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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치매(만프레드 슈피처 지음

유치원에서 노트북을 (2)

어린이는 아이스크림을 보면 당연히 먹고 싶어한다. 이런 반응은 일종의 반사작용으로서 이성적인 설득으로 억제할 수 없다. 성인은 아이스크림을 보면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지를 상상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건강이나 미모 등 자신의 몸에 관한 생각도 작용하기 시작한다. 뇌가 발달하는 동안에는 복잡한 뇌 모듈에 갈수록 많은 경험이 저장되고, 의미있는 데이터가 분석되어 행동을 통제하게 됨을 명심하라. 이러한 행동은 언제나 목표와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고, 자기 통제되며 단순한 반사작용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진다.  출생후 뇌형성은 두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뇌 모듈 사이의 신속한 연결이 이루어진다. 둘째 이 모듈에서의 학습과정을 통해 점점 더 복잡한 흔적들이 생겨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뇌의 구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년기의 예민한 특정기간, 학습단계 혹은 발달과정이 지나고 나면 여러 측면에서 더 이상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페스탈로치는 '학습한다는 것은 가슴과 뇌 그리고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실제성이 중요한 것일까? 그리고 왜 두손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까?

 

대뇌피질의 3분의 1은 보는 기능을, 다른 3분의 1은 운동의 계획과 실행을 담당하고 있다. 나머지 3분의 1은 그 밖의 다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뇌의 모듈간 연결은 양방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한 감각부위만 복잡한 감각부위에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운동부위도 복잡한 운동부위에 가르침을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의 경우에는 세상과의 지각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세상과의 실제적인 교류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뇌발달을 통해 초기의 단순한 학습과정이 훗날의 보다 높은 정신적 능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저차원에서 분명하고 날카롭고, 확실한 흔적이 생성되지 않은 사람은, 고차원에서 추상적인 사고를 학습하기 어렵다.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얼굴들로만 트레이닝을 할 경우 유럽인에게는 일본인이 모두 똑같이 보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의 인체는 출생때부터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 이 세상을 정복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나 미디어에 의해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체험하는 경험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린이들은 머리보다 먼저 손가락으로 수를 헤아리기 시작한다. 어린이들은 손가락을 이용해 수를 헤아림으로써 촉각과 운동을 위해 뇌의 양쪽 모두를 이용하게 된다. 이때 뇌의 양쪽 절반 사이에 정보교류가 이어져야만 하고 여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활동이 뇌를 변화 시키고,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반적인 숫자들이 우리의 뇌에서 형성된다. 우리가 손가락을 얼마나 잘 이용할 수 있는지 어린시절에 손가락을 이용할 기회가 얼마나 많았는지가 숫자를 다루는 능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단순히 눈앞에 제시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 학습할 때만 학습한 뇌의 개념적 구조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추론해 낼 수 있다. 즉 무언가를 학습하는 방법이 학습한 내용을 뇌에 저장하도록 하는 방법도 규정한다는 것이다. 마우스만 클릭해서 세상을 알아내려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 대해 훨씬 더 나쁘게, 훨씬 더 천천히 생각하게 된다는 것 또한 분명해진다.

 

마우스 클릭은 결국 눈앞에 지시된 것을 보는 것 뿐이며, 어떤 사안을 행위를 통해 접근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세상을 터득하기 시작한 사람은 반드시 실제 세상에 맞닥뜨려야 한다. 내가 어떤 사안을 컴퓨터로 배운다면, 이 사안은 내가 직접 행위를 통해 접한 것보다 나의 뇌에 훨씬 더 약하게 기억될 것이다. 읽고 쓰는 것은 유년기에 체험하는 문자언어적 문명화 과정에서 습득하게 되는 핵심 문화기술에 속한다. 배우기와 읽기, 쓰기의 신경생물학적 원리를 토대로 훌륭하게 실시되는 읽기와 쓰기 수업은 언어처리를 담당하는 뇌 부위의 변화로 인한 읽기 및 정서법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며, 개별적인 교육 일대기의 심각한 문제까지 막아주기도 한다. 자녀들이 분필과 칠판, 연필, 종이를 이용해 글쓰기를 배우도록 할 것인지, 컴퓨터의 키보드를 통해 배우도록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디지털 필기구가 갈수록 확산되면서 어린이들이 컴퓨터를 통해 문자언어를 처음 접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그만큼 책을 읽고 종이에 직접 글을 쓰는 일이 드물어지고 있다. 키보드로 치는 것보다 손으로 직접 글을 쓰면서 연습한 것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연필로 쓰면서 알파벳을 배우는 것이 운동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를 더욱 활성화 한다. 읽기에도 도움이 되는 이러한 운동학적인 뇌 흔적은 키보드 이용시에는 만들어지지 않는데, 이는 키보드를 치는 행동이 알파벳의 형태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성인의 뇌는 한창 발달하고 있는 어린이의 뇌와 기본적으로 다르다. 어린이는 성인보다 훨씬 빨리 학습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어린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그래서 세상에 빨리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인은 어린이보다 훨씬 더 천천히 배우는 것이며, 당연히 학습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 뇌의 3분의1은 몸을 움직이도록 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다시말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위하도록 즉,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세상에 적극 개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손으로 걷거나 기어오르는 다른 영장류와는 달리 인간의 손은 섬세한 도구로서 완전히 새로운 역할을 하는 데에 쓰일 수가 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유년기에 집중적인 미세운동 훈련을 받아야만 한다. 손은 구체적인 개별 사안의 학습에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손은 일반적인 지식의 습득은 물론 숫자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의 습득에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