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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이성( 리처드 래저러스, 버니

분노2

분노의 극적인 플롯은 나 또는 나의 것에 대한 모욕적인 불쾌한 언행이다우리가 모욕을 당했을 상처받은 에고가 복구될 수 있도록, 그 모욕에 보복하려는 내장된 충동을 가지고 있다정의와 법과 규칙 없는 세상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커다란 위협이 된다.  분노를 자극하는 상황들이 다양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미묘하거나 약하거나 모호한 자극이 우리를 화나게 하느냐, 아니냐는 자극 자체보다는 자극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약하거나 미묘한 자극이 존재하는 모호한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불쾌해 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불쾌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자극을 받아 분노까지 한다.  이걸 보면 마나 쉽게 자극을 받는가, 분노가 얼마나 강한가는 자극을 받는 사람과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노가 공격적인 태도로 표현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과 분노 자체에 대처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한 심리적 과제이다. 때때로 우리보다 힘센 사람들, 예를들어 고용주, 감독, 선생, 경찰같은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직접 나타내는 것을 피하려고 일부러 위장할 수도 있다.

 

분노를 표현하는 위험을 피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분노의 전치轉置이다. 즉 우리가 두려워하는 힘이 센 사람들을 겨냥하지 않고, 대신 위협적이지 않는 다른 사람 쪽으로 분노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이런 전치의 가장 슬픈특징들 중 하나가 속죄양 만들기이다.억압의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위협당하거나, 신체적으로 학대 당하는 사람들이 무력한 자식들에게 비슷한 학대를 가하는 것이다. 짐승들이 지배를 위한 투쟁에서 더 힘이 센 상대에게 패배할 경우, 위계질서상 그들보다 약한 짐승을 공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상대방의 지원을 잃을 위험은 피하면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토라짐'이다.  토라진 사람은 자신의 보호자에 대한 더 세찬 공격이 재난을 야기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우리는 또 불의를 목격함으로써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이 저지른 불의, 그리고 그것이 자극하는 죄책감이나 수치심에 대처하는 한가지 방법은 우리가 한 일에 방어적이 되는 것이다그럴 경우 부정과 위선적인 독선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밝혀질때, 더욱 격렬하게 부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죄책감을, 그 죄를 비난하는 사람에 대한 공격으로 전환한다.

 

분노의 문제에 대처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그것이 공격으로 표현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다.  분노 자체가 공격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화가 났을때 공격하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때로는 억제하기가 어렵다. 심리학자 캐럴태브리스는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반드시 심리적 또는 신체적 해를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옳다. 요즘에는 표현되지 않는 감정은 보일러 안의 증기처럼 쌓이기 때문에 반드시 방출되어야 한다는 낡은 관점이 대체로 신용을 잃고 있는 셈이다.  만일 분노가 억제되고 또 이후에 다른 추가 자극들에 의해 불이 붙지 않는다면, 분노는 아무런 해도 주지않고 점차 흩어져버릴 것이다. 분노가 공격으로 표현되는 것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분노가 인간관계에 미치는 결과 즉, 상대방이 분노에 반응하는 방식이 피해를 준다. 우리가 분노를 표현했는데 상대방이 아무런 보복없이 받아들이고,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 우리를 달래주려고 한다해 보자. 이것은 아무런 해가 없다. 그러나 만일 분노의 표현이 인간관계에 독이 된다면 그것은 장기적으로 중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다.

 

분노의 표현을 억제하는 것이 분노 자체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분노가 일시적으로 흩어진다해도 다음에 자극이 있으면, 다시 분노가 발생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분노를 일으킨 자극을 재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재평가는 분노를 완전히 제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감정에 대한 대처 역시 우리가 일상 활동에서 끌어내는 의미에 기초를 두고있다. 분노와 공격이 어떻게 통제 되는가 또는 통제 가능한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그들의 에고에 위협이 되는 것들에 대처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프로이드는 분노를 가장 문제가 많은 두 개의 본능적 충동 가운데 하나로 보았다. (하나는 섹스)사실 역사를 살펴본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고문하고,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약탈하는 행위들을 얼마나 쉽게 합리화하는지를 보면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아닌 동물의 경우 그들에게 먹이를 위한 것이 아니면, 심각한 공격은 드물다고 한다. 분노를 비롯한 모든 감정에서 중심적인 것은 사건들에 부여되는 개인적 의미이다. 이 개인적 의미가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인가, 그리고 그 감정에 얼마나 잘 대처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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