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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왜 짧은가? (세네카, 천병희

우정, 절약

사람을 고를 떼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그들이 과연 우리 인생의 일부를 바칠만한 가치가 있느냐, 우리가 시간을 바치는 것이 그들에게 과연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네.  우리의 봉사를 당연한 것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으니 말일세. 아테르도로스가 말하기를 '가도 전혀 고마운줄 모르는 사람의 집에 식사하러 가지 않겠다'고 했네. 호사스러움으로 손님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진수성찬을 명예의 선물로 여기는 자들의 초대에는 더더욱 응하러 가지 않았네. 믿음직 하고 상냥한 우정만큼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도 없네. 안심하고 비밀을 털어놓을 수도 있고, 혼자 알고 있을 때보다 둘이 알고 있어도 조금도 더 두렵지 않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가? 그들과의 대화는 자네의 근심을 들어주고, 그들의 조언은 자네의 계획을 촉진시키고 그들의 쾌활함은 자네의 슬픔을 쫓아주고, 그들의 얼굴만 보아도 반가우니 말일세. 그러나 우리는 가능한 한 욕망으로 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을 친구로 삼아야 하네. 악덕은 슬그머니 다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감염시킴으로써 해코지를 하기 때문이네.

 

죽음, 질병, 굥포, 욕구, 고통처럼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다른 모든 것에 비해 돈이 가져다 주는 불행이 훨씬 심각하네. 우리는 가지지 못한 고통이 잃는 고통보다 훨씬 덜하리라고 생각해야 하네그러면 잃을 것이 더 적은 가난이 덜 괴로울 것이네. 부자가 손실을 더 의연하게 참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착각이네. 부자와 가난한 자, 둘다 돈에 들러붙어 있는 탓에 통증 없이는 돈에서 떨어질 수 없으니 고통을 받을 수 밖에.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돈을 잃는 것보다는 벌지 않는 것이 더 견딜만하고 더 수월하네. 그래서 자네는 행운에게 버림받은 사람들보다 행운이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들이 더 즐거워 하는 것을 보게 될 걸세다오게네스는 하나밖에 없는 노예가 도망쳤다는 보고를 들으면서, 그를 도로 데려오는 것을 별로 보람 있는 일로 여기지 않았네. 내가 보기에 그의 뜻은 아마 이런 뜻인 것 같네. ‘운명이여, 네 할 일이나 하라. 너는 디오게네스에게는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내 노예가 달아났다고? 그가 달아남으로써 실제로 해방된 것은 나란 말이야’  하인들도 입혀주고 먹여주기를 요구하네. 자기자신 외에는 누구에게도 무엇을 빚지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디오게네스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 같은 사람은 운명의 타격에 덜 노출 되도록 우리의 재물을 줄이기라도 해야 하네.

 

돈은 가난으로 영락零落하지도 않고, 가난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정도가 가장 이상적 금액이네우리가 먼저 절약을 몸에 익혔다면 그런 금액으로도 만족할 것이네. 절약 없이는 어떤 재물이 와도 충분하지 않고, 절약하면 어떤 재물로도 충분하네. 검소하게 생활하면 가난 자체가 부로 변할 수도 있네. 우리는 과시하기를 멀리하고 사물을 장식적 가치보다는 쓸모에 따라 평가하는 버릇을 들이도록 해야 하네. 먹을 것은 허기를 달래게 하고, 마실 것은 갈증을 멎게 하고. 우리는 자제력을 높이고, 사치를 줄이고, 명예욕을 억제하고, 분노를 달래고, 가난을 편견없이 바라보고, 많은 사람이 부끄러이 여기는 검약을 실천하고,  자연적 욕구를 싸게 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 충족시키고, 고삐 풀린 희망과 미래에만 열중해 있는 마음을 족쇄를 채워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하네. 우리는 부를 행운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서 구하도록 해야 하네.

 

인생의 다양하고 음험한 재앙을 다 물리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래서 돛을 활짝 펴는 사람은 폭풍을 만나기 마련이라네. 운명의 화살을 빗나가게 하려면 활동 범위를 줄여야 하네. 학문연구에 드는 비용도 자유민이라면 가장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적정해야 하네. 셀 수 없이 많은 서책과 그 주인이 평생동안 표제조차 다 읽을 수 없는 수많은 장서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연이 베푸는 호의

자네가 인생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개인적인 사정이나 공적인 사정으로 풀수도 끊을 수도 없는 올가미에 걸려들었다고 가정해보세. 올가미에 걸린 사람은 처음에는 거추장스런 올가미를 간신히 견디지만 일단 그것을 화내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나면 필연은 용감하게 견디는 법을 가르치고 습관은 쉬이 견디는 법을 가르친다는 점을 명심하게나. 자연은 우리가 고난을 당하도록 태어난 줄 알고는 불쾌한 일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습관을 만들어 내어 가장 어려운 일에도 금새 친숙해지도록 만들었네. 우리 모두 운명에 매여 있네. 어떤 사람은 높은 관직에 묶여 있고 어떤 사람은 부에 묶여 있네. 어떤 사람은 고귀한 가문으로 고통받고 어떤 사람은 미천한 출신으로 고통 받는다네. 어떤 사람은 이방인의 지배에 머리 숙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배에 머리 숙인다네. 어떤 사람은 추방되어 한곳에 붙들려 있고 어떤 사란은 사제가 되어 한 곳에 붙들려 있다네. 인생은 모두 종살이일세. 사람은 자신의 처지에 친숙해지고 되도록 불평을 적게하고 거기에 유리한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꼭 붙잡아야하네. 담담한 마음으로 위안을 찾지 못할만큼 괴로운 것은 아무거도 없네. 욕망을 완전히 가둘 수는 없으니까,

 

이룰 수 없거나 이루기 어려운 것들은 내버려두고 가까이 있거나 이루어질 성싶은 것들을 따라다니되, 모든 것은 똑같이 하찮고 겉보기만 다를 뿐 속으로는 똑같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걸세. 우리는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시기하지 말아야 하네. 우뚝 솟아있는 곳이 낭떠러지일 수도 있으니까. 사실 떨어지지 않고는 내려올 수 없는 높은 곳에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어야 하는 사람도 많다네. 하지만 그들도 자신들의 가장 큰 짐은 자신들이 어쩔 수 없이 남에게 짐이 되어야 하고 그곳에 못박혀 있음을 증언해야 하는 것이네. 우리의 출세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마음의 동요에서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네. 먼저 멈출 것인지를 우연에 맡길 것이 아니라 그러기 훨씬 전에 우리 스스로 멈춰 서야 할 것이네. 그래야만 어떤 욕망이 마음을 자극한다하더라도 한정되어 있는 까닭에 무한하고 불확실한 것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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