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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이성( 리처드 래저러스, 버니

불안, 공포

불안/공포, 죄책감, 수치심은 실존적인 감정들이다. 이 감정들이 기초를 두고있는 위협들이 우리의 존재, 세상에서의 위치, 삶과 죽음, 삶의 질에 대한 의미나 개념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삶의 경험과 문화의 가치들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런 의미들을 구성해 왔다불안과 공포에서는 그 의미가 개인적 안전, 개인으로서 정체성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죄책감에서는 그 의미가 도덕적 잘못에 대한 것이다수치심에서는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이상에 따라 행동하지 못한 것과 관련된다.  죄책감과 수치심이 비슷한 것은 둘다 개인적 실패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경험하려면 자신을 평가할 내적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죄책감에서는 그것을 양심이라 부른다. 수치심에서는 그것을 자아 이상이라고부른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런 두가지 용어 대신 '초자아'라는 말을 사용한다. 죄책감과 수치심을 불안의 하위 범주로 여길 수도 있다. 도덕적 규범을 어길 때는 죄책감-불안감을 경험하며, 개인적 이상에 따라 행동하지 못할 때는 수치심-불안을 느낀다.

 

 한 대학원생이 어려운 사회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기 위한 효과적이고 통제된 방식은 많은 지식을 갖추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의미에 주의를 기울이고,  부드럽고 적절하게 대꾸 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주요 목표는 사회적 상황을 장악하고, 통제력을 갖춘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다. 관심과 존중의 결핍이 느껴질때 불안을 느꼈다. 불안발작을 일으키는 세가지 공통된 특징은  첫째 구체적인 자극이 불안을 일으키는 과정이며  둘째 특정한 상황에서 개인적인의미가 불안에 특별히 취약한 상태를 만들어 내는 과정,  셋째 위협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불안이 악화되는 과정이다되풀이하여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심각한 의심을 품게 될수도 있음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이런 의심을 억누르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이런 의심 때문에 자신의 자원을 넘어서는 요구에 부딪칠때 위협을 느낀다.  그리고 대처하려는 노력이 실패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우리 모두는 불안을 통제하기 하기 위해 다양한 대처전략을 사용한다.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위협 원인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마음에 기록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당사자는 그 상황이 위협적 이라고 느끼고 불안한 느낌을 받는다.

 

무엇 때문에 마음 깊은 곳에 불안정한 요소들이 형성되어 그것들이 변화에 완강하게 저항하며, 남아 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어렵지만, 심한 고통과 기능장애를 덜어주는 방식으로 대처해 나갈 수는 있다.  집요한 불안의 패턴을 바꾸기 어려운 것은 불안의 원인들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는 실존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 모두 일평생 어느 정도 불안을 경험하며,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불안할 때 긴장을 풀지 못한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또는 우리 인생에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경험한다. 우리는 계속 침입하는 생각들 때문에 불안, 걱정, 근심에 사로잡혀 쉴 수가 없다. 그리고 다가오는 대결을 피하거나 탈출하고 싶어한다. 불안은 여러 측면에서 독특한 감정이다.  그 극적인 플롯은 불확실한 위협이다. 그 밑에 깔린 위협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또 불안은 우리 삶의 문제들, 예를 들어 '우리가 누구고 우리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문제들을 상징한다이런 것들은 일반적으로 실존적 문제라고 일컬어지는 데 불안은 단연 실존적 감정이다. 이것이 불안이라는 감정밑에 깔린 개인적 의미들이기 때문이다.  분명 죽음도 살아있는 것들에게 위협이지만 본질이 모호하다. 경험을 통해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쨌든 그것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이 것의 없다. 인간들은 모두 인간존재의 공통된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위협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불안은 인간 존재의 보편적 특징이다. 우리 모두 불안을 경험한다. 하나의 위헙이 지나가면, 또 다른 위협과 맞닥뜨려야 한다. 불안은 늘 오고 간다.  다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약하고 드물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강하고 반복적이고 만성적일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심각한 공포의 순간으로 경험되기도 한다.

 

실존철학자들이 無나 비존재가 불안의 기본적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죽음의 불가피성은 불안의 궁극적 기초가 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 위협에 대처해야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위협들은 추상적이고 상징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처하기 어렵다. 어니스트 베커는 정신의 주된 엔진이 ‘죽음의 부정’ 이라고 주장했다.  베커는 '인간의 모든 성취 뒤에는 그런 부정이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죽고나서 뒤에 남기게 될 성취들에 그리고 우리를 우호적으로 기억해 줄 자식과 손자들에게 우리의 삶, 우리의 불멸을 향해 욕망을 투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죽은 뒤에는 우리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하는 것을 보고들을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우리를 기억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위안이 될 수 있다니 인간 마음은 참으로 이상하다. 죽음 뒤에 문자 그대로의 삶이 없을 경우,  우리가 뒤에 남긴 업적들과 우리 자손은 우리를 미래와 연결하는 기념비적 역할을 한다.

 

공포의 극적인 플롯은 신체적 행복에 대한 구체적이고 갑작스러운 위험과 직면하는 것인데, 그 위험이란 상해 또는 죽음이 곧 닥쳐올 것이라는 전망을 뜻한다.  공포는 예리하고 강렬하지만 지속 시간이 짧은 감정이다. 그리고 위험이 지나가면 사라진다. 반면 불안은 공황으로 상승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강도가 낮거나 보통이다, 대신 괴로운 상태가 만성적으로 유지되거나 아니면 계속 되풀이된다. 불안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고,  실존적인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집요하게 물러나지 않는 근심에 더 가깝다. 불안을 자극하는 것은 닥쳐올 어떤 사건이다. 그 구체적 표현은 병의 결과, 평가 받을 일의 비판이나 사회적비난을 받을 가능성 있는 사회적 상호작용 등인데 모두 불확실한 위협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 위협 뒤에 숨은 개인적 의미는 실존적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 장래의 행복, 생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직면하는 상황, 개인적인 목표, 일평생 얻게된 그들 자신과 세상에 대한 믿음 에서 이런 의미를 구성한다. 불안을 일으키는 위협에 근본적으로 대처하는다는 것은 그 모호하고, 실존적인 토대 때문에 어려운 일이다. 그 토대는 무엇이 일어날지, 언제 일어날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모두 불확실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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