야 하네. 우리는 밖에 나가 걸어야 하네. 탁트인 하늘 아래서 신선한 공기를 마셔 마음이 기운을 차리고, 고양될 수 있도록 말일세. 때로는 산책과 여행과 장소의 변화와 사교와 좀 세다 싶은 음주가 기운을 차리게 해줄 것이네. 가끔 취하도록 마셔도 좋네. 이러한 것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방법들이네.  하지만 마음이 비틀거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헌신적으로 보살피지 않으면, 어떠한 방법도 허약한 존재를 보호할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는 점도 명심해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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