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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왜 짧은가? (세네카, 천병희

인생의 의무

철학을 위해 시간을 내는 사람들만이 여가를 즐기지요. 암흑에서 광명으로 꺼내진 가장 아름다운 것들에게로 인도되고 있는 것이오. 우리는 모든 세기를 갈 수 있지요.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토론할 수 있고 물러나 조용히 살 수도 있지요. 우리가 이 짧고 덧없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우리를 더 나은 것과 맺어주는 것을 온 마음으로 지향해서는 안될 까닭이 어디 있겠소? 임무를 수행하느라 분주히 돌아다니며, 자신과 남들을 못살게 구는 자들은 마음껏 광분하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조바심 치며 기다리게 해놓고 바쁘다는 핑계로 급히 지나칠까요? 그들은 그대의 세월을 마모시키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세월을 그대에게 보태줄 것이오. 그대가 공경한다고 해서 비용이 들지도 않을 것이요. 가장 사소한 일과 가장 중대한 일에 조언을 구할 수도 있고, 모욕감을 주지 않으면서 진실을 들려주고 칭찬해주며,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데 본보기가 될 친구를 갖게 될 것이오.

 

명예로운 직위든, 기념비든 명예욕이 공적인 결정으로 명령하거나, 건축물로 세우는 것은 무엇이나 금세 무너지며, 세월을 살면서 파괴되고 소멸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혜가 축성한 것은 세월도 해할 수가 없지요.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를 소홀히 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자들의 인생은 짧고 불안하지요. 그들은 가련하게도 종착지에 이르러서야 그 동안 내내 하는 일 없이 분주하기만 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되지요그들에게는 향락 조차 불편하고, 온갖 두려움으로 불안하기만 하지요. 그리하여 가장 신이 날 때에도 불안한 생각을 하지요. 이것이 얼마나 오래갈까?  이러한 감정에 사로잡혀 왕들은 자신의 권세를 비탄했던 것이지요.  큰 행운을 기뻐하기는 커녕 언젠가는 다가올 종말을 겁냈던 것이지요.  그들에게는 즐거움 조차도 불안하기 그지 없으니 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즐거움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고, 공연히 생겨났다가 공연히 스러지기 때문이지요.

 

제 아무리 많은 재물도 불안하며, 최고의 행복도 전혀 믿을 것이 못 되지요. 행복을 지키려면 또 다른 행복이 필요하고, 이루어진 기도를 위해 또 다른 기도를 해야지요. 우연히 얻은 것은 무엇이든 불안하니까요. 높이 오른 것일수록 떨어지기가 더 쉬운 법이지요.그들은 원하는 것을 힘들게 얻고, 얻은 것을 불안하게 소유하고 있지요.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시간에 대해서는 조금도 계산하지 않아요. 새 일거리가 옛 일거리를 대신하고 희망이 희망을, 야심이 야심을 대신하지요. 그들은 비참한 처지를 끝내려 하지 않고 그 원인만 바꾸지요, 행복해지든, 비참해지든 불안해 할 이유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요. 인생은 이 일거리에서 저 일거리로 떠밀려 갈 것이오. 그리하여 여가는 즐겨보지 못한 소망으로만 남게 될 것이오.

 

그대는 지금까지 정력적으로 처리했던 것들보다 더 큰 과제를 발견하게 될 것인데, 그 과제는 그대가 물러나 마음이 평온해야만 처리할 수 있는 것이지요. 백성은 배가 고프면 이성적인 말을 해도 듣지 않고 공정하게 대해도 누그러지지 않으며 간청해도 굽히지 않아요. 분주한 자들은 하나같이 딱하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 일에 분주한 것이 아니라, 남의 잠에 맞춰 자기 잠을 조절하고, 남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고, 가장 자유스런 것인 사랑과 증오에서 남의 지시를 받는 자들의 처지가 가장 딱하지요. 그들이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고 싶으면 '인생에서 얼마나 적은 부분이 자신의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하시오. 그대는 어떤 사람이 전부터 자주 관복을 입고 다니거나, 그의 이름이 광장에서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더라도 부러워하지 마시오. 그것은 인생을 대가로 주고 산 것이지요.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이름이 불리게 하려고, 그는 자신의 모든 시간를 희생하게 될 것이오. 더러는 노력으로 야망의 정상에 오르기도전에 초장에 인생을 떠나기도 할 것이오. 또 더러는 고령에 젊은이인양 새로이 희망찬 계획을 세우며, 무리한 사업을 크게 벌이다가 자신이 허약해졌음을 발견하게 되겠지요.

 

하는 일보다는 생활방식에 지칠대로 지쳐 직무를 하다가 쓰러지는 자는 망신스럽겠지요. 어떤 사람이 장부를 훑어보다가 죽자, 오래 기다린 상속인이 안도의 미소를 짓는 광경도 망신스럽기는 마찬가지요.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 오래까지 지속되고, 그들은 신체의 허약함과 싸우게 되지요. 그들이 노년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니라, 노년이 그들을 물러나게하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법보다도 자신으로부터 여가를 얻기가 더 어렵지요. 서로 뺏고 빼앗기고 서로의 휴식을 망쳐놓고, 서로 불행하게 만드는 사이에 그들의 인생은 소득도 없이 즐거움도 없이, 정신적 향상도 없이 지나가지요. 아무도 죽음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저마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에 희망을 걸며, 사후의 일- 거대한 분묘, 공공건물의 헌납, 화려한 장례식- 까지 대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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