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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치매(만프레드 슈피처 지음

유치원에서 노트북을 (1)

성인이 되어가면 나타나는 학습속도의 감소는 치매 때문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의미있는 적응과정의 결과이고 따라서 지극히 정상이다. 걷기나 말하기, 올바르게 행동하기 또는 무엇을 배우든지, 이것은 우리 뇌에 있어 미지의 가치를 개개의 경험에 근거하여 추측 평가해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로봇에게는 사람이 정확한 수치를 입력할 수 있다. 그러나 아기는 프로그래밍 할 수 없다. 아기는 스스로를 프로그래밍 한다.  스스로 일어서려 시도하고, 넘어지려고 할 경우 아기의 뇌가 허리와 엉덩이, 다리 근육으로 자극을 보내 넘어지는 것에 대한 반작용을 유발한다. 학습할 때에는 몇 걸음 떼는 것으로 시작해, 세부적인 부분은 작은 걸음으로 다듬는다. 때문에 어린이들은 신속하게 배우고, 좀 더 나이 많은 사람은 천천히 배운다. 골프공을 칠 때는 계속해서 동일하게 타격하는 대신 부정확하더라도 목표지점을 향해 힘껏 치고, 그런 다음 점점 더 정확한 샷으로 조금씩 근접시킨다. 골프경기를 학습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학습을 하면서 공을 치는 방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처음에는 치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공은 어디로 날아갈 것이고, 타격을 한 후에 공이 홀컵에 가까운지 아니면 멀어졌는지 확신이 올 것이다. 공을 계속해서 조심스레 1-2미터씩 치기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천개의 학습과제를 동시에 처리할 경우, 아주 간단한 전략을 추구하면 된다. 일단은 개별경험을 무조건 많이 학습해 진실에 가능한 한 신속하게 근접한 다음, 이보다 보폭이 짧은 잰걸음으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더 세상을 알고 있다. 노인들은 산전수전 다 겪어서 모르는게 없다고들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든 조건들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많은 분야에서 안정적인 조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들은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주변의 가치들을 평생토록 다시 평가하고, 또 그동안 필요하지 않았던 능력들을 학습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성인은 어린아이와는 다르게 학습한다. 즉 과거에 이미 학습한 정보들에 새로운 것을 접목시키는 것이다. 어린이는 흔적과 그 내적구조를 형성해감으로써 새로운 내용을 학습한다. 이에 반해 성인은 기존의 구조들에 접속해 연결하는 방식으로 학습한다.

 

신생아의 뇌는 신경세포와 그 연결섬유가 이미 존재하고, 또 출생 후 수적인 면에서 거의 증가하지 않는 데도 성인의 뇌에 비하면, 크기와 무게가 4분의1밖에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뇌만큼 커지는 지방성분이다. 미엘린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지방으로서 슈반세포와 함께 신경섬유를 외투처럼 감싸고 있다. 신경섬유의 이 외투는 자극이 신경섬유를 따라 더 이상 천천히 걸어가지 않고, 빨리 뛰어 가도록 작용한다. 뇌는 모듈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신경섬유의 외투는 보다 빠른 신경자극을 가능하게 한다. 모듈 사이의 신속한 교류는 자극을 빨리 전달해 주는 신속한 통로를 전제로 하며, 따라서 연결섬유의 속도가 느린 모듈은 정보처리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뇌에 있는 느린 신경섬유 연결체는 죽은 전화통신선과 마찬가지이다.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기능도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1차적인 감각 및 운동담당 부위가 빠른 속도의 섬유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 부위들은 신호 처리를 담당하는 곳으로서 외부세계로부터 직접 자극을 받거나(듣기, 보기, 만지기) 근육의 운동에 영향을 준다. 이로써 유아는 생애 최초의 경험들을 할 수가 있게 된다. 그래서 아기의 발을 꼬집어면 발이 움츠러든다. 그러나 정보는 아직 그다지 깊이 처리되지 못한다. 즉 다른 모듈로 신속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나중에야 비로소 다른 모듈로 연결되는 섬유의 속도가 빨라지고 사춘기 동안에 혹은 사춘기가 지나 성장이 끝날 무렵에야 비로소 전두엽과 두정엽의 마지막 모듈과의 연결이 속도 빠른 섬유들로 이루어지게 된다. 유아의 경우에는 전달속도가 빠른 섬유와 연결되어 있는 부위가 거의 없다. 훌륭한 교사는 우리가 학습할 때 쉽고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도록 한다. 우리가 그것을 학습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조금 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지고, 그 과제도 학습하고 나면 다시 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진다. 뇌가 일단은 단순한 구조만을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단순한 것만 학습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아기들과 대화할 때는 의성어나 과장된 언어 멜로디를 사용한다. 왜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없는데도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일상에서의 교사를 ‘성숙하는 뇌’가 대신하기 때문이다.

 

뇌는 음성정보의 주파수부터 먼저 학습한다. 여기에서 주파수지도가 만들어지고, 다시 시간적으로 변화하는 주파수 샘플들(음성)로 이루어진 지도에 다시 음성들(음절, 단어)의 조합체가 만들어진다. 뇌가 지금 성숙하고 있고, 또 이와 동시에 정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뇌는 올바른 순서를 배울수 있다. 만약 당신이 지금의 뇌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라면, 아마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약 250만개에 이르는 인풋섬유들(감각기관, 체표면, 인체 내부)이 뇌와 연결되어 있고, 거기에서 나오는 약150만개의 아웃풋섬유가 반응기기관에 닿아 있다. 인풋섬유는 일단 단순한 대뇌피질 모듈에 당도하는데, 유아의 경우 이 신호는 아웃풋측의 단순부위에 직접 전달된다. 성장하는 동안 인풋영역과 아웃풋영역에서는 각각 보다 상위부위로의 연결이 성숙하게 되어, 인풋정보로부터 보다 복잡한 것들까지 점차 더 많이 추출해내거나, 좀 더 복잡한 아웃풋으로 송출시킬 수 있게 된다. 유아는 간단하게 말해 그저 반응만 할 수 있다. 반사적인 행동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