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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전쟁 (하랄트 벨처 , 윤종석 옮

과거의 살인2

베트남 전쟁의 프레임안에서 미군병사들은 민간인들에게 여러번 대량학살을 감행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이 미 라이마을 학살인데, 여기서는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 여자들 그리고 고령자들이 희생되었다.  이것은 베트콩의 빨치산 전투술에 대처할 수 없었다는 사실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종종 이러한 불확실한 적에 의해 느껴진 위협감정은 미군병사들 전체에 해당하며, 그리고 포괄적이면서도 혼란스러운 위협은 통제력 상실과 방향감각 상실의 강력한 감정을 환기 시키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때 나타나는 환각현상은 직접 전투에 투입되었던 병사들에게만 국한 되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전쟁이 파국으로 치닫고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이를수록 미국의 군사, 정치지도부에도 비합리적인 현실관이 나타났는데, 그런 관점은 베트콩전사들이 모두 죽어야 군사적 우위의 순간이 빨리 올것이라 생각한 것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근본에 깔려있는 갈등의 원인들은 여러측면에서 심리학적 차원의 갈등이다. 즉 우월에 관한 환상이 여기서는 체면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광적인 불안감으로 더 가중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표현하는 4류국가인 베트남 같은 나라에게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맹신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대규모 폭력과 민족살해에 대한 연구에서 오늘날까지도 심각한 상호몰이해 때문에 사람들이 이웃을 공격하거나 심지어 죽인다고 한다. 비록 그 이웃들이 이웃을 평화로운 시기에는 특별히 사랑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그런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장 필립 렘츠마가 묘사했듯이, 이웃관계가 폭력의 근원일 수는 있어도 결코 폭력을 막는 장벽일 수는 없다. 위기사태시 극단적 폭력행위들로 귀결수 있다. 위기 사태시 누가 우리이고, 누가 그들인지,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확정짓는 기능들이 있다.

 

폭력 자체는 경계선 설정을 현실화 시킨다. 공격 이후에는 누가 현재 우리 편이고, 누가 과거 그들 편이었는지 분명하다. 극단적인 폭력 상황에서 위협은 결과 자체에서 누가 누구에게 소속되느냐를 정의한다.  폭력의 고조 상태는 1991년부터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났는데, 유고사태의 특징은 과거 티토라는 카리스마의 통치자 아래 하나의 연방에서 서로 다른 인종들이 안정되고, 아무 문제없이 지내는 이웃들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유고연방에 속했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분리 독립을 승인했던 독일 외무장관 한스 디트리히 겐셔의 치명적인 실수가 유고연방 공화국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켰는데,  세르비아의 주도권 아래 하나의 유고공화국을 건설하려 했던 세르비아인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이로써 방해받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급진성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정치가들도 재임중 자신들의 낡은 신념들을 넘어서는 그런 것들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 이런 낡은 신념들이 그들의 지적자산이고, 그런 자산들을 그들은 취임전에 이미 취득했고, 재임중에 사용한다. 그러나 정치가, 기업가,  과학자 혹은 의사들만이 그들이 오랫동안 지녀왔고,  종종 성공적이었던 그런 모델들과 처방들을 고수한 것은 아니다.  비록 이런 모델들과 처방들의 적용조건들이 완전히 바뀌고 있고, 종종 재앙적인 결과들을 가져오고 있음에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지금 선호되고 장려된 국가 형성의 지배적인 모델은 시민적 유형의 민족국가다.  그러나 붕괴의 상황에서 완전한 불투명 속에서 그리고,  긴급한 행위가 불요한 상황에서 하나의 새로운 민족국가는 흔히 인종적 경계설정을 통해서만 구상되곤 하는데,  다른 공동체적 요인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기 때문이다변회된 현실들은 이런 현실들을 형성시켜 왔던 그런 사람들도 변화시킨다.  이런 과정은 국가사회주의의 지도적 엘리트들과 국가사회주의적  급진화에서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변화과정 들에서 종종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정상적이고 예외적인지, 무엇이 예측 가능하고 무엇이 예측되지 않는가에 관해 자신들의 지각방식들과 변화되는 현실들과 더불어 변형되고 있음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주위환경들과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규모 폭력과 인종청소를 위한 선택들은 분명히 역사의 진행에서 우발적으로 생긴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민주화의 어두운 측면이며, 민주화는 바로 그런 사건들 위에서 형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청소와 대규모 학살에 이르는 길은 결코 어떤 마스터플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의도 되지 않았던 행위의 결과로써 발생했다는 것이 결코 드물지 않은 일이다. 만약 19세기와 인종청소들과 민족학살들이 현대화의 엔진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그리고 많은 사실들이 또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면, 세계화 과정이 앞으로 동반하게 될 사회 변화도 똑같이 치명적인 폭력을 낳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점점 사회들이 생존공간의 변화, 체제변환 혹은 다른 국가들의 지원확보의 필요성 등의 이유 때문에 불안정한 상태로 빠져들어 간다면,  폭력적 형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개연성도 불가피하게 증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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